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내가 예술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마다 가슴께가 조인다. 아무리 용을 써도 예술의 한복판에 설 수는 없겠구나. 예술가의 가면을 써도, 그들의 몸짓을 흉내 내도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가는 그들의 삶과 작품이 한 줄기로 관통된다. 그들이 살아가는 것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 사이의 거리는 0이다.
내 삶과 내가 부르는 것 내가 쓰는 것이 제각기 따로 논다. 내 삶과 말과 글과 노래 각각이 각각의 가식이다. 영원히 비예술인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받아들이기가 왜 이리 힘든지. 욕심을 부리지 말고 질투하지 말자. 나는 선망하는 것이 너무 많아 불행하다.
사람은 저마다 열망하는 분야가 있다. 나의 경우는 문학이다. 문학에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사람을 보면, 그러니까 내 또래를 보면 자격지심이 든다. 그 사람이 특히나 내가 아는 사람일 경우에는 더하다. 괜스레 의기소침해지고, 그 사람의 '예술적인' 행보를 보면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왜 저런 재능이 없지?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용기가 탐난다. 이 질투심이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내 정신이 연약해질 때는 여지없다.
오늘은 카페에서 지인과 커피를 마시며 문학과 예술과 꿈에 대해 논했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해리포터 시리즈' 중 어떤 쪽이 진짜 문학인지. 진짜 예술은 누가 정의할 수 있고, 어디에 있는지. 내 생각의 변화 과정을 짧게 설명하자면, 나는 이야기로 된 모든 것은 예술의 범주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특히나 소설 같은 경우에는 그림이나 음악과 달리 구체적인 스토리를 담을 수 있다. 그 스토리의 예술성은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대학을 다닐 때는 내심 순수소설(문학)이 장르소설(문학)에 비해 우월하고 고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문학은 인간의 내면과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깊이 고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작가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있고, 그 사람만이 구축할 수 있는 세계가 있어야 문학이 예술적인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문학의 시작이자 본질은 '이야기'이고, 이야기의 본분은 '재미'가 아닌가. 인간이 '재미'를 추구했기 때문에 '이야기'가 탄생했고 발전했을 테니까 말이다.
재밌는 이야기가 먼저 있고, 그 재밌는 이야기가 왜 재밌는지 탐구하기 위해 문학이라는 학문이 생긴 것도 같다. 예를 들어, 우리가 교과서로 접하는 춘향전도 처음에는 시장바닥에서 대중에게 말초적인 재미를 주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나. 이야기의 본령이 재미라면, 지금의 웹소설(장르소설) 또한 재미를 충실하게 추구하고 있으니 문학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순문학과는 다른 재미를 주는 별개의 장르로서 말이다. 순문학은 삶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게 하는 어떤 '깊은' 재미를 주지만, 장르문학은 삶을 잠시 잊게 하는 어떤 '가벼운' 재미를 주는 차이가 있으니. 물론 웹소설이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할 만한지는 회의적이다.
뭐 이런 생각의 흐름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2023년 현재 나의 생각은 대강 이렇다. 그런데도, 진짜 문학다운 문학이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건지, 왜 나는 순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또래에게 열등감을 느끼나. 그러지 말자고 매번 다짐하는데도 이런 글이 써지는 걸 보면 아직 멀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