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 때 입에서 툭 튀어나오는 이름은 참 사랑이다. 난 아프거나 슬프거나 급할 땐 언제나 "엄마~"가 입에서 가슴에서 불쑥하고 올라온다. 엄마 걱정하실까 봐 싫은 소리 미운 소리는 속으로 삼키며 어지간하면 엄마 듣기에 부드러운 소리만 전달하려고 한다. 때론 하얀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엄만 그냥 속아주신다.
월요일이다.
아들은 월차를 내고 아파트 잔금을 치르러 갔다. 전세이긴 해도 아들 입장에서는 생애 첫 자기 집이니 맘이 설레기도 했겠지? 큰돈을 송금하며 좀 긴장도 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잔금을 치르고 아파트 입주 청소를 맡겼다. 청소부터 소독까지 첫 입주인 데다가 신혼살림이 들어갈걸 생각해서 전문가에게 맡겼다. 아들은 전입신고와 확정일자까지 다 받고 카페에서 신부를 기다린다고 한다. 퇴근 후 둘이 아파트를 둘러볼 거라고... 좋겠다. 얼마나 재미나고 신날까 싶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혼자 말이 많아진다.
"엄마 석이가 아파트 잔금 다 치르고 이제 이사 가면 돼요. 전입신고도 다하고 이제 자기 집에서 살게 되겠지요. 가을이라서 그런가 왠지 뭐~ 좀 그러네요."
"와~ 그카노?"
"공무원으로 36년을 지내고 정년을 한 후, 박스 공장에 취직한 그이, 자기 아파트로 이사 갈 아들, 학원은 원생이 줄어 텅 빈듯하고, 은행나무는 단풍이 너무 이쁘고 지나가는 가로수 낙엽은 떨어지고... 엄마 가을 맞나 벼~"
잠시 말을 멈췄다. 울 엄마 조용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 서운쿠먼" 하신다. 아니라고 말 못 하겠다. 또 잠시 정적이 흐른다
"그런 기라~ 그렇게 자식들 보내는 거라~, 다 그런기라~"
가끔 엄마는 해결사가 된다. 뭐 특별한 것도 아닌데 그냥 위로가 되고 그냥 치유가 된다. 엄마랑 통화는 심신 안정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미 겪어온 인생의 선배님이 아니던가?
저녁에 영상통화가 울린다. 며느리다. "어머니 저희 집에 왔어요. 한번 보세요" 그러더니 아파트 방방마다 다 비춰준다. 좋아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둘이 빈 아파트를 다니며 이런저런 신혼의 단꿈을 꾸겠지? 이쁜 아이들이다.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볼 때마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내 아이들이다.
좋은데 너무 기쁜데 갑자기 훅~하고 올라오는 감정은 어쩌나? 언제쯤 진정이 될래나? 아들이 이사 가도 나면? 결혼식 하고 나면? 아니 시간이 더 필요할래나?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온 아들은 나랑 눈이 마주치더니 "엄마 막걸리 한잔하실래요?" 뭔가 짠~해 보였나? 그렇게 둘이 막걸리를 한잔 하며 내 맘을 다 털어놓는다. 듣고만 있던 아들 "자주 올게요. 엄마도 자주 오세요" 한다.
"아냐. 아들 집에 자주 가는 거 아니래 너는 이제 너희들의 가정을 꾸리며 너희 집에 집중하고 살아, 할머니가 정답을 알려줬어"
"뭐라시는데요?"
"자식은 그런 거래, 사는 건 다 그런 거래." 마주 보고 웃는다. 남편 전화다. 나보고 철없다 한 소리 한다. 치이~ 얼른 끊었다.
자식이 여러 명이면 이런 맘이 덜할까? 그렇지는 않겠지? 나만 유난한가?
엄마의 건강과 아들의 행복을 위해 막걸리 한잔 건배하며 가슴속 구멍을 메워본다.
아들 독립으로 난 구멍과 남편의 용기 있는 선택 박스 공장 취업으로 난 구멍, 가을 낙엽이 너무 이뻐 난 허한 구멍, 줄어든 원생으로 텅 비어 보이는 학원으로 난 구멍이 한잔 술로 아니 아들의 미소와 엄마를 가만히 안아주는 그 따스함으로 메꿔본다. 막걸리 누가 만들었지? 없었으면 어쩔 뻔~ 가을엔 누구라도 가슴에 구멍 하나쯤 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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