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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리누리 May 31. 2024

너무 한낮의 식탁

-전주 지향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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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은 우리에게 참 특별한 해였어.


쌓인 안부를 묻고 최근의 일상을 나누다가, 맞은편에 앉은 H가 별안간 그리 얘기한다. 옆에 앉은 K도 동감하고,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로. 진짜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추임새가 이어진다.


너(K) 송별회 때 생각나? 그날 누리는 서울에 있다가 밤늦게 돌아와서 합류했잖아. 말도 안 됐지.


간만에 전주로 돌아온 K와 종일 놀면서도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H가 꺼낸 기억에 웃음이 터진다.


또다시 무리했던 날이다. 오늘이 다시는 오지 않을 테니, 좀 애써서라도 모두를 꼭 보고 싶었던 날.


그때는 그렇게라도 모두가 모일 수 있었어. 어떻게든 모였어.


본래 타지가 고향이지만 학업을 위해 전주에 왔던 K는, 지속 가능한 농법을 공부하기 위해 현재는 다른 지역에서 지내고 있다. 송별회 때 K를 더 이상 못 볼 줄 알고 울음바다가 되었는데, 그때 금방 돌아오겠다던 K가 정말로 자꾸 나타나서, 도리어 여기 계속 있는 친구들보다도 자주 보는 기분이다.


이를테면 여전히 전주에서 지내고 있는 H와도 만나기 쉽지 않으니까. 아니, 당연히 만날 수야 있지만 전처럼 지향집에서 자유롭게 보지는 못하게 되었다. H는 두어 달 전에 공간을 열게 되어, 거기 매일 출근한다. 퇴근하고 만날 때마다 하소연한다. 너희 말대로 더 놀았어야 했어! 더 쉬었어야 했어!


한때는 지향집에 갈 때마다 빈백에 축 늘어져 있거나, 핸드드립 커피를 끓여 내어주는 H가 있었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고, 잘 마시지 못하지만, H의 커피를 좋아했다. 취향껏 음악을 틀고 커피와 대화를 주고받는 H의 여유를 좋아했다. 돌아보면 지향집에서 친구들이 만들어주는 커피는 다 맛있었다.


거기선 내 취향 반경에 없던 순간까지 모두 사랑하게 되었다. 함께 하는 시간만으로 소중했으니까.


지향집과 처음 만난 날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작년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지향집 SNS 계정을 알게 되어 팔로우한 뒤, 도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일까,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가, 학창 시절부터 관심 있던 학교 밖 청소년과 관련한 북토크를 연다고 해서 마침내 용기를 내 찾아갔다. 같은 전주에 있지만 내가 사는 곳과 꽤 멀리 떨어진 동네에 있었다. 전주에 살면서도 거기까지 넘어갈 일이 잘 없었던,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먼 곳이었다.


설레고 떨리는 기분 속에 다다랐더니. 눈앞에 지향집이 나타나자마자 내 안의 어떤 고정관념도 훅 멀어진 기분이었다. 그간 다녔던 많은 북토크가 열린 책방이나 카페나, 여하튼 외부 공간이 아니었다.


출처 : 지향집 인스타그램 @jihyang.zip


가정집?


그냥 평범한 이층 주택이었다. 노란 대문이 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과 화단과 창고가 있는.


반쯤 열린 현관문을 젖히고, 신발이 가득한 안에 들어설 때까지도, 남의 집에 함부로 난입한 도둑이 된 게 아닌가 걱정했다. 저 가운데로 멀리 보이는 식탁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우리의 첫 대화가 어쨌더라. 지향집 오셨어요? 네, 북토크 때문에. 아 근데 저희가 식사 중이라……


식사라니? 서울에서 지낼 때 함께 식사하고 공부하는 공동체에 짧게 있었기 때문에, 여기도 비슷한 곳이었어?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괜찮다고 기다리겠다 하고, 엉거주춤 돌아다니며 곳곳을 구경했다.


잠시 뒤 그 식사가 끝난 식탁에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이제 막 마주한 이들과 갑자기 평어를 쓰며 온갖 얘기를 나눴다. 모임을 마치고, 운영자 친구가 어떻게 알고 왔는지를 물었다. 그러게?! 횡설수설하는 내게 더 자주 오라고, 내 집처럼 와도 좋다고 했다. 여긴 뭐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곳이라고.


그 말이 좋았다. 아직 서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데도, 어째서인지 기꺼이 환영받는 것 같았다.


다만 새로운 근무지에 적응하느라 몇 주를 지나쳤고, 5월에 들어서야 다른 흥미로운 모임에 가보기 위해 두 번째로 지향집에 방문했다. 바로 그날 ‘오미자’에 들어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오미자가 뭐야?


오늘의 일을 미루지 말자는 모임,


이라고 말하지만, 오늘의 ‘식사’를 미루지 않는 모임. 끼니를 거르는 습관이 있는 친구들이 오늘의 끼니, 그중에서도 특히 점심을 거르지 않기 위해 만들었다는 모임. 오미자가 되면 평일 점심마다 매일 투표를 부쳐서, 그날 모인 친구들끼리 손수 요리해 밥을 먹는다. 식사를 마치면 지향집에 남아서 마침내 오늘 미루고 싶지 않은 일을 해낸다! 는 상상을 해내고 쉬고 논다. 그러다 하나둘씩 헤어진다.


그때부터 한동안 난생처음 즐겨보는 너무 한낮의 날들이 찾아왔다. 오전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거의 지향집에 갔다. 요리에 재능이 없는데 보조나 심부름할 수는 있으니까, 뭐든 돕겠다고 시켜달라고 번번이 사고 치는데도 끈기 있게 참아준 친구들 곁에서, 함께 요리하는 재미를 배웠다. 평생 맛집에도 맛있는 식사에도 큰 미련이 없었는데, 그날의 메인 셰프 친구가 달라질 때마다 새롭게 풍성해지는 잔치 같은 한 상을 받으면 식욕이 돌았다. 함께 먹으니 더 맛있었다. 쓸쓸하고 지겹다는 기분으로 죽지 않기 위해 쫓기듯 해치운 끼니가 아닌, 한 끼의 맛을 기쁘고 즐겁게 누릴 수 있는 식사를 배웠다.


출처 : 지향집 인스타그램 @jihyang.zip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가롭게 몇 시간을 흘려보내는 한낮도 편안할 수 있다는 감각을 배웠다. 이제껏 그런 한낮은 낯설었다. 할 일 없는 한낮에 스스로 괜찮기 어려웠다. 뭐라도 하거나, 어디라도 가야 견딜 수 있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어떤 결과물이든 생산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친구들과 있으면 다른 세상에 있다고 느꼈다. 아무도 독촉하지 않는 곳.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이 안에서는 바깥의 잣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곳. 바깥의 시간이 들어올 수 없는 곳.


시간이 천천히, 심심하지 않게 흐르는 곳. 잠시 달리지 않아도 좋으니 생각이 온전히 머무르는 곳.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닌 곳. 내가 나로 있고, 우리가 매일 우리의 공기를 지켜내는 곳.


그렇게 한낮을 충분히 만끽했던 두 달이 몹시 비현실적으로 행복했기에, 내가 서서히 바빠지며 점차 가게 되는 주기가 길어질수록 미안했던 것 같다. 속도가 중요치 않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또 혼자 떨어져 나와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서. 온갖 일을 벌이며 친구들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는 것 같아서.


그리고 다시, 일 년쯤이 지난 이 식탁에는 술잔과 안주가 있다. 지금의 식탁에는 단 세 사람이 모여 있다. 적어도 오늘은 그렇게만 모일 수 있다. 재작년에 지향집이 생기고, 작년까지 주로 지향집을 이룬 친구들은, 비슷한 시기에 전주로 와서 일을 구하고 있거나, 휴학했거나, 퇴사했거나, 여러 이유로 쉬고 있었다. 우연히 그 시점에 서로 다른 고민에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뜻이 맞아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 올해가 되고 나서 아주 길고 달콤했던 꿈에서 깨어난 듯 각자의 현실로 향했다. 뚜벅뚜벅. 모임은 이어지지만, 서로가 너무 바빠져 다 같이 볼 기회는 드물다. 누군가는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선뜻 찾아 불러내지 않는다. 실은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이럴 날이 오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언제나 한갓진 우스갯소리만 오갔던 게 아니니까. 그랬다면 이만큼 가까워질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게 내내 좀 슬프다고 솔직히 얘기했다. 당연한 일인데, 살려면 어쩔 수 없는 변화인데도, 허전하다고. 오히려 그 무렵에 일상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니 비현실 같다고.


하지만 내가 생각한 현실이 뭔데? 내가 꿈꿨던 비현실은 또 뭔데? 그런 구분이 다 무슨 소용인데?


지향집이 언제나 거기 있는 것처럼, 친구들도 늘 거기에 있으리라고 나는 내심 믿었던 걸까? 그 믿음은 누구를 위한 믿음인가? 그럼, 그건 얼마나 나쁜 믿음인가. 나는 내내 헤매고 떠돌아다녔으면서.


내가 원하는 세상은 거기 있는데, 계속 이 세상에 발목 잡혀 자꾸 같이 있지 못했던 게 미안했어.


절대로 취하지 않으려 긴장하고 정신을 붙드는 술자리가 있다면, 이날은 일부러 조금 느슨해지려고 마셨다.


나를 괴롭힌 긴긴 시간에 대해 드디어 얘기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끝까지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 쏟아내고 나니 내가 너무 내 환상에 모두를 가뒀던 게 아닌지 비난받을 것만 같아 겁이 났는데. H와 K는 뜻밖의 농담이나 던진다. 거봐. 누린 나중에 귀농하든 어디 조용한 데 집 짓고 살 거 같다니까? 네가 데려가라. 누리 올래? 장난인 줄 알고 웃으며 듣고 있었더니, 진지하다. 진담이다!


원래는 다음날 모임을 위한 책을 다 읽지 못해 열한 시에는 가야 한다고 했는데, 결국 자정을 넘겨 H의 집까지 가게 되었다. 이쯤 되니 출근도 걱정되는데, 떠나고 싶지도 않다. 잠시만 더 머물고 싶다.


정작 자신만만하게 집으로 가자더니, 밤참만 뚝딱 만들어주고 취해서 자러 가버린 H의 빈자리에서, H의 말을 곱씹는다. 이 세상의 속도에도, 저 세상의 속도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내가 싫다는 고백에,


딱 십 년만 더 지나면 네가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못 믿겠으면? 나를 봐.


내가 여기 있잖아, 하고 자신하는 H는 나보다 대략 열 살이 많고, K는 나보다 대략 열 살이 적다.


한낮에 만나게 된 얼굴들인데도 신기하게 나이는 굳이 잘 읽히지 않는데, 그래서 더 좋은데. 갑자기 나이를 실감하게 하는 그 말은 용기를 준다. 그래, 여기 든든한 여동생 언니가 있는데. 우리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모여 있는데. 이들의 삶에 자랑스럽게 안심할 수 있는데. 십 년만 더 살아 있자고.


출처 : 지향집 인스타그램 @jihyang.zip


어쩌면 세상도 내다보지 못할 만큼 너무 눈부시게 빛나는 한낮에 있어 훨씬 아름다웠는지도 모를 지난 식탁들, 그리고 이 새벽에도 여전히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지금의 식탁이, 너무나도 멀어진 것만은 아니라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던 곳이 드디어 한밤중을 지나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다고 그 밤이 막막하게 어둡지도 않다고. 도리어 친구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조용해진 이제야 더 잘 보이는 것들도 있는 것이다. 자주 밥 먹던 사이에서, 종종 커피 마시는 사이가 되고, 이제는 가끔 술 마실 수 있는 사이가 된 거라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가깝게 떠올릴 수 있는 그 얼굴들이 여기 계속 남아 있다. 너무 한낮의 마음으로 너무 한낮의 밤도 견딜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이 되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여기에 더 살게 한다. 그 미래를 믿어보고 싶은 믿음을 건네고 갔다. 그 새벽처럼. 아침처럼.


언젠가는 다가올 한낮처럼. 돌아오고 돌아갈 식탁이 있다.






 * 제목은 김금희 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를 변용

 *  ‘지향집’은 “누구나 운영자가 되는 곳”이라는 약속과 믿음으로 굴러가는 전주 서서학동 커뮤니티 공간이에요.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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