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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언제나 익숙한 곳이었지만, 이번에는 어둠에 휩쌓여 평소보다 더 고요하고 두려웠다. 나는 황금으로 된 장신구를 하고 발목까지 오는 흰 원피스를 입고 무한히 반복되는 좁은 미로 안을 걷고 있었다.

오토! 오토! 어딨어요! 오토!

애타게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사방은 정적으로 고요할 뿐이었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 응답했고, 어디에 있어도 나를 찾아 냈다. 그러나 오늘은 어떤 대답도 없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때, 어둠속에서 뭔가가 달빛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허리를 숙여 빛나는 것을 주워들었다. 달콤한 향기가 나는 하얀 꽃잎이었다. 자세히 보니 길을 따라 꽃잎이 몇발짝 간격으로 떨어져 꽃길을 이루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꽃잎을 하나씩 주워가며 걸었다. 각기 떨어져 있던 꽃잎은 내 손안에서 서로 결합하면서 시간을 되돌리듯 다시 한송이의 꽃이 되었다. 본능적으로 그 달콤함에 끌려 향을 맡으려던 순간, 갑자기 꽃잎이 산산이 부서지며 유리조각으로 변해 내 몸에 꽂혔다.

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눈을 떴다. 악몽이었다. 언제나 꾸는 미로에 갇힌 꿈이었지만 오늘은 뭔가 다르다. 다급히 거울을 찾아 어깨에 있는 문신을 확인했다. 문신은 여전히 하얗게 빛나고 있다. 다행이다. 수명이 모자란 것은 아니다.

지은이라는 이 아이의 몸으로 옮겨오기 전까지 수많은 몸을 옮겨가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막 16살이 된 예쁘장한 이 아이의 몸으로 옮겨온 이후로는 어떻게든 지은이로 한사람의 온전한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요즘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미로에 갇혀 헤메는 꿈을 꾸게 되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보통은 미로에 갇힌 꿈을 꾸는 것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때 뿐이다. 그러나 이번 꿈은 아무래도 그 사람 때문에 시작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은 인도양 그룹 신입사원연수 마지막 날에 우연히 만났다. 신입사원 연수라는 것이 처음보는 사람끼리 낯선 환경에서 어색하게 시작되지만, 마지막 날에는 교육 일정도 모두 끝나고 다들 친해져서 화기애애 해졌다.

마지막 일정으로 나무로 경계를 만들어 아름답게 꾸민 미로 공원에서 진행되는 탈출 게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팀별로 가장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는 사람에게는 꽤 큰 금액의 상금이 걸려있어서 분위기는 한껏 들떴다.

우리 팀은 가장 마지막 순서였는데, 이미 게임을 마친 팀들은 미로가 한눈에 보이는 건물에 올라가 길을 헤매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박수를 치거나 응원을 했다.

이것이 다 게임인줄은 알지만, 나는 미로에 갇혀있던 끔찍한 기억이 떠올라 두려움을 감출수 없었다.

“진우야. 나랑 천천히 가면 안 될까? 아무래도 나 자신이 없는데…”

“절대 안 됩니다! 나는 1등 할 것 같은데 절대 포기할 수 없지. 둘 다 중간이나 갈바에 내가 1등 해서 차라리 반띵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참고 부탁을 해봤으나 진우놈은 이미 상금에 눈이 멀어 있었다.

“알았어. 그럼 1등 못하기만 해 봐라! 상품 꼭 타와!”

“여기 그냥 관광지야. 아이들도 금방 통과한다고! 출구 앞에 있는 건물 쪽으로 무조건 방향 잡고 간다고 생각하고 달려 알았지? 달리다 보면 금방 나와~”

“네~네~ 알았으니까 너나 잘하세요!”

진행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자~ 준비~ 출발하세요!”

“나는 상금 타러 간다. 이따 보자!”

출발을 알리자 진우와 다른 사람들은 빠르게 튀어나갔다. 입구에서 겨우 몇분이 지났을 뿐인데 옥상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벌써 1등이 도착했나 싶어서 올려다보니 진우가 손을 흔든다.

“오~진짜 1등 했네.”

‘나도 서둘러야겠다. 너는 이제 지은이야. 미로에 갇힌 페니가 아니야. 이건 인간들이 하는 하찮은 게임일 뿐이야. 침착하자!’

애써 마음을 진정하면서 빠르게 발길을 옮기는데도 자꾸만 막힌 길을 만나고, 출구와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응원 소리가 한동안 잠잠해지더니 다같이 내 이름을 부른다.

“강지은! 강지은!”

‘뭐지?’

옥상을 올려다보니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치면서 내 이름을 부르고 진우는 핸드폰을 들어서 가리킨다.

‘나만 남았나? 핸드폰을 보라고? 아 어떡해!’

진우는 옥상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카톡을 열심히 보내고 있었다.

‘다음코너에서 우회전!’

더 커진 사람들의 응원을 무시하고, 진우의 메세지 확인하면서, 점점 더 길을 찾기 힘들어 졌다. 게다가 오래전 기억이 떠오르면서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미로를 이루던 나무들이 점차 하얗고 높은 벽돌로 쌓은 벽으로 변하더니 끝없이 확장되었다. 미로를 헤메던 과거의 기억이 현실과의 경계를 허물어 지금 여기가 언제인지, 어디인지 알수없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어지러워서 그자리에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그때, 길 끝에서 그가 나타났다. 단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 온 우주에 단 하나 뿐인 나의 짝, 그는 두팔을 벌리고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잠시 서있다가 성큼성큼 내게로 걸어왔다. 단정한 흰 튜닉에 얇은 망토를 걸치고 걸어 올 뿐인데도 그는 마치 조각이 살아움직이는 듯 완벽하게 아름다운 존재였다.

“페니! 여기 있었어? 또 길을 잃은 거야?”

“괜찮아. 네가 어디 있어도 나는 언제나 너를 구해줄꺼니까.“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오토 왜 이제 왔어?”

얼마나 긴 시간을 그를 그리워 했던가, 마침내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수많은 세월로도 잊혀지지 않던 이 익숙함, 그리움에 설움이 복받치며 그의 품에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그는 오랫동안 내게 기댈곳을 내어 준 것처럼 이번에도 든든하게 안아주었다.

“오~~ 오~”

그때 옥상에서 일제히 감탄하는 소리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십니까? 곤란하신 것 같아 구해드리러 왔는데, 어쩌면 더 곤란해진 것 같군요.”

순간 현실로 돌아왔다.

“아! 이런! 망했다.”

그는 오토가 아니었고, 나는 미로에 갇힌 것이 아니었다. 과거의 기억때문에 공포에 질려서 환각을 본것이었다.

“일단 손 잡아요. 그래야 빨리 끝납니다. 누가 뭐라든 무슨 상관이에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 아니겠어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어떤 미로든 출구나 입구 말고는 다른 탈출구가 없다. 어쩔수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응원과 박수를 받으면서 단번에 출구로 나왔다.

“회계팀 이재현이라고 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이름만 남기고, 내가 더 이상 곤란하지 않도록 놀리는 사람들 사이로 재빨리 섞여 들어가 사라졌다.

‘하~

어떻게 출근도 하기 전에 사고를 치냐~’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아무 데나 구석을 찾아가고 있는데 진우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야! 뭐야? 저사람 누군데? 넌 왜 갑자기 저 남자한테 안긴거야? 뭐야? 빨리 좀 말을 해봐”

“뭐긴 뭐야! 어지러워서 균형을 잃은 거야.”

“왜 갑자기 저 남자가 나타날 때 균형을 잃냐고 누군데?”

“나도 몰라. 처음 봤어. 그러는 너는 뭐 했냐? 모르는 사람도 구해주러 오는데!”

“상금 탔지~ 카톡으로 방향 열심히 알려줫는데, 오히려 안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완전 훈남인데~ 잘해봐~”

진우는 상금 봉투를 흔들며 재수 없게 놀려댔다. 그리고는 돌변해서 진지한 표정으로

“지은아! 미안해, 그렇게 까지 힘들어 할줄 몰랐어. 다음부터는 꼭, 내가 구해줄께.이제 같은 회사도 들어왔겠다. 오빠가 지켜준다! 저! 저놈! 저 훈남이 감히 못 넘보게 확실히 지켜 주겠어. 가자!”

진우는 내 손을 잡고 앞뒤로 장난스럽게 크게 흔들면서 관광 버스를 향해 과장된 몸짓으로 걸었다.

진우는 지은이와 어릴때 부터 함께 자랐다. 지은이의 건강이 회복되었을때 그녀의 엄마 말고 유일하게 기뻐해준 사람이었다. 다른 대학을 다녔지만 이번에 같은 회사에 나란히 입사하게 되었다. 물론 진우는 내가 지은이 가 아니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다.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고 헤어지면서 멀리서 나를 구해준 그 사람을 보았다. 부끄러운 생각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 용기내어 다가갔다. 그러나, 그의 부서원들과 일행들에 둘러쌓이는 것을 보고 그만 두기로 했다. 이미 우리 팀 안에서도 충분히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미로에 갇힌 꿈을 꾸는 것은 점점 더 심해졌다. 이럴 때는 현대의 약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마법이 깃든 물약이 필요하다. 그래서 퇴근 후에 구하기 힘든 허브를 사려고 잠시 화원에 들렸다.

양재동에 있는 온실처럼 생긴 꽤 큰 화원은 다양한 식물들로 가득차 있고, 안쪽에서는 몇몇 손님들이 와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며 이것 저것 구경하고 있는데, 앞에 서있는 양복입은 남자가 키우기 매우 까다로운 카틀레야 난을 집어들었다.

‘카틀레야 난이 예쁘기는 하지, 저 난은 잘 죽어서 선물하고도 좋은 소리 듣기 힘들텐데, 아무것도 모르시네…’

나도 모르게 이렇게 속삭이고 말았다.

“그런가요? 그럼 다른 난을 추천해주시죠?”

하면서, 남자가 돌아섰다.

“어머! 들으셨어요? 죄송해요. 혼잣말이었는데, 마음의 소리가 나와버렸네요. 죄송합니다.”

“어???”

“어! 그때 그…”

“네 맞습니다.”

그때 나를 미로에서 구해준 남자였다.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우며 살짝 놀리듯이 말했다.

“감사 인사도 안 하시기에 잊으신줄 알았습니다.”

“아니에요.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장난이에요. 그때 안아드리기도…”

잘못 걸렸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장난끼가 넘치는 놈이다. 친해지면 분명 된통 당할 것이 분명하다. 제대로 사과를 하고 빨리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 변명을 할수가 없네요.”

재빨리 그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그때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사장님은 그가 고른 화분을 포장해주면서 나를 알아보고 말했다.

“아가씨, 시계꽃 오늘은 구해 놨어요. 오래 기다려서 농장에 부탁해서 꽃달린 묘목으로 가져왔어요.”

“정말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기, 저 포장된 것으로 가져가면 돼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여기 벽에 붙은 사모님 계좌로 보내드리면 되죠?”

“아닙니다. 이분 것하고 제것 함께 결제해주세요.”

“그래! 그래. 그렇게 해.”

갑자기 그가 끼어들어 말릴새도 없이 결제를 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자에게 약점을 잡히는 것은 심히 불안한데 뻔뻔하게 모른척 해야겠다.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감사합니다.”

“사실은 부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저를 좀 구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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