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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소라게

엄마는,

by 바스락

흔히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을 보면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엄마는 동네에서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삶은 법 없이도 살 사람에게 정직하지 않다.


욕심 없는 삶

열정 없는 삶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삶

착한 사람, 세상은 그런 사람에게 많은 시련과 아픔,

역경마저 선한 마음으로 이겨내길 원한다.

착하고 이해심이 많다고 쌀통을 채워주지 않는다.


엄마의 선함은 어린 나에게 빈곤이었고,

엄마의 배려는 어린 나에게 좌절이었다.

엄마의 역경은 고스란히 내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였다.


새벽부터 벌초를 하고 작은 이모댁으로 엄마를 모시러 갔다.

초라한 엄마, 애써 웃고 있는 엄마,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하게 외롭다.

자식이 많다고 노년이 풍요롭지 않다.

열심히 살았다고 노년에 보상을 받는 건 아니다.


왜 인생은 조금의 변화도 허락하지 않는 걸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엄마 인생에 햇살이 드리울 거라 생각했다.

반짝이는 햇살 같은 미소가 엄마게에도 찾아 갈거라 생각했다.


침침한 눈에 공허가 가득하다.


'염병할 인생이 이라고 초라할끄나'


엄마는 몇 해 전 다리 수술로 거동이 불편해지셨다. 시골을 떠나지 않겠다던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서울 오빠집에서 지내게 되었고, 이래저래 몇 년 가슴앓이를 하시고는

못내 혼자 살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치셨다.


초라한 삶은 대물림되었고, 흔쾌히 방 하나 얻어줄 자식이 없다.

표면적으론 혼자 지내는 엄마를 걱정했지만, 사실은 주머니 사정이 다를 바 없는 자식들의

궁색한 변명이다.


"그때 그라고 눌러 앙거서 그라냐, 인자는 시골집에 갈 수나 있을랑가 몰것다"


담벼락 사이을 누비던 접시꽃, 마당 한가운데 옹기종이 피어 있던 채송화,

엄마의 소라게였던 작고 초라했던 시골집이 그리워 눈시울이 붉어진다.





평생 고통만 따르던 엄마 인생에 봄날은 언제였을까,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지니고 있는 엄마는 언제쯤 자식들에게 떳떳하게 챙김을 챙길 수 있을까,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엄마 얼굴에 노란 접시꽃이 너울 거린다.


엄마를 닮고 싶지 않았는데, 나의 침묵은 가끔 엄마의 뒷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엄마의 침묵이 두려웠다. 언제고 훌쩍 떠날 것 같은 엄마의

슬픈 웃음이 애잔했다.


투정 모르는 착한 딸은 엄마의 슬픔을 고스란히 먹고 자랐고, 이제는 차마 엄마를

위로하고 안아주고 싶다. 그동안 너무 애쓰셨다고, 쓰리고 아팠던 세월을 잘 견디셨다고,

곪아버린 속살이 더 이상 짓무르지 않기를 바란다고,


긴 세월 엄마는 엄마 삶을 원망했고, 우리는 우리 삶을 원망하며 살아왔다. 결국 그 원망의 끝은

서로를 향해 있었다. 원망은 위로받고 싶은 다른 표현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엄마의 염병할 인생은 잊어버리고 노란 접시꽃 같은 소라게를 찾았으면 합니다. 여전히 엄마는

나의 버팀목이니까요.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있는 것은 현재뿐이다.
현재의 삶은 매 순간이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하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공부> 레프 톨스토이


(사진출처 : 픽사베이)


#엄마#마음#삶#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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