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지은이 왔나 보다.”
지은이를 처음 만난 것은 진우라는 아이의 몸으로 옮겨와서 겨우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처음 이 아이의 몸으로 옮겨왔을 때는 너무 쇠약해져서 침대를 떠날 수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진우의 몸으로 옮겨오기 전에는 몇 번이나 동물의 몸을 옮겨가며 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어떻게든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항상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몸으로 옮겨오기 때문에 보통은 나이 든 사람으로 옮겨오는데 16살 소년으로 산다면 한사람의 온전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쇠약해진 몸에 갇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이 아이의 곁에는 항상 엄마와 늙은 강아지가 지켰다.
“으르르 컹컹! 컹! 컹컹!”
“얘가 오늘 왜 이래. 마루야. 짖지 마. 그러면 진우 깬다. 조용!”
강아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진우의 영혼이 떠나고, 낯선 영혼이 옮겨오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으며, 내가 보통 인간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유독 고통이 심해서였는지, 주인잃은 늙은 강아지가 갑자기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는지, 아직도 나를 경계하는 강아지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마루야, 미안해.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진우는 편안한 곳으로 갔어. 나도 내가 원해서 이 몸으로 옮겨온 것은 아니야.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이대로라면 이 몸도 곧 죽게 되겠지…”
그날 밤 마루는 잠든 내 가슴 위로 뛰어 올라와서 밤새 내 입술을 핥고는 곁에서 잠자듯 죽었다. 주인 곁으로 간 것인지, 아들을 잃으면 슬퍼할 엄마의 마음을 살핀 것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얼마 남지 않았던 자신이 가진 모든 날들을 내어줬다.
아침 일찍 아들을 살피러 들어온 엄마는 죽은 강아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슬퍼하면서도, 아픈 아들이 슬퍼할까 봐 아들을 달래기 바빴다.
“마루가 널 보살펴 줄 거야.”
마루 덕분에 나는 조금 회복해서 침대에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래도 외출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잠든 틈을 타 수명을 조금만 빌리려고 했다. 그런데, 오랜 간병에 지친 엄마도 이미 병이 깊은 상태였고, 수명도 고작 몇년밖에 남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지은이가 찾아왔다.
“지은아, 아줌마 금방 나갔다 올 테니까 아줌마 올 때까지만 있어줘. 매번 고맙다.”
“걱정 마세요. 엄마도 저 여기 온 거 알아요. 저 늦게 가도 돼요.”
지은이는 나를 지켜준다는 뭔가가 빼곡히 쓰인 노트를 들고 찾아왔다. 교복을 입고 찾아온 고등학생의 지은이는 순진한 얼굴에 두꺼운 검은색테의 동그란 안경을 쓴 통통하고 귀여운 여고생이었다. 오자마자 다정하게 좀 나아졌냐면서 누워있는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물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네가 자고 있어서 그냥 옆에서 책 읽다 갔어. 이제 좀 괜찮아졌다면서?”
“응.”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전에 우리 책방에서 찾은 연금술책 기억나? 서로 갖겠다고 싸우다가 우리 진짜 빈정 상할 뻔한 그 책 있잖아. 아무것도 안 써져 있던 책.”
“어. 기억나.”
“그 책, 내가 좀 썼는데… 네가 가져. 대신 이제 그렇게 많이는 아프지는 마. 진짜 너랑 다시는 이야기 못하는 줄 알았잖아. ”
“울었냐?”
“아니! 안 울었거든!”
“그 책에다 뭐라고 썼는데? 네가 쓴 부분 읽어줘.”
“안돼! 못 읽어줘. 나 가고 나중에 읽어. 중요한 건, 너 빨리 나아서 그 책 같이 완성하자! 알았지?”
지은이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다. 아픈 진우를 잊지않고 매번 찾아오는 유일한 친구다.
“나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어. 이제 침대에서 일어나 앉을 수도 있어.”
침대 옆에 앉아 귀엽게 떠드는 지은이를 바라보며 힘겹게 일어나 기대앉았다.
“진짜네!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이렇게 앉아 있어도 괜찮아?”
“응. 괜찮아. 지은아 그런데…… 만약에 내가 건강해질 수 있다면 네 남은 수명을 좀 팔아줄래? 한 달쯤만?”
오래전 나를 구해준 아이를 죽인 일이 생각이 나 걱정이 됐지만, 밖에 나갈 수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다시 동물이 되어 피할 곳하나 없이 굶주린 배를 안고 죽기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내 수명을 너한테 팔수만 있다면, 그래서, 네가 건강해질 수 있다면, 몇 달은 괜찮지. 우리가 일찍 죽어서 한 오십 살에 죽는다고 쳐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나는 몇 년도 줄 수 있을 것 같아. 그 대신 배신 때리기 없기다~ 50살 넘어서 친구 없을 때, 내가 늙어서 힘들 때 네가 나 도와주겠지 뭐. 진짜 팔 수 있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
“그럼 이리 와봐.”
“그 연금술 책을 잘 만들어서 네가 건강해지면 좋을 텐데. 연금술이 별 것이 아니야. 과학이야. 옛날 사람들은 금을 못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만들 수 있어. 비싸서 안 만드는 거지, 너 비행기 어떻게 나는지 알아? 과학자들도 정확히 모른데, 연금술은 단지 지금 설명 못하는 과학일 뿐이야. 내가 꼭 너 나을 방법을 찾아내고 말 꺼야. 그 다음에 내가 필요한 것은 천천히 만들어도 되지 뭐…”
“알았어. 그러니까 이리 와 봐”
“뭐 가져다줄까?”
“아니, 그냥 이리 와. 더 가까이”
지은이는 침대 옆 의자에서 일어나서 더 가까이 오라는 말에 어색해하면서 나에게 몸을 기울였다.
“정말 내가 건강해진다면, 네 수명을 팔아줄 거야?”
“당연하지! 당장 팔고 싶다!”
“그럼 더 가까이 와봐.”
“더?? 부끄러운데…”
내가 손을 뻗어 볼에 손을 얹고 다가가자 지은이는 질끈 눈을 감았다.
“나… 뽀뽀 안 해봤는데…”
그리고 입을 맞췄다. 그렇게 그 애의 몇 개월을 샀다.
‘지은아 미안해. 이번 한 번만 도와줘 미안…’
“네가 나 왜 불렀지? 미안, 내가 왜 이렇게 가까이 있었지? 뭐 가져다 달라고 했나?”
“아니야. 오늘 여기서 뭐 하려고 했어?”
“오늘 가져온 책에서 숨은 페이지를 발견한 거 말해주려고 했지. 그 책을 집에 가져가서 보다가 라면 받침으로 썼거든, 그러고 나서 열어보니까, 숨겨진 페이지가 열린 거야, 그런데, 다음날 보니까 다시 그 페이지가 없어진 거야. 내가 다시……”
지은이는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곁에서 재잘거리다 돌아갔고, 다음 주부터는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지은이는 순둥한 성격과 숨기지 못하는 덕력 같은 것 때문에 내가 없는 동안 학교 일진들에게 당하고 다닌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나와 함께 다니면서 더 곤란을 겪고 있었다.
“지은이, 오랜만이야. 너 요새 남자친구 생겼다며? 잘 생겼다고 소문났던데 왜 오늘은 혼자와? 나한테 소개 좀 해줄래? 말로 할 때?”
“우리 그냥 친구야. 걔 많이 아팠다가 이제 겨우 학교 나오는 거야. 너희가 좀 봐줘. 그런 애 아니야. ”
일진들은 지은이를 툭툭 기분나쁘게 건드렸다.
“그런 애가 뭔데? 그럼 우리는 그런 애냐? 묘하게 기분 나쁘네? 공부 잘하는 애라서 너는 그런 애 아니시고요?”
집으로 가는 골목에서 지은이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나와 마주쳤다. 남녀가 섞인 교복 입은 아이들 속에는 아는 얼굴도 있었다.
“지은이가 뭘 좀 잘못 안 거야. 나 그런 애 맞아.”
“진우야, 별일 아니야. 괜찮아. 너도 얘들 알잖아.”
“알아. 동네 친구들끼리 친하게 지내야지. 걱정 마. 나 얘들한테 뭐 좀 사고 싶은 게 있어서.”
나는 제일 불량한 커플들을 잡아끌어 골목 한쪽 보이지 않는 귀퉁이로 데려갔다.
“너희 수명을 좀 살게.”
“응? 뭐라고?”
남자 애가 삐딱한 말투로 기가 차다는 듯이 받아친다.
“오빠 얘 멀쩡하게 생겼는데 웃긴다! 돌아이 아냐?”
“그래, 살 수 있다고 치자. 어떻게 살 건데?”
“나는 아직 돈은 많이 없어서, 일단은, 무의미한 키스로?”
“오빠 얘 나한테 반한 건가 봐. 뭐야? 그거네!”
여자애는 기분이 좋은 것을 숨기지 않으면서, 남자 쪽으로 바짝 붙으면서 말한다.
“너어? 가만 안 둔다. 나은이한테 어디서 뻔뻔하게 수작이야!”
“그런 거 아니야, 오해야~ 그냥 수명 좀 사간다는 거지.”
“이게 어디서 개수작이야! 사가봐! 그럼 내 걸로 사가! 이 자식아!”
성질을 내면서 바짝 다가온 남자애의 넥타이를 당겨서 입을 맞췄다.
“뭐야?? 내가 아니야?”
당황하는 여자아이에게도 다가가서 입을 맞추고는 돌아서면서 말했다.
“앞으로 지은이 괴롭히면 남은 날들이 더 이상 없을 때까지 또 사러 온다!”
그 애들은 자신이 키스한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서로 상대가 나와 키스를 했다고 우기면서 황당해했다.
“내가 저 자식이랑 키스를 했다고!! 뭔 소리야. 네가 했지!”
“아니, 오빠! 기억 안 나? 쟤가 오빠 넥타이 당겨서 ”
“아 씨! 뭔 소리야!”
그렇게 잠시 다투다가 왜, 무엇 때문에 다투는 지도 잊고 말았다.
골목을 돌아 나오자 지은이가 멀리서 기다리고 있었다.
“ 왜 안 가고 기다렸어? 쟤네가 또 괴롭히면 어쩌려고?”
“너만 두고 어떻게 가. 혹시 너 쓰러지거나 하면 내가 구해줘야지! 그런데, 뭐 한 거야?”
“응… 그냥, 우리 괴롭히지 말라고 부탁을 했지. 사람들 다 보는데서 부탁하기는 좀 부끄러우니까… 이제, 우리 봐준다던데?”
나는 그날부터 쉽게 수명을 살 수 있었다. 어디에나 나쁜 놈들은 흔했다. 수명이 넉넉한 불량 청소년부터 못된 어른들까지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