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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으로 깨닫는 사태

마음 일기

by 바스락

다리를 다쳤다.

잊고 있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한동안 아버지를 만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금씩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굳이 꺼내려 하지 않았다.


붙잡으려 애썼던 순간의 절실함은 무심함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끈질기게 매달릴 때는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더니, 다리를 다치고서야 알았다.


아버지를 잊고 지낸 시간은 없었다는 걸, 나의 유년 시절을 가득 채운 아버지와의 기억을

매번 무지갯빛으로 재조명하려 했던 나의 노력은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이었다.

나를 속이는 거짓말이었다.


힘든 걸 힘들다고 하면 더 힘들어지고, 아픈 걸 아프다고 하면 더 아프고 슬픈 걸 슬프다고 하면

더 슬퍼지듯, 괜찮다고 하니 괜찮은 것도 같았다.


방법을 몰랐다. 괜찮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독이면 그걸로 끝이라 생각했는데,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했다. 나에게 주는 보상에 꿈은 없었다. 현실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자기최면만 있었다.


가능성이란 '꿈'이 달나라 먼 나라 이야기였던 학창 시절. 삶의 주체가 '내'가 되어 본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이방인처럼 살았던 삶에 '꿈'은 희망 고문이었다.


인생 반백을 앞두고 꿈꾸고 꿈을 품고 꿈을 향해 걷는 연습을 한다.


명절을 앞두고 다리를 크게 다쳤다. 언제나 그렇듯 없던 계단이 생기고 있던 계단이 사라졌다. 사막의 오아시스가 눈앞에 있었는데,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사라진 것처럼, 생각에 빠져 길을 걷다 넘어졌는데, 오른쪽 다리가 시멘트에 갈렸다. 무릎은 돌부리에 찍혀 탁구공만 한 홈이 생겼다.

(갤럭시 울트라! 보다 큰 상처라고 남편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번쩍 들어 올린다)


명절 일정에 차질 없도록 꼭꼭 숨긴 상처가 들통난 건 친정에 도착해서다. 참고 있던 통증이 엄마를 보자 무장해제라도 된 것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 며칠 잘 듣던 통증약도 듣지 않고, 상처에서 흘러내린 탁하고 노란 진물이 옷에 묻어 걸을 때마다 살에 붙는 느낌이 거슬렀다.


연휴가 끝난 금요일 점심,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았다. 상처 범위가 꽤 넓고 깊었다. 너무 늦게 병원에 왔다는 의사 선생님의 핀잔을 뒤로하고 나오는데 찌릿하게 밀려오는 통증에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오른쪽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으니 당연히 왼쪽 다리에 온 힘이 실렸고, 병원에서 5분 거리 회사가 천 리 길보다 멀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평생을 이렇게 걸었다. 한쪽 다리에 온 힘을 싣고, 앞서 걸어가는 타인의 뒷모습을 보며, 쉬기를 반복하며 천 리 길 같던 인생을 꿈도 뭣도 없이 사셨다.


아버지 지팡이가 싫었다.

아버지 작은 지팡이가 되어 주고 싶었다.


글을 쓰면서 속이 답답했던 건 혼탁한 감정을 무지갯빛으로 만들고 싶은 자기최면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꼭 사태를 통해서만 현재의 미숙함을 깨닫는다. 다리를 다치지 않았더라면 통증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아버지의 통증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뉘우치는 오들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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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나에게 전하는 말,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죽음의 수용소 _빅터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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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