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신앙으로불리고신성모독이라불렀다이제는당신을부를수 있
2024. 10. 26
하나님, 집 나온 모태 신앙자도 받아주시나요?
처음 가출을 시도했던 날이 떠오른다. 그래봤자 단 하룻밤도 못 버텼으니, 가출이라기에도 민망하지만.
너 어디 가냐는 고함을 등지고 충동적으로 현관문을 박차고 나왔는데, 더 구체적인 상황은 잊어버렸다. 그저 서로 죽일 듯 욕하고 싸우던 어른들의 소리만 기억난다. 그들이 그럴 때면 내 반응은 몇 가지로 돌고 돌았다. 같이 껴들어 시끄럽다고 그만 좀 하라고 바락바락 대들던가, 거기에 섞여 드는 내 목소리야말로 더 듣기 싫어져서 귀를 틀어막던가. 귀를 잊게 하고 정신을 달리 쏟을 수 있을 새로운 소리를 찾던가.
그러다 그날에는, 어쩌다 나와버리게 되었더라.
언제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오기 전까지의 상황은 머릿속에서 다 지워진 거 같다. 잊어버리고 살라고, 내 몸이 나를 살리려고 죄다 지워버린 거 같다. 아마도, 중학생 때였거나 고등학생 때였을 거다.
홧김에 나오긴 나왔는데. 챙긴 짐도 거의 없고, 도움 청할 이도 없었고, 시간 때울 데도 없어 여기저기 헤매다 멈춰 선 곳이 내가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피아노 반주자로 있었던 교회였기 때문이다. 그냥,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교회 건물을 보게 된 순간, 어 맞네 저기서 하룻밤 자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맘때처럼 날이 쌀쌀했던 늦은 오후였고, 해도 졌으니 점점 더 추워질 테고, 대충 입고 나온 옷은 너무 얇았고, 하룻밤 몸 뉠 곳이 필요했고, 아무 근거 없이 저기라면 나를 들여주리라는 확신을 가진 채로.
또다시 돌이켜봐도 어이없이 우스워지는 마음이었다. 신은 언제나 당신들을 사랑하고 축복하신다는 둥, 교회에서는 누구라도 환대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콧방귀나 끼면서 단 한 번도 믿어본 적 없는 주제에.
물론, 엄마로 인해 평생 모태 신앙으로 불리면서도 내내 부정했던 신을 그 순간 갑자기 받아들이게 되었던 건 아니다. 내게 모태신앙은 자랑이나 축복이었던 적 없었다. 태어나고 보니 물려받은 끔찍한 유산에 더 가까웠다. 여전히 신은 없다고 믿었고, 신이 나를 받아줄 거라기보다 당신을 앞세워 만들어진 그곳을 써먹고 싶었다. 당신이 날 원치 않는 모태 신앙자로 살게 했잖아. 당신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엄마가 종교에 미쳐버리는 일도 없었을 테고. 그럼 내가 가출할 일도 없었을 테니, 이 모든 곤란을 책임지라고.
오늘은 주일이 아니니까 저 안이 캄캄하게 비어 있을 거야. 그럼, 늘어진 의자들 속에 감쪽같이 가려질 수 있겠지. 침대처럼 긴 의자에 누워 밤을 지내고 새벽 일찍 나온다면,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못할 거야. 성전으로 불리는 저곳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거야. 그렇게 상상하니 갑자기 기대되고 흥분되기도 했다.
비록, 상상은 상상에서 끝났지만.
문을 열어젖힌 성전은 숨을 곳 없이 환했다. 아주 당연히, 평일 저녁에도 개인 기도를 온 이들이 곳곳에 있었다. 마침내 한 사람이 나가면 다른 한 사람이 들어왔고, 그대로라면 거기서 혼자 남게 될 시간은 영영 오지 않을 거 같았다. 뒷자리에 어색하게 앉아 언제까지고 그때만을 기다리기도 쉽지 않았다. 들어오고 나가는 이들이 혼자 우두커니 있는 여학생에게 자꾸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게 귀찮고 짜증이 났다. 이들은 왜 이렇게 부탁한 적도 없는 오지랖을 부릴까. 왜 나를 혼자 두지 않으려 할까. 내가 빌어먹을 학습 능력으로 제 발로 여기 찾아와버린 것처럼 저들의 몸에도 그런 게 익어버린 걸까. 이러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더 피곤해질 거라는 생각에, 여기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만 깨닫고 나와버렸다.
하나님, 내 영혼이 당신에게로 가고 있나요?
그날 다시금 깨달았다. 다들 할 수 있는 기도가 많구나. 신에게 할 말들이 참 많구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좋겠다.
그건 좀 부러웠다. 나는 기도 시간마다 외로웠기 때문이다. 기도에서 당신을 느껴본 적 없기 때문이다.
나는 중고등부 찬양팀의 반주자였고, 학생부 예배에서 찬양팀은 매주 돌아가며 대표 기도를 낭독했다.
내 차례가 다가오면 일요일이 세상에서 아주 사라지기만을 바랐다. 사람들도 내 기도가 갑갑했을 거다.
교회를 그리 오래 다녔으면서도 기도를 더럽게 못 했으니까. 다른 이의 기도에 자주 나오는 문장들을 시험공부하듯 외워뒀다가 얼기설기 붙여 가까스로 기도문을 지어냈을 뿐, 거기에 진심은 쥐뿔도 없었다. 내 기도에는 영혼이 없었다. 더듬더듬 시간만 채우는 소리는 혼잣말에 가까웠다. 그걸 들키기가 창피했다.
사실 그 정도로 번번이 망치면 나를 빼고 순서가 돌아갈 법도 한데. 정말 그래도 안 서운할 자신 있었는데. 제발 다음에는 그렇게 되기를 기도했는데. 그럴수록 나를 더 자주 시키는 교회가 원망스러웠다. 교회는 내게 끊임없이 기회를 주려 했다. 평소에 말수가 거의 없었던 내가 그저 기도에도 서툴 뿐이라고 생각했다. 순진하게 착각했다. 나를 기도도 잘하는 독실한 반주자로 완성하기 위해 애쓰는 그들이 느껴졌다.
그래봤자 소용없는데. 이건 노력의 문제가 아닌데요.
머쓱하고 황당했다. 내가 독실하다니.
어째서인지 피아노 반주에는 영혼이 넘쳤기 때문이다.
신을 향한 영혼 말고.
찬양보다도 노래와 합주를 즐겼던 철없는 영혼이. 집에 피아노가 없었고,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피아노 학원도 다닐 수 없게 되며 달리 피아노 칠 곳만 찾아다닌 어처구니없는 영혼이. 반주자를 부탁받았을 때 그 일을 맡으면 일주일에 하루는 꼭 피아노를 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으로 받아들였던 뻔뻔한 영혼이.
사람들도 나를 신기해했다. 누리는 피아노만 치면 다른 사람 같아. 그런 말을 종종 들었다. 찬양팀 활동을 하려면 예배가 있는 일요일뿐만 아니라 토요일에도 따로 만나 한두 시간씩 연습해야 했는데, 그렇게 거의 같은 이들과 몇 년간 시간을 보내면서도 끝끝내 누구와도 친해지지 못했다. 사람들이 내게 다가오는데도 내가 끈질기게 벽을 쳤다. 조용히, 가만히 연습이 시작되기만 기다렸다가 신나게 피아노만 치고 돌아왔다. 다른 친목 시간은 오직 피아노를 치기 위한 대가처럼 견뎠다. 이건 뭐…… 사람에게나 신에게나 존나 무례하고 오만하고 이기적인 마음이었던 거다. 집에 피아노만 생기면 곧장 떠나버리겠다는 마음으로 고등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두었을 때까지 사 년인가 오 년을 내리 다녔다는 게,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
게다가 들어간 대학교가 하필 기독교 재단에서 운영되었을 건 뭔데. 그 소식에 교회의 축하를 받았다.
정작 나는 그 교회를 나온 뒤로 더 이상 다른 어떤 교회도 다닌 적이 없는데. 나중에 목사가 그 사실을 전해 듣고서, 내가 없는 설교 시간에 나를 거론하며 회개를 읊었다고 한다. 자기가 좀 더 참된 목회자가 되지 못해 한때 독실했던 피아노 반주자가 주를 저버렸다고. 우리 다 같이 반주자를 위해 기도하자고.
다시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나는 한동안 그 근처도 돌아다닐 수 없게 되었다.
아뇨 사실 저는 주를 따른 적도 없다고 뒤늦게 고백할 용기가 없었다.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하나님, 당신 곁에서 내 엄마는 외롭지 않나요?
당시에는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도 느끼지 못했다. 반주를 하지 않았더라도 대학에 입학해 본가를 나오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교회에 다녀야 했을 테니까. 정작 사이비로 불리(지만 일반 교회라고 주장하)는 이단 종교로 넘어간 엄마는 그 안에 없었으나 하나님을 믿는 어떤 교회에라도 나를 묶어두고자 했으니까. 주기적으로 내 신앙심을 시험했으니까. 엄마를 만족시킬 만한 신앙심을 증명해야 했으니까. 그걸 가장 단순하게 꾸며낼 수 있었던 자리도 반주자였으니,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신다는 교회가 결과적으로는 정말 나를 구한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내가 신과 멀어져 지옥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했지만, 이미 나는 교회에서 지옥을 걷고 있었다. 피아노조차 없었다면 거기서 견딘 모든 순간이 훨씬 더 지옥이었을 거다.
다만, 신 말고 지옥에 대해서는 좀 믿었으므로. 내 삶이 지옥이었으므로, 그 몇 년간 종종 묻게 되었다.
이다음에 천국행과 지옥행을 심판받을 날 앞에 서게 된다면, 나는 어디로 보내질까?
이미 충분히 지옥에서 살아왔으니까, 벌써 매일 벌 받고 있으니까, 그때는 천국에 가도 괜찮지 않을까?
아닌가? 심판대가 얼마나 냉정하려나? 이런 속내까지도 다 들여다보고 나를 영원히 지옥에 살게 할까?
그럼, 엄마가 가게 될 곳에 대해서도 그려보게 되었다. 마침내 하나님을 만나는 엄마를 그리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 나의 엄마를 어디로 보내시겠어요?
온 삶을 들이고 바쳐 당신을 믿지만 당신이 터부시하는 이단에 미쳐버린 엄마를 어디로 보내시겠어요?
교회에서 들은 교리대로라면 엄마는 지옥에 가야 할 텐데, 그런 결말이라면 어쩐지 억울할 거 같았다.
그러면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평생 당신만 부르며 울었는데. 겨우 그 정도의 자비도 못 베푸니 엄마를 놓쳤지. 당신이 더 잘했어야지. 엄마를 잘 붙들었어야지. 나를 거기 묶어둔 만큼 엄마도 잡아뒀어야지.
엄마와 당신의 어딘가 비뚤어지고 망가진 관계로 인해, 나와 종교와 믿음의 관계도 엉망이 되어버렸다.
엄마가 사이비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든 종교에 이유 없는 반감을 품고 있는 나를 깨달았다. 실은 종교 자체가 문제는 아닌데. 세상에는 사람을 살게 하는, 살리는 종교도 많은데. 교회에서 별의별 인간을 맞닥뜨렸지만,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좋은 이들도 많았는데. 그들이 쏟는 깊은 믿음을 마주할 때마다 반짝 놀랐는데. 그러고도 마음을 내주지 못해서, 내내 혼자 다른 곳만 보려고 애쓰며 괜히 스스로 외로워지기를 자처했는데. 언제부턴가 내가 아끼는 이들의 기도를 보고 들을 때면 자주 배우고 뒤늦게 후회하게 되는데. 진심을 눌러 담아 기도하는 마음을, 희망에 매달려 믿어보려는 마음을 조금만 덜 미워할걸. 너무 오래 미워하고만 지내서, 믿고 기도를 보내려는 모든 삶을 쉽게 등지고 말았다. 기도하는 엄마를 미워하려고, 엄마가 믿는 신을 미워하려고, 너무 많은 것과 혼자 다투며 살았다.
그날, 교회를 나와 가출에 실패하고 자정 무렵 초라하게 귀가했던 밤에도, 죽도록 원망하고 저주했다.
고작 이런 일로도 나를 못 구하면서. 이렇게 날 버릴 거면서. 엄마처럼 당신도 날 결국 버려둘 거면서.
하지만, 이제는 좀 다르게 묻고도 싶다. 결국 그렇게 아무도 못 구한 당신은? 당신의 속은 어땠던가?
평생 내 원망과 저주를 씹어 먹은 당신의 삶은 어땠나? 엄마가 주는 사랑이 있어 극복할 수 있었던가?
내가 당신을 미워하는 마음보다, 엄마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 더 컸던가? 그래서 괜찮은가?
만약 당신이 괜찮다면, 당신 곁에서 내 엄마도 괜찮은가? 당신 곁에 있을 때는 엄마도 좀 덜 외롭나?
집에서 성경을 펴고 찬양을 따라 부르는 엄마의 몹시 평온한 표정을 보고 신보다 엄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을 것을 깨달은 어느 날, 내가 그들의 관계를 놓아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햇수를 세어보니, 딱 이십 년 만이었다. 그제야, 내가 간절히 바라고 바란 다른 믿음과 기도의 세계도 저 멀리서 오고 있었다.
* 신여성 작업실 글쓰기 워크숍 <소리내어 글쓰기 : 마음의 누수> 에서 함께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