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으로 올라온지도 1년이 넘었다. 그사이 아기 마루는 빠르게 자라서 나와 말동무가 되었다.
나수정은 가끔 섬뜩할 때도 있지만, 아기 마루의 온 세상이자 전부이고, 갈루아의 연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엄마!! 엄마! 오늘 생일파티 때문에 일찍 온 거야?”
“응. 마루야. 오래 기다렸어? 빨리 파티하고, 맛있는 거 먹자.”
“네!!”
마루는 매일같이 나수정을 기다리는데도 매일 반가워서 날뛴다. 똑똑해져도 주인만 사랑하는 천성을 바뀌지 않나 보다. 고작 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마루에게 번역기를 심다니. 말이 통해서 행복해진 것이 맞나? 가끔 의심이 든다.
우리만의 조촐한 생일 파티를 마치고, 마루는 허겁지겁 케익을 먹고, 나수정은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선물을 내밀었다.
“오늘까지 완성하느라 힘들었어. 새로 완성한 번역기야. 앞으로 좀더 보완해야겠지만, 훨씬 더 간편하고 성능도 좋아졌어. 네 친구 갈루아를 기념해서 이름도 「무무」로 지었어. 갈루아의 연구를 내가 이어 받았으니까 우리를 연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자. 여기 무무 번역기야.”
선물 상자 안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단추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예쁘다. 갈루아가 보면 좋아했을텐데... 고마워. 나수정.”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하 보금자리의 갈루아 캡슐에서 함께 번역기를 만들던 날들이 그림처럼 스쳐갔다.
“네가 가져온 번역기 덕분에 아이디어를 얻어서 오가노이드 컴퓨터 연구가 몇십 년은 빨라졌어. 그 소년이 이 번역기를 만들 때는 이게 어떻게 쓰일지 몰랐겠지만, 번역기는 우리 세상을 지키게 될 거야. 오늘 연구소에도 함께 가자. 오가노이드 컴퓨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보여줄게. 연구소에가서 그 무거운 번역기 대신 새로운 무무 번역기로 교체하자 갈루아의 것을 버린다고 생각하지 말고 갈루아의 꿈을 네가 직접 이루는 거야. 갈루아도 이 번역기가 세상에서 역할을 하는 걸 원했잖아. 아프지도 않을 거야.”
케이크 덕분에 행복해진 마루를 남겨두고 우리끼리 연구실로 내려갔다. 처음 연구소에 와서 채혈을 하던 날처럼 시술을 위한 방으로 들어갔다.
“라이카. 자 마취 들어갈 거야. 이제 10에서부터 거꾸로 숫자 세면 돼.”
라이카는 눈부신 조명에 눈을 감고. 나수정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한참의 시술이 끝난 뒤 라이카는 두개골의 윗부분이 투명한 합성수지의 원기둥으로 교체되고 그 안에서는 수십 개의 미세 전기 섬유가 뇌의 곳곳을 연결하고 있는 모습으로 시술을 마쳤다. 그리고 엎드린 채로 손바닥만한 햄스터 전용 베드에 결박되었다. 나수정은 라이카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고생했어. 우리는 이제 영원히 함께야. 빨리 의식이 돌아오면 좋겠다. 그래야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줄텐데.”
나수정은 라이카의 뇌에서부터 연결되어 원기둥에서 바깥에서 하나로 합쳐진 선 끝에 달린 투명한 조각을 조심스럽게 집어들었다. 그리고, 장난감 큐브같이 생긴 작은 장치에 꽂아 넣었다. 하루가 꼬박 다 지나서야 라이카의 의식이 돌아왔다.
“라이카! 라이카, 이제 좀 정신이 들어?”
“응. 어쩐지 목소리가 이질감이 들어.”
“새 장치를 연결해서 그런거야. 곧 있으면 익숙해질 거야. 너도 정말 좋아할 것 같아서 잠을 못 잤어. 나 아니면 세상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선물이야. 지하에 살던 그 친구도 이렇게 해줄 수는 없었을 거야. 자~아~ 마지막 기념선물! 넌 이제 영원히 살 수 있어! 어때? 최고지?”
나수정은 어느 때보다 흥분해서 아이처럼 라이카의 대답을 기대했다.
“응? 어떻게 영원히 살 수 있어?”
“연구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거야. 오가노이드 컴퓨터를 먼저 보여줄게.”
연구실에는 각종 동물들이 산채로 두개골이 열려서, 잔혹한 뱀이나 전갈 술이 전시된 듯 종류별로 층층히 쌓여 진열되어 있었다. 동물들은 기계장치 안에서 갇혀서 몸을 말고 잠든 채로 있거나, 꼼짝없이 어딘가에 체결되어 있었고, 두개골이 반쯤 제거되어 머리뼈 대신에 둥그런 투명한 용기가 두개골 대신 이식되어 있었다. 훤히 보이는 뇌는 투명한 액체에 담긴채 수많은 섬유에 연결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뇌가 열린 동물들의 잔혹하고 고요한 무덤이었다.
“뭐야??? 이 동물들이 다 뭐야!”
“오가노이드 컴퓨터야. 전에는 뇌세포를 배양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어. 고성능의 인공 뇌를 만들기도 힘들었고, 영양공급을 하는데도 문제가 있어서 뇌가 금방 죽어버렸지. 그런데, 너와 번역기를 보고 깨닫게 되었지. 너처럼 아르갭11b 유전자를 삽입해서 똑똑한 뇌를 만든 후에 동물들을 그대로 오가노이드 컴퓨터로 사용하면 되는 거였지. 아직은 신체를 유지하는 것이 뇌를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되서 컴퓨터 크기가 크지만 곧 있으면 뇌에 양분을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질거야. 그러면 뇌만 있으면 되니까 훨씬 작고 효율도 좋아지겠지.이게 다 너를 만나서 이룰 수 있었던 일이야. 라이카.
너 벌써 3살이잖아. 운이 좋아야 남은 시간이 1~2년이고, 사실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너같이 특별한 친구를 잃을 수는 없었어. 그래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만들었지. 너를 이 동물들처럼 오가노이드 컴퓨터로 연결했어.”
“뭐!! 뭐라고??”
“진정하고 들어봐. 너는 이제 업로드된 의식 같은거야. 몸의 신진대사만 멈췄을 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어. 다른 오가노이드들은 자유의지도 없고, 의식도 없지만, 너는 움직이지만 못할 뿐, 전처럼 스피커를 통해서 말할 수도 있고, 모니터에 네 생각을 출력할 수도 있어. 좋은 점은 오가노이드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너도 점점 더 발전하게 될 거라는 거지. 나중에는 아마,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세상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도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거야. 가장 좋은 점은 이 상태로 너는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야.”
“지금 내가 저 동물들처럼 머리가 반쯤 열려서 뇌가 보이는 상태로 기계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야? 마취가 덜 깨서 몸이 안 움직이는 게 아니고??”
“맞아. 정확해! 연결된 기계가 체액 교체를 자동으로 해줘서 지금 상태에서 영원히 살 수 있어. 어쩌면 지금보다 약간은 더 젊어질 수도 있을 거야.”
“미쳤어?? 왜 나를 이렇게 만든거야!! 이렇게 살아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전에 말했지. 산다는 것은 의미나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고, 그냥 살아남는 것이고, 살아있는 사람이 승자야. 번역기를 심은 거랑 다를게 없는데 왜 화를 내는 거야? 번역기를 심기 전까지 넌 말은 못 했지만 친구랑 잘 지냈겠지. 번역기를 심고 나서 더 자유롭게 서로 이야기 할 수 있었잖아. 더 편하고 좋은 거라서 너에게 해 준거야. 달라진 거라고는 네가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뿐이야.”
“넌 정말 미쳤구나. 그게 어떻게 사는 거야? 어떻게 친구라면서 이럴수가 있어!!”
나수정은 라이카가 든 큐브를 손바닥에 올리고 햄스터 아파트처럼 큐브가 가득 쌓인 곳에 들고 가서 보여줬다. 쥐들 역시 뇌가 열린 채로 엎드린 자세로 작은 큐브에 들어가서 층층이 쌓여 있었다.
“이것은 햄스터 뇌를 이용한 서버야. 이 컴퓨터들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개체 차이가 있으면 안 되니까 의식도 없고,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지. 모든 에너지가 뇌의 연산을 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됐지. 눈으로 보기엔 너도 이렇게 보이지. 멋있지? 너는 생사를 뛰어넘은 새로운 타입의 생명체가 된거야. 저것들은 우리가 입력한 문제를 해결하지만, 너는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있고 네 문제를 네가 해결해 나갈 거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몸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야. 왜 이해를 못하는 건데??”
“뭐라고! 내가 저렇게 생겼다고!!”
“진정해. 당연히 완전히 다르지. 자 거울로 보여줄게. 정확히는 네 케이스는 훨씬 고급이고, 네 자리도 내 책상에서 가장 가까워. 이 연구실이 다 보이는 곳에 마련해 뒀지. 쟤네들이랑 같은 취급이라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안 돼. 자~ 자~ 멋있지?”
나수정은 거울 앞에서 패션쇼라도 하듯이 돌려가며 라이카의 모습을 비춰졌다. 라이카는 살아서 자신의 뇌를 본 첫 개체일지도 모른다. 열린 두개골에 채워진 액체와 머리쪽에서 나와 연결된 전선, 결박되어 감각이 없어진 신체가 고급스런 케이스에 장식품처럼 담겨서, 여러 가지 램프가 깜빡이면서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 너는....... 정말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구나... 아! 그때 바로 라이카에게 돌아가서, 함께 생을 마쳤어야 했는데! 아아!! 인간을 안다고 생각한 오만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진정해, 라이카 지금 네가 잠시 혼란스러운 것 같은데, 천천히 생각해봐. 너와 갈루아라는 그 소년이 바꿀 미래를 보고 싶지 않아? 이 방법이 아니면 무슨 수를 써도 넌 죽을 거야. 10년은 커녕 5년도 못 채우겠지. 만약에 내가 너였다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영원히 살게 해달라고 빌었을 거야.
니가 그리워하는 그 소년이나 우리 모두는 이미 선을 넘은 거야. 살아남기 위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신이 되려고 했지. 우리가 고통 속에서 신이 되려고 몸부림치는 동안 신은 어디 있었지? 이제 우리에게 지켜야 할 선 같은 것은 없어. 덕분에 그 소년은 친구라고는 너 뿐이었고, 나는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연구대상으로 커야 했지.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뿐 이야. 내가 널 구한 거야, 넌 이제 실험실에서 24시간 관리받게 될 거야.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각할 시간을 좀 줄게. 내일 보자.”
“넌 사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구나!!! 네!! 삶이!! 끝이 나지!! 않기를!! 빌어줄게!!! 영원히!!!!!!!!!!!!!!”
돌아가는 나수정의 등 뒤로 할 수 있는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계속 소리를 지르자 연구원이 와서 스피커를 꺼버렸는지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찍찍거린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마비된 신체는 찍찍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다른 쥐들처럼 쫒기며 굶주리지 않은 댓가인가. 눈앞에는 기괴하게 잠든 동물원이 반짝이며 펼쳐져 있었다. 아직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나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