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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Sep 18. 2023

로마가 우리에게 남긴 경고

로마군의 성공이 불러온 실패

로마가 지중해를 정복한 비결은 압도적인 전쟁지속능력이었다. 로마도 스파르타와 아테네처럼 병영 사회에 가까웠다. 하지만 병영의 규모가 남달랐다. 스파르타는 망하는 그 날까지 소수 지배민족만 병사로 소집했고, 아테네도 도시 안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주로 국방을 맡겼다. 그런데 로마는 피정복지 사람들까지 모조리 징집할 수 있었다. 피정복지 사람에게 무기를 준다니, 고대 그리스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로마가 해냈다.


당시 그리스와 로마는 뭐가 달랐을까. 로마는 자신이 정복한 지역 사람들에게 거의 동등한 권리를 줬다. 아테네는 주변 도시국가들을 착취했고, 스파르타는 시작부터 피정복 민족을 노예로 부리며 성장했지만, 로마는 피정복자를 새로운 사회구성원으로 만들었다. 이런 포용력 덕에 로마는 주변 민족을 압도하는 병력을 징집할 수 있었고, 큰 전쟁에서 패배해도 금방 군사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로마는 뛰어난 제도로 전쟁지속능력을 유지한 셈이다.


로마의 전쟁지속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두번째 포에니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가장 활약한 사람이 바로 한니발 바르카다. 로마의 무리한 요구를 끝내고 카르타고를 부흥시키기 위해, 한니발은 수 만 대군을 이끌고 스페인에서 출발했다. 한니발은 우수한 용병 기마대와 코끼리를 적절히 활용하며 로마의 동맹도시들을 무너뜨리고 결국 로마까지 포위했다. 로마는 한니발과 싸우면 연전연패했다.


하지만 전황은 한니발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긴 원정 탓에 병력은 줄었는데, 한니발은 지원군을 받을 수 없었다. 카르타고는 그리스 도시국가보다 사정이 나빴다. 원래 상인들의 도시였던 카르타고는 시민들을 징집하기 보다는 용병에 의존했다. 한니발도 로마로 진군할 병력의 상당수를 용병으로 충당했다. 설령 시민들을 징집한다고 해도, 카르타고는 스파르타처럼 소수의 시민권자만 동원할 수 있었다.


게다가 카르타고는 지원군을 꾸려도 한니발에게 보낼 수 없었다. 또 다른 로마군이 시칠리아에서 카르타고 본토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로마군은 한니발이 이탈리아에 묶여 있는 동안 카르타고의 식민지였던 스페인도 공격했다. 한니발의 기마대가 로마 성 문 앞까지 들이닥친 상황에서도, 로마는 수 만 대군을 끌어모아서 한니발의 본진을 타격한 것이다. 한니발 한 사람의 지도력에 의존하는 카르타고는 로마의 풍부한 인재풀과 병력 앞에 무력했다.


한니발은 이탈이아 도시들을 설득해서 반로마 전선을 형성하려 했지만, 로마의 동맹도시들은 생각보다 잘 결속되어 있었다. 한니발의 도박은 성공을 코 앞에 두고 실패했다. 최후의 전투에서 한니발은 패배했고, 카르타고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 때부터 로마는 사실상 지중해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었다. 결국 한니발도 카르타고와 로마의 전쟁지속능력 격차를 뒤집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때의 성공이 로마를 혼돈으로 몰아갔다. 로마는 갑자기 부유해졌다. 문제는 다수 시민이 함께 부유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래 로마에서는 귀족과 평민의 재산 격차가 크지 않았다. 자연히 계급 간의 문화 차이도 크지 않았고 소통도 원활했다. 하지만 카르타고와 그 식민도시를 손에 넣은 로마는 노예를 부리며 거대한 대농장을 경영하는 부유층과 긴 전쟁 탓에 자기 땅도 지키지 못하는 평민으로 양극화되었다. 이 때부터 로마의 전쟁지속능력은 서서히 약해졌다. 로마 정치인은 위기를 앞두고 분열되었고, 이는 심각한 내전으로 치달았다. 그 뒤로 로마는 원래의 공화정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과도한 격차는 사회통합을 방해한다. 19세기 청나라가 그 많은 인구와 자원을 갖고도 서양에 유린당한 것은 만주족과 한족, 한족 신사와 그 외 백성 간 과도한 격차 탓에 사회를 통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제국도 같은 이유로 무너졌고, 현대 아프리카도 같은 이유로 정체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노골적으로 격차를 키워왔다. 소득 격차와 재산 격차, 둘 다 심각하다. 그 탓에 과도한 지위경쟁과 갑질, 정치적 무관심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 우리나라가 한니발의 진군 같은 거대한 위기를 잘 견딜 수 있을까.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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