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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Nov 20. 2024

화려한 외출 2

항. 아. 리

 파란 가을하늘에 나뭇잎이 하나둘 제 몸을 붉히던 날 가을맞이 소풍(일명 화려한 외출)을 가기로 했다. 아직도 일선에서 활동을 하며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에 오늘 하루를 내기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항. 아. 리(항상 아름다운 이들) 식구들. 이번에는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 한적한 공원에서 마음껏 떠들며 온전히 하루를 보내기 위해 준비에 들어갔다. 8명의 샘들과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무엇을 먹으며 하루를 보내야 할까. 총무인 나의 고민이 가을만큼이나 깊어만 다.


 근처에 식당도 있고 커피와 음료를 사다 먹을 수 있는 카페도 있으니 최적의 장소다. 그러니 간단하게 간식만 준비해 가자는 의견들이 톡방에서 분분다. 그런다고 그럴 수야 있나. 처음 가는 가을나들인데 김밥은 있어야지. 나의 오지랖에 또 발동이 걸렸다. 처음엔 사가려고 했었다. 일복 많은 사람 그냥 지나칠  없는지 그 유명김밥집이 문을 닫았다 한다. 결국 나의 대표메뉴 중의 하나인 *팸김밥을 싸기로 했다. 일반김밥보다 속재료도 간단하고 싸는데도 시간이 덜 걸린다. 어린아이 소풍 가듯 나 혼자 설레어 과자도 몇 봉지 사고 나름 동네 유명빵집에서 빵도 넉넉하게 샀다. 기분이다, 풍성한 가을날의 화려한 외출은 내가 쏘기로 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재료들을 준비하고 부지런히 김밥을 싸서 하나하나 먹기 좋게 호일에 싸느라 정신이 없어 사진 한 장도 찍지 못했다. 그런 나의 수고로움 덕분일까 샘들의 반응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햄을 데쳐서 짜지도 않고 깻잎과 어우러진 건강한 맛이라며 칭찬세례를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잎 수만큼이나 받았다. 그보다도 더 주인공인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물김치였다. 알배기배추를 사다 마른 고추를 불려 갈아서 살짝 우려낸 국물에 삼삼하게 담근 물김치는 샘들이 돌아가며 국물째 다 마셔버렸다.


 아직도 교육현장에서 학생들과 마음을 나누며 봉사의 길을 걷고 있는 샘들이 존경스럽다.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먼저 손을 놓은 나로서는 이렇게 해서라도 여전히 그 길을 가고 있는 샘들을 응원해주고 싶다. 야외에 나가자면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칼, 가위, 물, 휴지, 컵, 접시, 쓰레기봉투, 돗자리, 수저, 젓가락 등등 모두 담으니 박스로 한가득이다.


 차에 싣고 30분을 달려 주차를 하고 카트에 실어 낑낑대며 끌고 갔다. 그래도 좋다. 맛있게 먹어줄 샘들이 있어 좋고 하루종일 나누어줄 사연들로 벌써부터  설렌다. 그럼 상담샘들은 모이면 무슨 이야기들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궁금하시다면 귀를 쫑긋 해보시길.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동갑내기  이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몇 해 전에 딸이 국제결혼을 했다. 이집트인으로 현재 두 딸과 함께 두바이에 살고 있다. 서로의 문화가 다르다 보니  딸이 속상한 일이 있으면 상담사인 엄마에게 자문을 구해오기도 한다. 남편이 이집트에 있는 친구를 두바이로 불러들이기 위해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발견되었다.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 친구는 두바이로 오기 위해 이미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고 남편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회사일로 해외출장 중이었다.


 그런데 예고 없이 그 친구가 남편도 없는 집에 온다는 것이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은 탓에 미리 집도 구하지 못하고 딸 집 게스트룸에서 일단 지내기로 했지만 딸 입장으로서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다. 이집트는 아직도 집성촌처럼 대가족들이 모여 살며 서로를 도와주고 챙겨주는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남편도 그런 문화에 익숙하기에 어릴 적 친구를 도와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내로서는 서운할 수 있는 일이다. 급기야 딸은 내가 왜 너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거냐고 섭섭함을 드러냈고 남편은 절대 그게 아니고 일이 바쁘다 보니 미처 친구가 온다는 말을 미리 못 했다는 것이다. 존중받지 못하다니, 집이며 부동산이며 모든 자산이 당신 앞으로 되어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남편은 항변했다.


 또한 왜 굳이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 친구까지 불러들이며 고생을 하는 남편이 걱정된다는 것이 딸의 하소연이다. 그럼 상담사인 엄마의 피드백은 무엇이었을까. 이미 답이 나와 있듯이 너는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네가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 주어야 하고 "바쁘고 힘들게 사는 네가 나는 걱정이 된다"라고만 말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쾌하기 이를 데 없는 솔루션이다. 남편은 네가 걱정된다는 그 한마디로 감동할 것이고 더 이상 아내에게 부담될 일은 삼가게 될 것이니 말이다. 우린 이런 이야기들로 하루를 채우며 가을소풍을 즐겼다.


 그렇다고 샘들이 자기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관련 일이나 다른 일들을 하며 상담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샘들은 그 시작점이 모두 다르다. 30여 년이 되어가는 샘도 있고 우리가 임원으로 만나 모임을 시작한 지도 12년이 되었으니 모두 20년 전후가 되었다. 별다른 대가 없이 이 사회를 위해 조용히 봉사를 하고 있는 샘들이 오늘따라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상담자원봉사자모임 항. 아. 리" 어떤 모임보다도 내겐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 이 봉사가 계기가 되어 뒤늦게 상담공부를 시작했고 봉사를 이어가며 상담교사까지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난 나의 소중한 인연들. 오늘도 우리 세상 끝나는 날까지 함께 하자며 알록달록 가을빛처럼 화려했던 외출은 저물어 가는 들녘과 함께 조용히 막을 내렸다. 아주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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