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 -제프리 웨스트-
최근 한 여자 연예인이 방송에서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투자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그녀는 7년 전 지인의 추천으로 산 주식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 종목이 엔비디아였기 때문이다.
시계를 7년 전인 2018년 1월로 돌려보면 당시 엔비디아의 주가는 약 200달러였다. 이후 두 차례의 액면분할을 고려해 현재 주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주당 약 5달러에 매수한 셈이 된다.
현재 엔비디아 주가는 185달러 수준이다. 단순 계산으로 수익률은 약 3600퍼센트에 달한다. 그녀가 정확히 얼마나 많은 수량을 보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숫자만 놓고 보면 누구라도 감탄할 만한 성과다.
이런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SK하이닉스 주가가 급등하자, 오랜 시간 묵묵히 주식을 모아온 장기 투자자들의 계좌 인증이 눈에 띄게 늘었다.
수백 퍼센트의 수익률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역시 우량주 장기투자가 정답이라는 생각이다.
워런 버핏을 비롯한 많은 투자 구루들도 같은 말을 한다. 좋은 기업을 골라 오래 보유하라는 조언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번 멈춰 서서 냉정하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개별 기업에 대한 장기투자가 늘 우리 모두에게 엔비디아와 같은 결과를 안겨주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의외로 차가운 시선을 제공하는 사람이 있다. 복잡계 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다. 그는 생명체, 기업, 도시처럼 전혀 달라 보이는 대상들이 공통된 스케일 법칙을 따른다고 말한다. 그의 관점에서 핵심은 성장 자체가 아니라 구조다.
제프리 웨스트는 기업을 생명체와 유사한 존재로 본다. 생명체는 몸집이 커질수록 에너지 효율은 좋아지지만, 동시에 움직임은 둔해지고 수명에는 한계가 생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초기에는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로 빠르게 성장하지만,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관료주의와 관리 비용이 증가하고 혁신 속도는 둔화된다.
스타트업 시절의 민첩함은 사라지고, 안정과 관리가 우선되는 순간 성장은 정체 국면에 들어선다. 이 구조적 한계는 숫자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1958년 기준으로 S&P 500 기업의 평균 수명은 약 61년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 수명은 18년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단순한 산업 변화의 결과가 아니다. 경쟁 속도가 빨라지고 기술 전환 주기가 짧아지면서, 기업이라는 조직이 구조적으로 오래 버티기 어려워졌다는 신호다.
맥킨지의 분석은 이 흐름을 더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2027년이 되면 현재 S&P 500에 속한 기업의 약 75퍼센트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합병되거나, 분할되거나, 경쟁에서 밀려 지수 밖으로 퇴출되는 방식일 뿐, 결과적으로는 동일하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기업 대부분은 장기투자의 시간축 위에서 생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제프리 웨스트는 이를 기업의 반감기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상장 기업의 평균 반감기는 약 10.5년이다. 이는 동일한 시점에 존재하던 기업 집단의 절반이 10년 남짓한 시간 안에 사라진다는 의미다. 기업은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소멸 확률이 누적되는 구조를 가진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기업이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는 경영자의 무능이나 운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조직은 커질수록 복잡해지고, 의사결정은 느려지며, 변화에 대한 적응력은 떨어진다. 우리가 영원할 것이라 믿는 기업의 가치는 구조적으로 0을 향해 수렴하는 경향을 가진다.
우리는 엔비디아와 같은 성공 사례를 보고 규칙을 착각한다. 살아남은 기업만이 이야기로 남고, 사라진 기업은 기억에서 지워진다. 이것이 생존자 편향이다. 개별 종목 장기투자는 본질적으로 이런 편향 위에서 이루어진다. 한 기업이 구조적 한계를 넘어 오랫동안 혁신을 지속할 것이라는 가정에 베팅하는 행위다. 성공할 수는 있지만, 확률적으로는 희귀한 선택이다.
반면 지수 투자는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진다. 지수는 하나의 기업이 아니라 기업들의 집합이다. 어떤 기업은 성장하고, 어떤 기업은 쇠퇴하며, 어떤 기업은 사라진다. 이 과정이 자동으로 반영된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은 퇴출되고, 새로운 혁신 기업은 편입된다. 웨스트의 언어로 말하면 지수는 생명체가 아니라 도시와 닮아 있다.
도시는 개인이나 기업이 사라져도 존속한다. 로마와 런던, 뉴욕과 서울이 수백 년을 넘어 살아남은 이유다. 지수 역시 마찬가지다. 지수 투자는 특정 기업의 영속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교체와 경쟁이 반복되는 구조 자체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이 글의 요지는 개별 종목에 투자하지 말라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장기투자라는 말이 마치 만능 공식처럼 받아들여지는 데 있다. 오래 들고 가면 언젠가는 보상받을 것이라는 믿음은 구조를 무시한 신념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내가 투자한 대상이 어떤 구조 위에 서 있는가다.
엔비디아의 성공은 분명 대단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장기투자의 보편적 정답은 아니다. 장기투자를 하더라도, 개별 기업이 구조적으로 늙어가는 존재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교체와 혁신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인지 구분해야 한다.
평균에 베팅하는 것과 예외에 베팅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게임이다. 이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투자는 신화에서 구조의 영역으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