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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잠결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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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피아노쌤 May 20. 2024

"할머니가 자꾸 따라와~" 2편


남편이 출근 후 진석일 깨울까 싶어 방문을 열어본다. 아이는 가벼운 코를 골며 잠에 푹 빠져있다. 깨우고 싶은데 어젯밤 잠결 대화에서 할머니가 따라온다고 우는 걸 봤다. 잠시 갈등을 한다. 학교 가야 하는데 초등학교 1학년 1반 이제 학교에 적응한 듯하다. 유치원과 달라진 환경이라 잘 다닐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친구들과 잘 어울린다. 

"조금만 더 재우자 딱 20분만" 

침대 위 작은 초록 시계는 7시 47분이다. 조금 전 남편의 출근 후 잠시 소파에 앉아본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4년인데 어린 외손주 꿈에 왜 나타나는 건지 괜한 원망이 올라온다. 그날의 교통사고를 아이가 본 후 충격 때문일까? 그러다 마리를 좌우로 흔든다.


"생각하지 말자" 


차를 한잔 마시고 싶다. 좋아하는 일리 커피 케냐 AA를 내린다. 커피를 내릴 때마다 황금색 크레마와 그 향은 입으로 맛보기 전에 눈이 먼저 호강하고 코가 먼저 벌렁거린다. 신혼 초 선물 받은 커플 잔을 일부러 꺼냈다. 하얀 백자도 자기에 초록 손잡이 그립감이 찰떡이다. 오른손에 들고 거실로 향하다 베란다 창을 열어본다. 


"어~ 비가 오네" 실비가 내린다. 5월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아파트 정원에 물 적신 초록이 시원하다.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바쁜 걸음을 쳐다본다. 


살짝 입술에 케냐 AA를 적신다. 역시 좋아하는 향이다. 예가체프와 콜롬비아 수프리모다. 과일향과 신맛 바디감이 풍부한 커피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이다. 입속의 향연이 시작되는 첫 시간이다. 


아파트 정원서 운동을 하는 노부부가 보인다. 떨어지는 비에 집으로 돌아가시나 보다. 흠칫 놀란다. 엄마 같다. 울엄마의 뒷모습과 너무 닮았다.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울 엄마 쌍둥이도 아닌데 저렇게 닮은 분이... 들고 있던 커피를 놓칠 뻔했다 아파트 정원 분수대를 돌아나가는 옆모습이 보인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커피를 왈칵 들이킨다. 


"앗 뜨거" 정신이 번쩍 든다. 다시 노부부를 찾는데 이미 지나가버린 후다. 베란다 창문을 닫고 거실로 들어온다.


소파 옆 스탠드 시계가 8시 3분이다. 아이를 깨워야지. 커피잔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아들 방으로 간다. 돌아서는데


"엄마~"

"진석이 깼니?"

"몇 시야?" 눈 비비며 아들이 파란 잠옷 바람으로 나온다.

"울 아들 잘 잤어?" 얼른 달려가 아들을 품으로 안고 궁둥이를 토닥인다.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볼 때마다 대견하다.

"나 쉬~" 

"그래 어서 쉬하고 씻고 와 엄마가 밥 준비할게"


남편이 먹고 간 아침상을 물리고 아들을 위해 계란 간장 잡과 조미김 하나 백김치를 준비했다. 


"엄마 나 또 꿈궜어?"

"아니~"

"어젯밤엔 잘 자던걸"

"그래? 근데 나 꿈꾼 것 같은 느낌이지?"

"아냐 엄마가 내내 너 옆에서 잤잖아" 거짓말을 해버렸다

"서두르자" 아파트 102동 옆에 학교가 있어 집에서 5분이면 학교에 도착이다 우리 아파트 뒤를 돌아 오른쪽 모퉁이에 있어 지각을 면한다. 


우산을 들고 아들과 학교로 향한다. 아파트 정원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진석이 소릴 지른다


"엄마 할머니다!"

얼른 고개를 돌린다. 아침에 본 할머니다. 빨간 상의가 눈에 확 들어온다.


"아니야 우리 할머니 돌아가셨잖아"

"맞아 할머니 맞아 똑같잖아" 아이는 뛰기 시작한다. 파란 우산 속으로 비가 들이치는데 진석인 그 할머니 앞으로 달려간다. 내심 나도 궁금하다. 너무 닮았다 말이다.


기어코 엄마랑 닮아 보이는 그 할머니 앞으로 다가선 진석이는 할머니 얼굴을 확인한다. 지나가다 놀랜 할머니는

"넌 누구니?" 다정하고 차분한 음성이다

"할머니 저예요 진석이 진석이요" 아이가 울 것 같다

얼른 달려간다

"죄송해요 아이가 외할머니와 모습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말을 이어가며 나도 고개를 들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엄마랑 똑같다. 너무도.

"그렇구나 너희 할머니랑 닮았구나"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바라본다. 온몸에 털이 곤두선다. 얼굴의 솜털마저 일어난다.

"할머니~ 할머니~" 진석이는 모르는 할머니 품으로 안긴다. 우산을 팽개쳐버리고... 그리고 운다. 

흑흑~~

놀란 할머니는 우산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아이의 등을 토닥인다. 

"그렇게 닮아 보이는구나"

"그래그래~" 아이를 달래주신다.

정신을 차리자. 지금 뭐 하는 거지?

"진석이 그만하고 학교 가야지 할머니 놀래실라?" 내 목소리가 떨린다. 일단 아이 학교를 보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비가 굵어진다.

아이 우산을 챙겨들고 진석일 할머니 품에서 떼어낸다.

"내가 그리 닮았소?" 

"흔한 얼굴이라 그런가 보오" 할머니가 아이를 떼어주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머리가 혼란하다

"몇 동에 사세요? 저희 친정엄마랑 참 많이 닮으셨어요"

"나 107동에 산다오"

"네~ 아침부터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아냐아냐 그럴 수 있죠" 할머니는 차분히 우산을 고쳐 쓰고 가던 길을 가신다.

진석인 우산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빨간 상의를 입은 뒷모습이 영락없는 엄마다 걸음걸이까지 닮았다. 엄마가 환생한 듯~


빗줄기가 더 굵어진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색색의 우산 커다란 가방을 멘 아이들 뒷모습이 보인다

"아들~ 학교 가자"

"엄마~ 우리 할머니 아냐?"

"응 참 많이 닮았다 그치"

"우리 할머니 맞는데...." 진석이 눈엔 아직 눈물이 고여있다.

"착각할만하다 근데 아냐"

둘은 말없이 학교로 향한다, 107동이라고 했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107동 쪽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어젯밤에 빨간 옷 입은 할머니를 봤는데 똑같은데..."

"뭐라고?"

"어젯밤 나 꿈꿨어 빨간 옷 할머니가 교통사고 나는 꿈 말이야"

"할머니가 머리에 피를 흘리고 누워있었어. 무서워서 울었는데 아무도 없었어 "

"꿈일 뿐이야"

"아닌데 저 할머닌데" 아이의 나지막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얼른 가자 늦겠다" 

서둘러 달리듯 학교 교문 앞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와 생각이 멈췄다. 107동 이랬지? 그 할머니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빗 줄긴 더 굵어져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비가 제법 올 모양이다.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해야겠다. 주방 창문을 열었다. 119 구급대 차량이 요란한 소리를 낸다. "사고 났나?" 무심히 고무장갑을 끼다 말고 밖을 내려다본다. 6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보이는 우리 집은 605호다. 


사고인가 보다.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창으로 승용차 한 대가 편의점 앞 가로수를 박았다. 119구급대가 빠르게 운전석 문을 연다. 가로수 옆 횡단보도에 사람이 넘어져있다. 


빨간 옷이다. 온몸에 소름이.

그 할머니...

아침에 본 그 할머니...

온몸이 얼어붙었다. 

우리 엄마 닮은 그 할머니가 틀림없다 뚜렷한 빨간 상의... 빗물에 흐르는 빨간 피가 보인다.


손에서 고무장갑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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