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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Sep 16. 2023

낮에도 졸린 이유

밤에 살아야 할 이유를 고민합니다.

낙관적인 사람이 부러웠다. 기질이 낙관적인 사람은 기운 넘친다. 삶을 개선하고 향유하는 일에 시간을 쏟아붇는다. 반면 나는 멈춰 있다. 미래를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고 사람과 만나야 한다. 잘 안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힘든 일을 견디고 난 다음에는 또 다른 힘든 일이 있고, 그 끝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할까. 내가 당장 죽지 말아야 할 이유를 고민하며 공회전하는 동안, 낙관적인 사람은 정체구간 없이 자본주의의 정점으로 달린다.

성찰 없는 인생은 가짜라며 나를 위로해 봤지만, 눈 앞의 처지가 다르다는 점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책 한 권 고를 때에도 두 세 시간 동안 고민해야 하는데, 낙관적인 사람들은 책 백 권 값이 드는 해외여행을 수도 없이 다녀온다. 아마 가족의 암 투병 같은 큰 위기가 닥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엄마가 쓰러지면 나는 대책이 없다. 병원비는 둘째치고 다음 월세가 문제다. 아빠는 빚만 남기고 죽었고, 주변 친척은 그렇게 풍족하지 않다. 내가 공회전하지 않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심오하게 공부하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정작 나는 성실한 철학도가 아니다. 논리 기호도 읽을 줄 모르고, 현대 철학도 교양서적 수준 밖에 모른다. 애초에 혼자 힘으로 철학에 통달할 만큼 공부에 집중해 본 적도 없다. 내가 책을 읽은 이유는 당장 답이 급해서였지, 스스로 느긋하게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삶에 대해 고민한다고 해서 답을 찾을 능력 따위는 내게 없다. 그런 주제에 뛰어난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인 문제를 붙잡고 있으니, 그야말로 맨땅에 머리를 박느라 시간을 보낸 셈이다.

내 주제에 맡게 살아야 할 이유 따위 신경쓰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당장 먹고 사는 데에 도움되지 않는 철학책 대신 교재를 더 붙잡을 수 있었을까. 그 다음에는 어땠을까. 과도한 근무시간과 권위적인 대인관계를 견디면서 하루 하루 잘 지낼 수 있었을까. 살아야 할 이유 따위 고민하지 않아도 사는 데에 지장이 없었을까. 스트레스 받으면 헬스장에 가면 되고, 죽고 싶은 생각이 스치면 친구 불러서 술 한 잔 마시면 되는, 그런 삶도 정말 괜찮은걸까. 내 고민은 정신적인 자해 행위일 뿐이었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문득 쇼펜하우어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삶은 아픔과 지루함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 쇼펜하우어는 너무 비관적이지만, 여튼 사람은 매순간 행복할 수 없다.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괴로운 순간은 있다. 돈을 잘 벌고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문제에 잘 대응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인간이라서 겪을 수 있는 문제를 완벽히 회피할 수는 없다. 사별, 불안감, 외로움, 부조리, 죽고 싶은 생각 같은 것들 말이다.

간혹 남들은 10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1년 만에 벌어도 삶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뉴스에 나온다. 분명 낙관적으로 삶에 뛰어들어서 그런 성과를 얻었을 텐데, 뭐가 불만족스러운지 주변인에게 무리한 걸 요구하고 도박에 큰 돈을 들이붓고 마약까지 피운다. 물론 산업사회의 정점에 어울리게 사는 귀족 다운 귀족도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이런 걸 보면, 정점도 아늑하지만은 않은가 보다.

누구나 삶에 회의감을 느낄 수 있다. 그건 자연스럽다. 문제는 회의감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일을 늘리거나 술에 취해서 문제를 외면하는 건 위험하다. 건강에 나쁠 뿐더러 그런다고 해서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분이 심각하게 가라앉는다면 우선 전문의를 찾아서 약을 먹어야 한다. 다만 약은 회의감의 무게를 덜어 줄 뿐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 주지는 않는다. 나름의 답을 내리지 못하면, 회의감에서 도망치기 위해 극단적인 종교단체나 정치단체에 열광하며 나쁜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결국 언젠가는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셈이다.


만약 주변 사람이 뒤늦게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른다는 점을 자각했을 때, 낙관적이어서 앞만 보고 달린 사람은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그래봐야 '힘내라, 내일도 출근해야지, 옆 사람을 생각해' 이 정도 아닐까. 나라면 어떨까. 상담에 소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차분하게 듣고 진지하게 내 생각을 말해 줄 수는 있을 것 같다. 10년 동안 같은 문제를 두고 고민해 왔으니까.

"삶이 엉망일 때, 삶은 누구한테나 똑같이 추하다고 생각하면 소름끼치도록 냉정하게 위안이 된다."
- 대니얼 클라인,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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