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딸아이가 깜짝 놀랄 말을 했다. 아빠 친구가 파라다이스시티호텔 사장님이란다. 아들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동생을 나무랐고 딸아이는 억울한 듯 더욱 소리 높여 말했다.
"아빠가 그랬단 말이야아!!!"
다른 일을 하고 있던 남편이 내가?라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고, 이내 무슨 말인 줄 알았다는 듯이 아아 소리를 내었다.
"아빠 친구는 파라다이스 호텔 사장님이 아니라 직원이야."
속이려는 의도는 모래 한 알 만큼도 보이지 않는 무해한 표정의 딸을 보며 그때 그 시절 내가 떠올랐다.
하교 후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있을 때, 새빨간 무선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담임 선생님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스레 움츠러들었다. 엄마를 바꿔 달라는 말에 왜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말없이 전화기를 건넸다. 엄마는 별말 없이 네네라든가 그렇군요 정도의 대답만 해서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전화를 끊고 엄마가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OO는 왜 우리가 옥수동에 산다고 선생님께 얘기했어?"
뭔가 잘못되었음을 그제야 느꼈다. 옥수동도 우리 동네 아니었나. 아니라면 그 옆동이라도 되지 않는가.
"옥수동은 아주 멀고 우리는 신사동에 살아. 선생님이 OO가 옥수동에서 통학한다고 얘기해 놀라서 전화 주셨나 봐."
“73번 버스에는 신사동, 옥수동이 같이 쓰여 있잖아. 같은 동네 아니야?”
당시 집 앞에는 두 대의 버스가 오갔는데 그중 메인이 되는 73번 버스 옆면에 주요 정류장이 쓰여 있었다. 한쪽에는 내가 사는 신사동이 다른 한쪽에는 옥수동이 쓰여 있었고, 그 정류장들이 모두 우리 동네인 줄 알았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나는 기분에 따라 신사동에도 살았다가 옥수동에도 살았다가 했다.
30년도 넘은 이 날의 기억이 방금 물감 칠한 수채화처럼 촉촉하게 남아있다.
매일 같이 타고 다니던 버스가 내가 알지도 못하고 가보지도 못한 먼 곳까지 간다는 사실. 세상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드넓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으리라. 아홉 살 인생은 옥수동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뉘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는 이해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왜 사람들이 싸우는지, 지구 반대편에 진짜 사람이 사는 건지, 나는 어떻게 태어난 것인지, 엄마는 왜 할머니댁에 가기 싫어하는 것인지. 세상은 눈앞에 보란 듯이 펼쳐져 있지만 막상 손을 뻗으면 가닿지 않고, 벌어지는 일들이 이리저리 굴절되어 보이는 곳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만 믿었고,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은 보이지 않거나 흐릿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이는 지금은 오히려 그때 그 시절처럼 불투명하게 세상을 보고 싶어 지는 날들이 많아진다. 가리고 싶고 안 보고 싶은 아픈 진실은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기어이 상처를 내기도 하니까. 모든 게 뒤죽박죽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로 가득한 그때로 돌아가 신명하게 헛소리를 해대고 싶다.
왜 어린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고 어른들은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어 할까. 아이들은 불투명한 세상이 갑갑하게 느껴지고, 어른들은 선명하다 못해 섬뜩한 세상에 지쳐 시야를 흐리고 싶은 건 아닐까.
한 시간 거리의 옥수동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던 나로 잠시 돌아가 내 앞에 놓인 서늘한 진실을 피해 내뱉어도 상관없는 말들을 자유롭게 흩뿌리고 싶다.
이번 주 회사에서 소위 말하는 ‘삽질’을 하루 종일 했다. 두 집단 간의 정치 싸움에 죄 없는 홈페이지를 뜯어고치는 작업을 갑작스럽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는 홈페이지 업데이트라는 지시가 내려왔는데 아무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그 지시 배경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훑고 지나간다. 원치 않아도 영화 한 편이 머릿속에서 상영된다.
이런 날 나는 더욱더 그때 그 시절이 그립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