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할 자유는 없다
2년 전에 쓴 칼럼입니다.
잔소리하는 엄마를 내쫓으면 방이 조용해진다. 이제 간섭받지 않고 게임에 집중할 수 있다. 내 영역에서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 나는 자유롭다. 정말 그럴까? 내 방에서 눈치 보지 않고 나만의 행복을 즐길 수 있다면, 나는 자유로운 걸까?
오지랖과 눈치 보기에 지친 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영역에 숨어들고 있다. 연애나 결혼처럼 타인을 위해 자신을 검열하고 통제해야 하는 활동과 멀어지고, 소득 격차나 약자 배제처럼 모두를 위협할 수 있는 사회문제에 냉담하고 있다. '타인에게 무관심할 자유'를 요구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무관심은 결국 모두의 자유를 위협할 것이다. 사회 구성원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고, 모든 구성원이 타인의 자유를 지키는 일을 항상 최우선 가치로 여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각자는 자신의 자유를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다.
1. 교통사고가 보여주는 것.
유튜브에서 블랙박스 영상을 검색해 보면, 분노를 자극하는 교통사고 현장을 볼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누가봐도 술을 마신 것 같은 운전자가 옆 차로를 달리는 차를 급습하거나, 마음 급한 운전자가 뒤도 확인하지 않고 차로를 바꾸다가 애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가 흔하게 일어난다.¹
이런 사고들은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는지 다소 과격하게 보여준다. 혼자 서행한다고 해서 무사히 도로를 통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같은 도로를 달리는 운전자 모두가 신호를 지키고 사이드미러를 살필 때, 안전 운전이 실현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도로 위 안전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다.
도로 위 안전 뿐만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옆 집 경리가 실직하면, 동네 치킨집은 단골을 잃는다. 윗 집 할아버지가 코로나에 걸리면, 같은 교회에 다니는 다른 빌라 할머니도 코로나에 걸릴 수 있다. 그 치킨집 사장은 우리 엄마일 수도 있고, 교회 다니는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은 어떤 식으로든 내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간 무리에서 사는 동안에는, 무인도처럼 남들과 분리되어 살 수 없다. 독립된 개인은 과장된 표현인 셈이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이런데,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해지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가 일자리를 잃고, 불안 장애를 겪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저버리게 방치한다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불행 속에 방치된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서 혼자 버려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단순히 친구에게 외면받을 때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해고될 때, 정치인이 자신의 문제에 무관심할 때, 학력이나 외모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당할 때에도,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²
외로움은 그 자체로 생존 위협이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혼자가 되면 죽는다는 생각을 말 그대로 뼛 속 깊이 새기고 있다. 혼자가 된 사람은 자연히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꾸준리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은 인지 능력과 자제력을 잃거나 극심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외로운 사람은 생산성도 낮아지고, 더 예민해지는 셈이다.³
"외로움은 때로 위협적인 세상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2배로 증폭한다. 현대사회의 다양성과 이동성의 증가는 이런 단절을 더욱 심화한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급증하면 문화적 편견, 인종적 고정관념, 차별적 관행에 더 민감해질 수 있다. 사회적 단서들을 잘못 해석하고 있지도 않은 사회적 위협을 볼 수도 있다. 작은 자극이 과장된 반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잘못 놓인 펜이나 실수로 엎지른 컵이 우리를 분노하게 하거나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차선에 끼어든 사람이 나를 공격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⁴
사회적 무관심은 사회 전반에 불행을 퍼뜨린다. 무관심은 혈관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가득해서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작은 위협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외로움을 잊게 해 줄 강렬한 물질을 찾는 사람을 양산한다.
외로운 사람은 홧김에 지나가는 여성을 칼로 찌를 수도 있고, 직장 후배에게 트라우마가 될 만한 갑질을 저지를 수도 있고, 과격한 해법을 제안하는 정치 단체에 가담해서 정국을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 만약 혼란을 틈타서 극단주의 정당이 집권하면, 재벌이라고 해도 불행의 연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무관심은 사회 전반에 불행을 퍼뜨리고, 불행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염된다.
"인간 생활 대부분은 상호의존 맥락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사적 영역에 완전히 국한된 인간 행동은 있을 수 없다."⁵
2. 자유롭기 위해 짊어져야 할 의무.
역사를 보면, 불행에 지친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를 포기한 사례를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독일에서 나치당이 집권하고, 이란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자리잡은 걸 보면, 모든 사람이 언제나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자유를 행사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조건이 적절하게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가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 (...) 푸시킨의 작품보다 당장 구두 두 짝이 더 가치 있는 상황도 있다. 개인의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아니다."⁶
묻지마 범죄가 성행하고, 크고 작은 길거리 싸움이 반복되고, 젊은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와 극우, 극좌 정당에 가입하는 사회, 사람들 마음 속에서 자유의 우선순위가 낮아진 사회에서, 과연 누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 혼자 주의 깊게 운전한다고 해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처럼, 나 혼자 자유롭고 싶다고 해서 자유를 보장받을 수는 없다. 내 자유는 다른 사람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자유를 지키려는 의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자유롭고 싶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불행에 지쳐서 자유를 저버리지 않게 도울 의무가 있다.
명망 있는 자유주의자들도 사회적인 의무를 여러 번 강조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통념과 다르게, 자유주의자는 자유'만'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 자유'도' 아끼는 사람이었다. 전통적으로, 자유주의 철학자들은 다른 사회적 가치를 위해 자유를 억압해야 할 때도 있다고 여겼다.⁷ 정치철학자 애덤 스위프트가 말한 것처럼, 자유는 평등이나 사회질서를 위해 정당하게 제약될 수 있다.⁸
"타인들의 편익을 위해 그에게 많은 긍정적인 행동들을 강제로 수행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수도 있다. 법정에서 증언을 하는 것, 공동 방위에서 혹은 그를 보호해 주는 사회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다른 공동 사업에서 공평한 몫을 하는 것, 그리고 동료의 생명을 구해 주거나 무방비의 약자를 학대에서 보호하기 위해 개입하는 것과 같이 어떤 개인적 선행을 수행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한 개인은 행동에 의해서는 물론 행동하지 않음에 의해서도 타인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며, 어떤 경우든 그는 그 상해에 대해 타인들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⁹
자유주의는 언제나 개인이 사회보다 중요하다는 사상이 아니다. 자유주의 철학자들은 자유가 사회적 타협과 협력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위해 법을 지키고 세금을 내고 불의에 맞설 의무를 감당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다.
3. 방구석에는 자유가 없다.
누군가는 오피스텔 원룸에서 혼자 넷플릭스를 즐길 수만 있으면 자유롭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 소박하지만 확실한 자유는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진 쥐포에 불과하다. 경제 위기나 정치 혼란 같은 사회적 위기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순간, 순식간에 쪼그라들어서 자유 따위 신경쓰지 않는 범죄자나 극단주의자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그저 잔소리하는 엄마를 방에서 내쫓기만 해서는 자유를 보장받을 수 없다. 과도한 가사노동과 경력 단절에서 엄마를 해방시킬 때 나 역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유는 나 혼자 몰래 누릴 수 있는 사치재가 아니다. 다른 사회 구성원과 함께 만들고 공유해야 하는 공공재다. 오랫동안 자유롭고 싶다면, 타인에게 무관심할 자유부터 버려야 한다. 무관심은 자유의 적이다.
참고자료.
1. "한문철 TV", Youtude, 2023년 2월 6일 접속, https://www.youtube.com/@HANMOONCHULTV
2. 노리나 허츠, 고립의 시대. 홍정인 옮김, 경기도: 웅진지식하우스, 2021, p23.
3. 전우영, 사회적 배척과 심리적 통증, 서울: 학지사, 2021, p41.
4. 비벡 H 머시,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eBook], 이주영 역, 서울: 한국경제신문, 2020.
5. 이사야 벌린,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박동천 옮김, 서울: 아카넷, 2014, p347.
6. 이사야 벌린,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박동천 옮김, 서울: 아카넷, 2014, p348.
7. 이사야 벌린,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박동천 옮김, 서울: 아카넷, 2014, p347.
8. 애덤 스위프트, 정치의 생각, 김비환 옮김, 서울: 개마고원, 2013, p112
9.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eBook], 권기돈 옮김, 서울: 펭귄클래식,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