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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래토드 Mar 18. 2024

시간을 제어하는, 혹은 압도당하는

혹자는 삶의 시간이 영원하기를 갈망한다. 그럴 만큼 우리가 온전할까?


아버지께서 벽돌형 휴대폰을 들고 계실 때, 그 가격이 몇백만 원이라고 들었다. 어린 내게는 몇백 원과 비슷하게 들렸으나, 지금 내 손에 들린 아이폰의 가격을 떠올리니 이제 와서 믿기 힘든 가격이 된다. 집이나 사무실을 벗어나 어디서든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는 것이 당시로서는 큰 대가를 치를만한 경험으로 여겨졌었나 보다.


지금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라도 연락을 받을 수 있으니 안 받으면 큰일이라도 난 듯, 혹은 싫어서 안 받았다는 둥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왜 전화 안 받았어?"라는 물음에는, 그저 "휴대폰을 잘 안 쳐다봐요"라며 웃는다. 어느새 나는 지인들 사이에서 전화 안 받기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고대 시대라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유명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득히 먼 시대에 내가 살았어도 "그 이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는다오."라는 말을 듣고 살았을지도.  





나는 제대로 끼인 세대에 속했다. 


도스(DOS) 컴퓨터의 등장부터 이제껏 살아왔으니,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의 스펙트럼이 기억 속에서 무지개처럼 펼쳐진다. 앞으로는 또 어떤 세상을 보게 될까... 문득 두려워지는 순간도 있다. 


무지개 같은 시대의 스펙트럼을 잠시 들여다보면, 네트워크 간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시간의 여유도 사라지는 듯했다. 얼마든지 빠를 수 있기에 전과 같은 속도는 상대적으로 아주 느린 것이 되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기에 구심점 근처에 서지 않으면 휩쓸려가기 십상이었다. 그렇게 트렌드의 한가운데 서면서부터 그 변화하는 속도에 따라 시간도 더더욱 빠르게 흘러갔다. 



이 시대의 트렌트는 결국 시공간의 초월을 염원하기까지에 이르렀다. 

타임머신, 멀티버스는 곧 손 끝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지는 로망이다.


"만일 내가 그때 그랬더라면..."

"사건을 막을 수만 있었다면..."

"이렇게 태어났더라면..."


주로 후회와 애한으로 비롯된 소망이기도 하며, 동시간대의 어디선가 나보다 더 나은 내가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도 섞여있는 듯하다. 현생에 대한 불만족도 한몫한다. 이번 생과 바꿀 다른 생을 애타게 찾는다. 하지만 그 로망이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는지, 현재의 나를 원하는 시공간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아닌, 현실을 비현실로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대체현실(SR, Substitutional Reality) 


대체현실은 사람의 인지 프로세스를 왜곡시켜 가상 세계에서의 경험을 실제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기술을 말한다.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과는 달리, 대체현실 속의 사람은 그것이 실제가 아님을 인지하지 못한다. 



현실의 삶을 대체할 공간이 어디에서든 마련될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뇌의 한 공간에 새롭게 디자인된 다른 나를 인지하는 새로운 공간을 이식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진짜인지 스스로 깨닫는 것을 포기할 만큼, 실제는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닌 것일까? 


혹자는 삶의 시간이 영원하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사람의 몸을 대체할 물질을 찾아내기도 하고, 뇌의 데이터를 저장시켜 인식을 보존하기 원한다(Mind Uplording, Brain Emulation). 사람의 인식이 존재하는 한, 생물학적인 몸이 없더라도 삶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내가 아닌, 내가 인식하는 그것을 참이라고 정의 내리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그러한 세상이 좀처럼 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무한한 시공간을 벌어 과연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우리의 뜻은 그럴 가치가 있을 만큼 온전할까?


수많은 대체된 현실에서라도 반복될 

후회와 애한에 압도라도 당하려는 것일까?



상상력은 한정없이 흐른다더라도 나는 오히려 이것을 인정하게 된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이 땅에서의 나의 생은 한 번뿐이라는 것을.






나는 앞으로도 휴대폰을 잘 들여다보지 않는, 그런 고리타분한 류의 사람으로 살 것만 같다사실 이것은 나의 남은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보려는 아주 소심한 노력이다. 나의 세상에는 찰나라도 소중하고 귀한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키득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막내의 생떼

아침잠을 자고 일어난 남편의 쿰쿰한 입맞춤

뜨거운 악수 

싱거운 농담과 되받아치는 드립

지성과 감성의 박리

찰나의 기도로 구할 있는 생명과 같은 말이다. 


내게 있어 시간은 아무래도 그렇게 쓰라고 주어진 것만 같다.






that there should be time no longer:
더 이상의 시간은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 Revelation 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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