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by 올레비엔

감옥에 갇힌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주에는 쥐였고, 그전에는 달팽이 였으며, 길고양이, 당나귀로 살았다. 악어로 옮겨갔을 때는 상처를 입어서 죽기만을 기다렸는데도 끈질긴 생명력 때문에 몇 달이나 더러운 흙탕물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간신히 사람으로 옮겨왔는데 하필 독방에 갇힌 죄수 신세라니!

나는 죽음을 앞둔 자들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면, 아직 생명력이 남은 신체로 옮겨와서 산다. 대부분 건강한 육신이 아니기에 자꾸만 다른 몸으로 옮겨진다. 동물들은 비를 피할 곳도 충분한 먹이도 없는 힘든 삶을 산다. 그래서, 동물로 깨어나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다른 몸으로 옮겨가기만을 기다린다. 재수가 없을 때는 한 달 동안에도 몇 번이나 이 몸 저 몸을 옮겨 다닌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길고 아름다운 열개의 손가락이었다. 한동안 인간인적이 없었기에 내 손을 몇 번이나 쥐었다 폈다 하거나 일어나서 좁은 방 안을 걸어 다니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마침내 인간이 되었군! 젊고 튼튼한 몸이야.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나는 기쁨에 차서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신께 기도를 드렸다.

“야! 미친놈아! 조용히 해! 여기가 제 집인 줄 아나! ”

바깥에서 간수가 조그만 철창 구멍에 얼굴을 들이밀더니 소리를 지른다. 절망스럽게도 깨어난 곳은 감옥 안이었다. 얼마만에 힘들게 인간이 되었는데 감옥이라니! 인간으로 살 수만 있다면 감옥이라도 괜찮다. 딱딱한 침대와 거친 음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몸에 남은 수명이 얼마인지 모르는 것이 문제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 감옥 안에 다른 사람을 불러들여야만 한다.

난동도 부려보고, 몸이 아프다고 소리도 쳐보고, 변호사를 불러달라, 신부님을 불러달라, 별 수를 다 써봤지만 소용이 없다. 그저 조용히 하라는 외침뿐이다.

5일째 되던 날, 동이 트기도 전에 감옥 문이 열리더니 어찌해 볼 새도 없이 누군가 두건을 씌우고 팔다리에 무거운 금속으로 된 족쇄를 채웠다. 밖에 나와서야 왜 간수가 어떤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두건의 굵은 실 사이로 단두대가 보였다. 이 남자는 사형수였던 것이다. 겁에 질려 사형을 기다리다 영혼이 먼저 몸을 떠난 것이다. 나는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영문도 모르고 이 새벽에 단두대에 목을 내놓고 있게 되었다.

“집행하라!”

‘젠장!’

단두대 칼날의 서늘한 느낌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은데, 벌써 다른 몸으로 옮겨왔다. 이번에는 차가운 바닷물 속이었다.

‘이번에는 물고기인가 보군!’

그런데, 숨이 막혀온다. 제발 고래만 아니기를… 고래나 지난번 악어 같은 종류는 수명이 길어서 죽기만 기다린다고 해도 한참을 물속에서 살아야 한다.

일단은 숨을 쉬러 물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이상하게 몸이 무겁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인간이다! 어떤 멍청한 인간이 이 날씨에 이런 무거운 코트까지 입고 물에 뛰어들어!’

막혀오는 숨을 참으면서 코트를 재빨리 벗어버리고, 있는 힘을 다해 물 위로 올라갔다. 다시 동물로 옮겨갈 수는 없다. 입김이 나올 정도의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떨면서 한숨을 돌리자 이 몸이 주인이 가진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비겁한 자식! 조금만 기다려! 제발!’

물을 뚝뚝 흘리며 홀딱 젖은 채로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로 가득 찬 비좁은 거리를 헤치고 골목을 돌아 돌아 빈민가의 어떤 집 앞에 다다랐다.

‘아! 제발! 너무 늦지 않았기를!’

부서질 듯 거칠게 문을 열었다. 좁은 실내는 빛하나 들지 않고, 꿉꿉한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식탁 위에는 짙은 갈색 피부의 어린 소녀가 음식을 먹다가 쓰러져 있었고, 그 옆에는 이 남자의 아내가 들보에 목을 매고 늘어져 있었다.

“마리아!”

다급히 여자를 내려서 침대에 눕히고 숨을 불어넣고 뺨을 때렸다. 축 쳐진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몇 번이나 흔들자 마침내 얼굴빛이 돌아오면서 가느다랗게 겨우 눈을 떴다.

“호세~ 당신이 다시 돌아왔군요. 우리가 죽었나요?”

“당신은 죽지 않았어! 이 미련한 여자야!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가 있지!”

“뭐라고요? 이사벨! 이사벨! 우리 이사벨은 어떻게 해요!”

나는 식탁에 쓰러져 있던 아이 역시 황급히 침대에 눕히고 코에 손가락을 대어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 숨은 쉬고 있었다.

‘이 놈이 멍청해서 다행이군!’

“이사벨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 멍청한 놈이 속았군! 이것은 비소가 아니야. 값싼 수면제일 뿐이야. 한동안 죽은 듯이 자고 나면 일어날 거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

“오~ 신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군요. 미안해. 우리 아가.”

“신이 너희를 버린 게 아니야! 너희 스스로 너희를 버린 거야! 이렇게 아무 죄도 없는 아이를 두고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가 있지! 이러고도 오히려 떳떳하게 생각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

“당신은 호세가 아니군요?”

“맞아 나는 호세가 아니야. 딸이 아니라 당신이 마녀였군! 이 지경에서도 서로에게 비밀이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군!”

“그럼 우리 호세는 어디로 간 거죠?”

“그는 당신들 계획대로 다리에서 뛰어내려 죽었지! 정직하게도 말이지! ”

“맞아요. 우리는 이런 선택을 해서는 안 됐어요. 모든 것은 나 때문이에요. 아! 호세!”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더럽고 허름한 차림에도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후회로 가득한 눈은 총명하게 빛났다. 한눈에도 그녀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고귀한 출신임을 알 수 있었다.

마리아는 원래 부유한 상인의 딸이었으나 흑인 노예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노예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했으나 짙은 피부색에 신비로운 파란 눈을 가진 혼혈 아이를 낳았다. 결국 아이가 마녀라고 소문이 나면서 그녀와 아이가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내 몸의 주인이었던 호세는 마리아를 사랑하던 젊은 귀족이었고, 간수들을 매수해서 아무도 모르는 항구도시로 도망쳐 왔던 것이었다. 온갖 힘든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었으나 가진 돈도 떨어지고, 호세가 병에 걸려 일도 할 수 없어지자 온 가족이 동반자살을 시도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잠든 아이를 보자 화가 치밀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도 모르는 자들 같으니! 그 아름다운 사랑의 결말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려고 하다니!”

“미안해요. 호세… 아니…”

나는 발치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뿌리치고 어둠에 휩싸인 거리로 나왔다. 분노에 휩싸여 닥치는 대로 부랑자들을 깨워 그들의 생명을 훔치고 음식과 귀중품을 훔쳤다.

‘나는 어떻게든 이 몸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절대 스스로 포기하는 일은 없다!’

화가 가라앉지 않은 채로 두 손 가득 훔친 물건을 식탁에 던져 놓는데, 여전히 잠에 취해 있던 아이가 게슴츠레 눈을 뜨고 부른다.

“아빠!”

“이사벨, 아빠가 맛있는 것 많이 가져왔어. 푹 자고 일어나서 먹자. 더 자렴.”

아무 죄가 없는 아이를 보자 조금 화가 누그러졌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 모녀가 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마리아, 나는 신의 저주로 여러 몸을 옮겨 살고 있어. 다른 이들의 수명을 빼앗아 살고는 있지만, 고작 며칠을 빼앗을 뿐이야. 알다시피 호세의 몸은 병에 걸렸기 때문에 결국은 죽게 될 거야. 그러니까, 내가 죽기 전에 뭔가 방법을 마련해야 해.”

“어쩌면, 당신이 나를 살린 이유가 이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수명을 저장할 수 있는 연금술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요. 부자들이 오래 살기 위해서 연성진을 몸에 새긴다고요.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당신에게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녀는 딸이 마녀로 몰릴 때조차,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자신이 마녀라는 사실을 숨겨왔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나를 돕겠다고 나섰다. 종이를 꺼내 어떤 장소와 책, 몇 가지 재료를 적어주면서 훔쳐오라고 시켰다. 모든 재료를 준비한 뒤에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재능을 이용해 내 몸에 수명을 저장할 수 있다는 연성진을 왼쪽 옆구리에 새겼다.

“다 됐어요.”

“으윽… 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 연성진은 인간의 수명을 3개월 정도 저장할 수 있어요. 저장된 수명이 얼마 안 되면 색이 붉게 바뀌면서 타는 듯한 고통이 있을 거예요.”

당장 나가서 부랑자의 수명을 빼앗았다. 그러자 연성진이 하얗게 변하면서 고통도 사라졌다. 놀라운 것은 원래 호세가 가진 병도 나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당신이 받은 벌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몸에 넉넉한 생명력이 있어서 회복된 거예요.”

연성진을 몸에 새기고 몇 년을 마리아 모녀와 함께 살았다. 아름다운 아내와 흑인 혼혈 아이를 데리고 빈민가에 사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마침내 결심을 했다. 차곡차곡 귀중품을 훔쳐서 비용을 마련하고, 마리아와 이사벨을 부자 상인으로 신분을 세탁했다. 이사벨의 친아빠의 아버지를 수소문해서 데려왔고, 그들의 고향으로 가는 배에 먼저 태워 보냈다. 내가 준비해 준 비용이면 충분히 훌륭한 저택을 짓고 편안한 삶을 시작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마리아, 나도 곧 따라갈 거야.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난 어딘가에서 다른 이로 영원히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

마지막으로 우리의 안정된 미래를 위해서, 이 도시의 가장 부자라는 귀족의 저택을 털러 갔다. 위험부담이 컸지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돈이었다.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렸기 때문일까, 나는 그날밤 잡혀서, 아이러니하게도 지난번 사형수의 독방에 다시 갇히고 말았다. 이번에는 사형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3개월 동안 아무도 독방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바람에 남은 수명을 다 써버리고 말았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자, 마리아가 새긴 연성진이 붉게 변하면서 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입은 옷을 찢어 피로 두 개의 편지를 썼다. 감옥 안의 벽돌 하나를 힘겹게 빼내어 그 안에 편지를 써서 숨겨두고 결국 숨을 거뒀다.

하나는 이사벨에게, 다른 하나는 내 사랑 페니에게.

잠시후 숲속에서 다시 눈을 떴다.

‘뭐지? 아이~씨~ 어쨌든 인간이니까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