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명절을 준비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1)

by 희야 ㅡ 박상희

엄마가 요양병원에 가시고 해가 바뀌었다. 아침잠을 설치고 서둘러 기차역에 갔지만 하필이면 내가 예매한 열차만 고장으로 30분이나 지연되었다. 열차와의 인연이 별로인가 보다. 결국 언니, 남동생과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며칠 전 내린 눈이지만 계속된 추위로 녹지 않은 설원은 한낮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며 내 눈을 시리게 한다. 이렇게 엄마를 찾아 몇 번이나 달려갈 수 있을까. 지금 이렇게 찾아갈 수 있는 엄마가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면서도 엄마가 가고 나면 어쩌나 싶어 시린 눈 사이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행히 엄마는 이번에도 무사히 패혈증을 이겨냈지만 앙상한 엄마 손은 링거투여로 인해 피멍처럼 울긋불긋 애처로워 꼭 잡아주지도 못했다. 희야가 왔다고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면서도 이미 먼저 가신 아버지는 왜 오지 않았느냐고 속상해하는 엄마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설 명절이 다가온다. 지난 추석에는 시어머니께서 중환자실에 계셨기 때문에 차례준비는 하지 않았지만, 추석전날 오전에 남편과 시동생들만 산소에 다녀왔다. 그 사이에 동서들과 나는 지지고 볶고 음식을 만들어 4형제 식구들 19명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명절을 준비하고 싶지 않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런데 남편은 그럼 어떻게 해 하며 난색을 표했다. 시어머니께서 아프실 때는 당연스럽게 차례는 준비하지 않는 것이라 하더니 정작 내 엄마가 아파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단지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차례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 상황이 슬펐다




맏며느리가 되어 제사와 명절준비를 하면서 언제나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가장 좋은 과일과 푸짐한 음식으로 제사를 준비했고, 명절에는 각종 튀김과 과자도 넉넉하게 만들어 맛있게 먹고 돌아가는 형제들에게 싸서 보냈다. 시집와서 배운 것을 그대로 하다 보니 꼭 그래야 하는 줄 알았고 그렇게 해왔다. 내가 출근을 할 때도 나는 무조건 제사나 명절전날에는 꼭 쉬어야 했고, 한 번은 명절 전날 휴무를 줄 수 없다고 해서 그날로 직장을 그만둔 적도 있다.


지만 제사준비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동서들의 전화가 오면, 항상 회사일이 먼저이니 걱정하지 말고 출근하라 했었다. 열심히 일하며 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니 참 나도 고단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렇게 사는 것이 나름 행복했고, 형제들이 모여 잘 먹고 우애 있게 잘 지내줘서 고마웠다.




아들이 결혼을 하면서 나는 작은 반란(?)을 일으켰다. 우선 명절음식을 내가 혼자 미리 조금씩 준비할 것이니 명절날 아침에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갑자기 30년이 넘도록 해왔던 일을 이렇게 말하기까지 절대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며느리가 들어오게 되면 아무리 시키지 않는다 해도 명절전날부터 20여 명의 음식을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것이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를 통하여 하나씩 바꾸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걱정했던 대로 형제들은 그동안 우리가 오는 것이 불편했었나 싶어 서운한 기색이었다. 결국에는 동서들이 내가 혼자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맘에 걸렸는지 전날 같이 음식준비를 해서 저녁을 먹고, 각자 집으로 갔다가 명절날 아침에 다시 왔다. 그렇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훨씬 수월했다. 방이 모자라 거실까지 이불을 펴고 하루 자고 씻고 가면, 그 뒷정리로 허덕였었다. 이제 저녁을 먹고 모두 가고 나니 오롯이 내 아이들과 담소도 나누며,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어 고마웠다.


그리고 명절과 제사로 겁을 먹고 있는 며느리에게 장문에 문자를 보냈다. 제사와 명절은 내가 살아서 할 수 있는 동안에만 하고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떠난 다음에는 너희 남매가 잊지 않고 모여 따뜻한 차 한 잔과 꽃 한 송이면 충분하고, 집에서 절대 기름 냄새 풍기지 말고 나가서 맛있는 거 사 먹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어느 날 산책길에서 언제나 조상님 모시는 일에 진심인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무척 놀랐다). 물론 아이들이 맛있는 것을 사 먹을 수 있는 정도는 남겨줄 생각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동안 해왔던 것들을 차츰 줄여가면서, 내가 나이 들고 더 힘들어지면 자연적으로 못하게 되지 않을까 쉽다.




몇 해 전부터 나는 명절에 친정에 가지 않는다. 올케들이 우리가 가면 함께 식사하려고 친정도 못 가고 기다리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례를 지내고 동서들을 모두 보내고 부랴부랴 대충 치우고 가는 것이 힘에 부치기도 했다. 그래서 미리 다녀오거나 명절이 지난 후에 다녀온다. 이제 엄마 떠나고 나면 누가 밥 한 그릇이라도 떠 놓을지 맏이인 언니는 벌써부터 걱정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많지도 않은 형제들이 잠시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엄마가 이렇게 쓸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일까? 아버지께서 살아생전에 엄마명의로 넉넉하게 유산을 남겨 주셔서 병원비와 앞으로 제사비용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6년째 시어머니 요양원비를 혼자 부담하고 있는 나는 병원비 걱정하지 않는 친정이 부럽다. 언제까지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시어머니께서 가시는 그날까지 요양원비 포함 모든 것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