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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래토드 Mar 09. 2024

껍데기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을 향한 갈망



내가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 있었다. 소리 내어 먹는 모습과 그 먹는 소리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나도 먹는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입에 음식을 조심씩 넣고 입을 다문 채로 아주 천천히 먹었다. "와 신기하다. 너는 어떻게 먹는데 소리가 안 나냐?"라는 말을 친구들에게서 가끔씩 들었다. 그래서 웬만하게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함께 밥을 먹지 않는 나름대로의 규칙도 있었다.


뒤늦게 알게  것이, "선택적 소음과민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소리혐오증(misophonia, 미소포니아)"이었는데, 특정한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심하면 고통까지 느끼는 증상이라고 한다. 아무튼 내가 그랬던  같다. '그랬던  ' 이유는, 이제 더는 그렇지 아서다.



친정에서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날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서로가 어색한 부모님과 남편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빠는 남편과 티타임을 가지시고 엄마와 나는 정리를 하고 있는데, 부엌에서 엄마가 나를 따로 세우시고는 속삭이셨다.


"00아, 너 어떻게 견디니?"


"네?"


"먹는 소리, 너 그거 너무 싫어하잖아. 남편 하고는 어떻게 밥을 먹고 있어?"



집에 돌아와서 확인 차 남편에게 한상 거하게 차려주었다. 유심히 그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정말 농담 안 하고 엄청난 소리와 함께 아주 화통하게 먹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엄마에게, 남편이 그렇게 먹고 있었는데 나는 이제껏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너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며 엄청 웃으셨다.



심지어 내게는 남편의 먹는 소리를 인식하며 극복하는 과정도 없었다. 지금은 남편의 먹는 소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먹는 소리까지 전혀 괴롭지가 않다. 먹방 ASMR도 쉽사리 넘긴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원인 규명도 제대로 되지 않은 미소포니아 증상을 나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컴퓨터는 양자 컴퓨터라고 알려졌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는 이진법을 기반으로 한 컴퓨터인데, 이진법을 기반으로 한 컴퓨터 태생의 AI(artificial intelligence)는 사람의 인식 체계와 다르기 때문에 부단히 학습하고 데이터를 쌓아야 사람 같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양자 컴퓨터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사람의 사유 운영체계를 닮도록 고안된 것이기에, 반응이 이진법 기반의 컴퓨터와는 다르다. 1+1=2가 아니라, 부피와 결이 다른 수많은 1과 수많은 2를 생각한다. 철학적인, 다분히 인간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진법적 사고방식이라면 나는 남편과 사랑에 빠질 수가 없었다. "남편 = 혐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인식한 남편은 혐오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혐오를 인지하지도 못한 채 그와 사랑에 빠졌다. 결혼 후 12년이 지난 지금까지의 여전한 사랑이니, 콩깍지로 덮을 일은 아니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상대를 골라서 사랑하기에는

사람은 너무나 신비한 존재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상대를 찾는다는 시도는, 아직까지 드러나지도 않은... 나조차도 모르는 나에 대한 무한한 정보를 무시하고 시작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그녀(Her)'는, AI 운영체계가 각 사람을 분석한 후에 그 사람과 가장 잘 맞는 AI 개체를 매칭해 준다는 플롯을 가지고 시작한다. 사람에게서 얻은 트라우마로 인해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점점 멀어져 간 주인공 테오도르는 자신과 매칭된 AI 개체 서맨다와 가까워진다.


서맨다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고, 테오도르는 비로소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느낀다. 자신에게 완벽하다고 느낀 서맨다를 사랑하게 된 테오도르는 그 사랑을 토대로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어 그녀가 AI 개체라는 정체성마저 받아들인다. 그렇게 테오도르는 서맨다에게 머무르고 싶지만, 인간성의 한 지점에서 멈춰있는 테오도르 앞의 서맨다는 인간성의 무한한 세계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확장되어 나간다. 결국 서맨다는 테오도르에게서 벗어난다.


영화에서는 서맨다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존재로 여겨지지만, 어찌 보면 서맨다가 다니는 모든 공간은 인간의 뇌가 사유하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를 포기했을 때,

그는 껍데기(허울, semblance)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사람의 혐오...

나약함, 추함, 야비함, 이기심

차가운 눈빛, 큰 웃음소리 등.

그 모든 것들을 제거한다 해도,


남아있는 그것이 무엇이든

만들어진 그것이 어떤 것이든

사람은 결코 사람을 닮지 않은 것에 공감할 수 없다.


사람은,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사랑한다.

 

동물, 식물, 사물... 관념...

우주의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사람은 공감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공감하기에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사람이 AI를 사랑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사람이 기계를 사랑하게 되는 충격적인 사실이라기보다, 사람을 사랑하기 원했던 사람의 간절한 본능에서 비롯된 것일테다. 테오도르가 서맨다를 사랑했던 이유는 어쩌면 테오도르가 인간에게서 바라는 모습을 서맨다가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을 대체하여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뇌를 속이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없다.


사람 대신 무언가를 사용할 수는 있어도,

사람 그 자체를 대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우리는 아직 그 한계를 알지 못한다. 내가 인식초자 못한 채로 미소포니아를 극복한 것처럼, 사람에게는 여유로운 능력치가 있다.


우리의 뇌는 어쩌면 이렇게 무한한 용량으로 창조되었을까?

지금 우리는 그 용량의 최소한도 사용하지 못하면서

사랑하기를 멈추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은 극한 지성(intelligence mind)으로 모든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이 있다.


만일 사람을 뛰어넘는 어떤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보다 더 사랑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사람을 만드시고

심지어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사람의 모든 것을 공감하시고


모든 것을 공감하사

마침내 영원의 공간에서 다 이루시고

우리의 인식이 미처 가닿지 못하는 모든 영역에서

미리, 그리고 온전히 사람을 사랑하셨다


우리가 인식하는 하나님과 사람의 역사는

때로 피로 물들기도 하고

고통과 고난과 한이 서려있음에도,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존재를 향한

분노와 혐오가 삶의 끝까지 차올라 있을지라도,

그래서 신은 없고 나는 우연히 존재한다고 다짐해 보아도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는 전능은 아무것도 없다.


그의 사랑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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