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말하는 부부

by 남봉

우리 집 남매들은 엄마, 아빠가 생뚱맞게 노래 한 소절 불러도 그런가 보다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남편, 잠에 예민한 애 둘 재워보겠다고 목이 쉬어라 자장가를 불러준 아내. 이 두 명의 조합이 어느 순간부터 노래로 대화를 이어가는 환상의 콤비가 되었다.


"엄마, 잠깐 뒤로 돌아봐요." 둘째가 요구한다. 이 틈을 놓치지 않는다.

"돌아 돌아 나 돌아 기다렸던 시간이 다가왔어~~~" (업타운 'Paradoxxx')

진지하게 긴 머리를 흔들어대는 것을 잊지 않는다. 몸치일지라도.


"엄마, 그걸 떨어뜨린 건 정말 몰랐어요. 진짜 이럴 줄은 몰랐어요." 울상인 아이 앞에서 위로 대신 노래가 먼저 나올 때가 있다.

"이럴 줄은 몰랐어. 사랑을 느꼈어~~~~" (리아 '눈물')

마치 어제 이별한 여자처럼 애절하게 불러 젖혀본다. 워우어 어어~~


"아빠, 사이다 먹고 싶어요."

"맥혀맥혀맥혀맥혀 윽 꽉맥혀. 냉장고를 열었더니 사이다 있잖아. 오 오 오 사이다~~!!" (노라조 '사이다')

개다리 춤이 동반된다.


"아빠, 난 그래도 걔가 하나도 안 부러웠어요."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장기하 '부럽지가 않어')

장기하 부럽지 않은 턱수염을 자랑하며 남편이 부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부부는 어느 순간 이렇게 적재적소에 맞는 노래 가사 찾기에 심취해 있다. 아는 최신 노래가 별로 없어서 '옛날 노래'가 대부분 소환이 되곤 하지만.


오늘도 알파벳을 공부하던 둘째가 힘겹게 "쥐(G)"라고 읽자 "쥐쥐쥐쥐 베이뷔베이뷔~~" 하고 푼수를 떨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왜 이런 특이한 습관이 생겼을까. 서로를 웃기려고 작정하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노래를 엄청나게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에게는 이것이 다른 형태의 '노동요' 였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요를 어학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일을 즐겁게 하고 공동체 의식을 높여서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부르는 노래


무릎을 탁 쳤다. 이거로구나!

부모가 되는 것이 처음이라 우리는 많이도 허둥지둥거렸다. 아이들은 예민했고, 또 잔병치레가 잦았다. 그럴 때마다 많이 지치고 차례로 나가떨어지기도 했다. 서로에 대한 원망이 쉽게도 쌓였다. 수년간 쌓아온 사랑탑이 무색하게도.


순간순간 아이들이 주는 찬란한 기쁨에도 불구하고 우라는 때론 참으로 나약했다. 힘듦에 허덕이던 우리가 작은 것 하나라도 즐겁게 승화하고자 몸부림친 흔적이었다. 서로가 아는 노래로 대화를 이어가며 낄낄 거리던 부부는 서로에 대한 불평도 잠시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렇게.


"오빠, 나도 너무 지쳐."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




15년 동안 일해온 직장이 최근 유난히 힘들게 느껴진다. 내일도 일요일인데 잠시 나가 일을 해야 하게 생겨서 고슴도치처럼 삐죽삐죽한 상태.

당장 그만 둘 용기는 없고. 직장에서 노동요를 한 번 불러 젖혀보자. 물론 속으로.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인순이 '거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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