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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래토드 Oct 20. 2024

모든 딸들의 그 날이, 부디


가슴 아픈 이혼을 겪으신 지인이 계셨다. 아버지인 그분이 자녀들을 맡아 최선을 다해 양육하고 계셨는데, 얼마 전에 딸이 월경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딸의 옷가지를 세탁하면서 너무나 놀라고 또 마음이 아프셨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셨다. 


"여성의 몸에서 그렇게 많은 피가 나오는지 몰랐어요..."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우리 딸들… 이제 곧 그 놀랍고도 위대한 기점에 다다르게 될 딸들을 바라보며 내 안에서도 애잔한 마음이 일었다. 딸들의 그날은 내가 겪었던 시절과 같이 막막하지 않고 조금 더 나아가 스스로를 축하할 수 있는 기쁜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하나둘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이 처음 월경을 맞이하는 그 날에, 나는 어떤 말을 건네면 좋을까,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 첫째 딸의 키가 이제 나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많이 자라게 되었다. 가슴과 골반이 오르고 유심히 보니 허리도 살짝 들어가면서 팔과 다리가 길쭉해지는 것이,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살펴보면서 편안하게 대화의 물꼬가 트일만한 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먼저 도서관으로 향했다. 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고 왜곡이 없는(어떠함에도 나의 기준일 테지만) 성교육 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다행히도 좋은 책을 발견하여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책을 마련해 놓고는, 동생들 틈바구니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첫째 딸을 살짝 불러냈다. 아홉 살 때부터 홈스쿨링을 시작한 딸에게는 내가 오늘 들려줄 이야기가 처음 듣는 내용일 수 있었다. 이 대화를 딸이 과연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며 긴장되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밝은 창가 옆에 딸과 함께 나란히 앉았다.



"기쁨아, 엄마가 요즘 기쁨이를 살펴보니 곧 생리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제가요? 정말요?”


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응. 사춘기에는 몸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월경이라고 하는 생리를 시작하는 거야."


평소 엄마 곁에서 월경의 존재를 자연스레 알게 되어 그런지, 딸은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와 여자의 몸은 서로 생김새가 달라. 이렇게 다른 이유는, 아빠와 엄마가 너희를 낳은 것처럼,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해서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생리는 여자의 몸이 이제 아기를 임신할 수 있을 만큼 자라게 되었다는 신호야. 그래서…"


나는 딸에게 책을 건네주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 딸이 생리를 시작하기 전에 엄마가 꼭 알려줄 것이 있어. 이 책에는 남자와 여자의 몸이 어떻게 다른지, 또 아기를 낳게 되는 과정이 어떠한지에 대해 나와있는데, 동생들이 보기에는 아직 이르니 혼자서만 읽어보고 엄마랑 다시 책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중간에 궁금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언제든지 물어보고."


“네!”


동생들은 읽을 수 없는 책을 가지게 되어 신이 난 딸은 환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바로 한적한 공간으로 가서 책을 읽기 시작하는 딸의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니, 아무래도 조금은 놀라는 눈치다. 다행히도 딸은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다시 와서 물어봐 주었다. 우리는 그 뒤로 며칠 동안 책의 몇 가지 내용을 함께 짚어가며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책의 말미에는 데이트 성폭력에 관해서도 지나치지 않으면서 분명하게 다루고 있었는데, 그 대목에서 딸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분노했다. 자연스럽게 '단순한 성적 호기심'과 '사랑의 관계'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그리고 책임감 없이 이루어지는 혼전 성관계가 누군가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극히 조금스럽고 진지했던 이 기간이 딸에게는 자신의 ‘성’을 조명해 보는 시간이었고, 나에게는 훗날 가정을 이루며 살아갈 딸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가만히 축복의 기도를 올리는 시간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함께 아침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정리하는 중에 딸이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며칠 전부터 배가 조금씩 아프다고 했는데, 그날 아침에도 배가 아프다고 해서 복통에 도움이 되는 따뜻한 차를 우려 준 뒤였다.


"엄마."


"응?"


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혹시 속상한 일이 있냐고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


"엄마... 그게 아니라."


앗! 감이 왔다. 방금 화장실에 다녀온 딸이었으니…


"혹시, 생리 시작한 거야?"


"네..."


나는 천천히 다가가서 딸을 꼭 안아줬다. 순간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 품 안에 안긴 이 여린 몸에서 이제 막 시작된 일이 짠하고도 무척 대견했다.


"와... 축하해. 우리 딸 정말 많이 컸구나."


"언니! 축하해."


곁에 있던 둘째 딸도 덩달아 언니를 둘러쌌다.


"그런데, 언니 왜 축하해요?"


"기쁨아, 승리한테 말해도 돼?”


첫째 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승리야, 언니가 지금 생리를 시작했어.'


"오 정말요? 우와 언니도 이제 엄마처럼 생리해? 와 축하해."


살짝 짓궂게 웃는 둘째 딸의 표정을 보며, 이 해맑은 아이와도 몇 년 뒤면 나누게 될 대화의 과정이 그려졌다.


그렇게 짧은 축하를 마치자마자 나는 얼른 화장실 선반에서 생리대 하나를 꺼내왔다. 초경이라 아무래도 서투르고 불안할 수 있어서, 보다 든든한 ‘오버나이트 형’을 가지고 와서 어떻게 하면 속옷에 잘 맞추어서 부착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갈아입고 가지고 나온 옷에 뭍은 생리혈을 함께 손빨래하고는, 다음에도 옷에 생리혈이 묻었을 때는 이렇게 손빨래를 먼저 하고 다른 빨랫감과 함께 세탁을 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조심하더라도 이따금씩 옷에 묻어날 수 있으니 당황하지 말고, 외출할 때는 여벌옷을 함께 챙겨가면 안심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딸은 하루종일 생각에 잠기다가 질문하기를 반복했다. 그래, 묻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을까?


"엄마, 생리는 얼마나 오래 해요?"


"시작한 지 1-3일 정도는 생리혈이 많이 나오다가 그 뒤로는 조금씩 나올 거야. 이건 사람마다 많이 다를 수 있는데, 흔히는 일주일에서 10일 동안 하게 되는 것 같아. 이런 생리를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거야."


"엄마, 그런데 생리대는 언제 바꾸어야 해요?"

 

"생리혈이 나오는 양에 따라 다른데, 많이 나올 때는 2-3시간마다 바꿔주고 혹시 그전에라도 생리대가 더는 흡수할 수 없을 만큼 가득 차면 바로 바꾸어주면 돼. 생리 초반에는 이렇게 큰 생리대를 착용하다가 양이 서서히 줄어들면 크기가 한 단계 작은 생리대로 바꾸어 줘. 그리고 이건 팬티라이너인데 거의 나오지 않고 조금씩 묻어 나올 때 사용하면 정말 편해."


"엄마, 이제 배가 많이 아플까요?"


"많은 양이 나올 때에는 배가 더 아플 수가 있는데, 그럴 때는 부작용이 적은 진통제를 소량 먹을 수도 있으니 너무 힘들면 엄마한테 말해."



나 역시 뒤돌아 섰다가도 다시 딸을 붙잡고 계속해서 떠오르는 내용을 이것저것 말해주느라 들뜨고 정신이 없었다. 딸은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다고 웃음을 터트렸다.



"기쁨아, 이제 전보다 몸을 더욱 자상하게 살펴줘야 해. 이 생리혈들은 여자의 몸에서 아기를 키우게 될 때를 대비해 모아둔 양분이 빠져나오는 거야. 그러니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영양소가 필요했겠어? 이제부터 좋은 음식들을 더욱 잘 먹고, 더욱 건강하게 몸을 관리하자."


나는 식재료 선반에서 미역을 꺼내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오는 길에 맛있는 케이크 하나를 사 와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놀랍고 기쁜 소식도 전했다.


"우와. 우리 딸이 정말 많이 컸네요. 그럼... 딸기 케이크가 좋겠죠?"


딸기의 꽃말은, '사랑과 존중, 예언 그리고 행복한 가정'이다. 그런 의미를 가진 딸기 케이크라니, 더할 나위 없었다.


"네! 좋지요!"


자신과 같은 귀한 존재를 낳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하여 나아가는 딸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하나님의 그늘 아래 안연히 놓일 아이의 삶을 예언하고 더 나아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온 가족이 마음을 다해 축복하는 날이었다.


그날 저녁에 열린 작은 가족 파티에서, 케이크 위의 촛불 하나를 불어낸 딸의 얼굴은 환하고도 어여뻤다.






환하고도 어여쁜 세상의 모든 딸들의 그 날이

부디 막막하지 않고,

자신과 미래를 향한 기쁨으로 가득하기를...

그들의 삶에 사랑과 존중,

그리고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글에서,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본명이 아닌 태명으로 표기하였습니다.


photo by : #natischia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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