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기차 시간표 전쟁 -A. J. P. 테일러-

by 폴리래티스


제1차 세계대전은 전쟁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라는 수식어가 붙은 전쟁이다. 국지전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사건이 전 지구적 비극으로 확장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그것은 '동맹 간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1871년 독일 통일 이후, 비스마르크는 프랑스를 고립시키기 위해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삼제동맹을 맺었다. 이후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동맹이 형성되었고, 이에 대항해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손을 잡았다. 유럽은 거대한 두 개의 동맹 블록으로 나뉘어 팽팽한 긴장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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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6월,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당하자 이 복잡한 도미노가 쓰러지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자, 러시아는 발칸의 패권을 명분으로 참전했다. 독일은 러시아에,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 차례로 선전포고를 했다. 정치, 사회, 경제, 지정학적 요소가 뒤엉킨 이 전쟁은 오랜 평화를 누리던 유럽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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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각 국가는 자신의 가치를 과대평가했고, 동맹을 권력 유지의 수단이자 절대적인 의존 대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 믿음은 전쟁의 확전을 막는 안전장치가 아니라, 전쟁의 규모를 키우는 기폭제가 되었다.



전쟁 전, 각국의 계획은 서류상으로 완벽했다. 모든 젊은 남성은 2~3년간 군사훈련을 받고 예비군으로 편성되었다. 전쟁이 발발하면 사회 곳곳에 있던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집결하고, 군수 물자와 식량이 정해진 시간표대로 전선에 배치되는 시나리오였다. 수년간 다듬어진 이 동원 계획은 빈틈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시간표는 전쟁 시작과 동시에 삐걱거렸다.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계획에는 '적'의 존재가 고려되지 않았다.


누가, 언제, 어떤 교통수단으로 모일지 모든 것은 철저히 '내부적 기준'으로만 수립되었다. 적이 철도를 폭격하거나, 보급로를 차단하는 변수는 계획에 없었다. 영국의 한 의무관이 남긴 말은 이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군의 의료체계는 사상자가 생기지 않았다면 완벽하게 돌아갔을 겁니다."


그들의 계획은 완벽했다. 적이 방해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우리는 이 역사적 교훈을 투자 시장에서 매일 마주한다. 투자자들은 늘 그럴싸한 계획을 세우고 거래를 시작한다. 단기 투자자는 빠르게 수익을 내고 빠져나오는 시나리오를 짠다. 자신이 고점에 물릴 수도 있다는 변수는 배제한 채 말이다.


장기 투자자의 엑셀 시트에는 몇 년 뒤 우상향해 있을 아름다운 주가 그래프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할 지루한 횡보와 공포스러운 폭락은 계획에 없다. 장기 투자자의 계획에는 종종 '변동성'이라는 가장 중요한 적이 빠져 있다.


그래서 조금의 수익에도 잃을까 두려워 매도 버튼을 누르고, 예상치 못한 하락 앞에서는 공포에 질려 손절하거나 비자발적 장기 투자자가 된다. 내부적인 기준(희망 회로)으로만 세운 계획은 시장이라는 외부의 변수(적)를 만나는 순간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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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예언이 아니다. 예측 또한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1차 대전의 장군들이나 오늘날의 투자자들이나, 우리는 어떤 변수가 어떻게 우리를 타격할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가 세워야 할 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오히려 계획에 없던 변수가 발생했을 때, 내 시나리오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시장은 사상자가 생기지 않아야 완벽하게 돌아가는 의료체계가 아니다. 사상자가 생기고, 포탄이 떨어지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유연함, 그것이 투자의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계획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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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J. P. 테일러(지은이), 유영수(옮긴이) 페이퍼로드2022-08-26

원제 : War by Timetable: How the First World War Began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