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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May 13. 2024

2-4패턴이 주는 오류

패턴이 주는 오류

 

 확신에 빠지는 두 번째 오류는 패턴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모든 곳에서 패턴을 찾을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무작위 배열에서도 패턴을 찾으려 애쓴다. 인간이 패턴을 찾는 습성은 생존을 위한 행동이다. 원시시대에 살던 인류에게 패턴을 얼마나 빠르게 익히는지 여부는 생존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맹수가 다니는 길목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길목을 지났던 인류는 맹수에게 자주 습격을 당했다. 몇 차례 맹수의 습격을 받고 나서야 그 길목으로 다니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길목과 맹수를 묶어서 패턴화 했다. 다른 길목으로 돌아가면서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8월에서 10월이 되면 나무에 열매가 열린다. 몇 차례 이를 경험한 인류는 8월에서 10월이 되면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 찾아 다녔다. 3월부터 10월에는 다른 시기에 열리는 열매를 패턴화 해서 찾아다녔다. 그렇게 인류는 패턴화에 성공해서 살아남았을 것이다. 패턴화를 빨리 하는 인류가 더 오래 살아남았고, 그 유전자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아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모든 일을 연관 지어 패턴화 하려고 노력한다. 니콜라스 나심 탈레브는 <<블랙스완>>에서 패턴화는 반대로 생존에 위협을 준다고 말한다. 칠면조가 100일동안 농장에서 별 일 없이 지냈다.칠면조에게 농장은 안락한 곳이고, 생존에 그 어떤 위협도 받지 않는 곳이다. 오전 10시가 되면 농장 주인은 칠면조에게 먹이를 공급한다. 칠면조에게 10시는 식사시간이다. 칠면조에게 농장은 생존에 중요한 둥지다. 하지만 101일이 되던 날 칠면조는 10시에 도축 당했다. 칠면조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간에 말이다. 


 패턴은 인류 생존에 도움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패턴을 형성하는 근거가 되는 사례가 충분하지 않다. 맹수가 다니는 길목을 피해 돌아다니자 맹수의 습격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생존에 도움이 됐지만, 맹수가 그 길목으로 다녔던 이유가 사냥감 많은 길목이었기 때문이라면 어떨까? 인간이 다른 길목으로 다니면 맹수도 다른 길목으로 다닐 테니 말이다. 길목을 옮기고 맹수가 없다는 점을 맹신해 경계를 풀고 다니던 인류는 어떻게 됐을까?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사례가 부족한 패턴에 확신을 더한다면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따듯한 날씨가 되면 봄 꽃이 핀다. 사과 꽃은 4월초에 핀다. 사과나무는 이 패턴에 익숙해져 있다. 겨울이지나 따듯한 날씨가 되면 꽃을 피운다.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유혹하고 수정한다. 하지만 가끔 이른 날에 따듯한 날씨가 찾아오기도 한다. 사과나무는 따듯한 날을 믿고 꽃을 피운다. 하지만 기상 이변으로 빨리 찾아온 따듯함이 매서운 꽃샘추위로 다시 변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한번 맺힌 꽃은 추위에 취약하다. 맺힌 꽃은 모두 얼어 죽게 된다. 사과나무는 꽃이 얼어 죽어 수정에 실패한다. 절대적 진리라고 여겨지는 계절의 변화도 이토록 변동성이 심하다. 물론 해가 동쪽에서 뜨는 절대적 진리도 있다. 하지만 우주의 나이만큼 돌아가 보면 처음부터 동쪽에서 해가 뜨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지구가 없었다. 너무 터무니없는 예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몇 번 반복됐다고 해서 확신을 가지면 위험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지식이란 무엇일까? 칼 포퍼는 근본 무지론을 주장했다. 그는 지식이 근본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식은 한정적이고, 무지는 필연적으로 무한하기 때문이다. 지식이란 이전의 지식을 수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현재 우리가 지식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어느 순간 반증되고 사실이 아니게 된다. 교과서가 교과과정에 따라 수정되는 이유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지동설도 천동설에 가려져 있던 시간이 있었다. 검증할 수 없는 것은 과학이라 부를 수 없다. 검증은 반증과 논박을 열어둔다. 오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류를 탐구하고, 비판하며 진리에 다가간다. 하지만 투자 시장은 모순에 빠져 있다. 경제학이 물리학을 선망해 사회과학을 수학 공식으로 풀어내려는 모순에 빠졌다면, 투자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식을 만들고 모든 상황에 대입해서 정답을 찾으려고 한다.


 주가가 떨어지면 더 산다는 “바이더 딥” 전략도 같은 맥락이다. 몇 차례 동일한 방법으로 돈을 번 경험이 패턴을 형성하고 확신을 갖게 한다. 단순히 유동성이 넘치던 시대라서 통했던 전략임을 뒤늦게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런 식의 패턴화로 돈을 번 투자자는 자신의 패턴이 마치 마치 우주의 비밀이라도 푼 것처럼 흥분한다. 마치 세상의 진리를 유일하게 풀어낸 사람이라도 된 듯 착각한다. 그들이 발견해낸 비밀스러운 기법은 이전에 누군가가 생각하고 투자해본 기법일 수 있다. 그들과 다른 점은 바로 언제 기법을 이용해 투자했는지 그 차이뿐이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말이다. 


  주식 시장에서 공식을 만들어 수학에서 사용하듯 어느 시점에나 똑같이 대입하는 것은 운에 투자를 맡기는 행위다. 주식시장은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똑 같은 상황도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투자 시장에서 단골로 사용되는 지표 몇 개만 살펴봐도 이해가 쉽다. 실업률은 경제 상황을 유추하는데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주식 시장은 이를 그때 그때 다르게 해석한다. 주식 시장이 활황일 때는 높은 실업률이 오히려 호재다. 실업률이 높을 경우 연준이 쉽사리 금리를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낮은 실업율은 금리 인상의 우려로 오히려 악재가 된다. 주식 시장이 불황을 겪고 있다면, 기업은 투자를 꺼리고 구조조정에 앞장선다. 그렇게 한동안 경기가 후퇴할 때 실업률이 점점 낮아진다면 이는 경기가 좋아진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주식 시장은 이를 호재로 받아들인다. 물론 이렇게 설명하는 자체도 예시일 뿐이다. 


 앞서 설명한 상황에서 반대의 실업률이 오히려 호재가 되기도 하고 악재가 되기도 한다. 미스터 마켓은 일일이 대응하기 어려운 변덕성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지표 해석 마저도 그때 그때 다른데 주식 시장에서 패턴에 확신을 가지고 투자한다는 게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행동인지 인지해야 한다. 이 간단한 패턴 마저도 쓰지 않고 어떻게 주식 시장에서 투자를 하라는 말인가? 답답한 마음 이해된다. 무조건 배척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패턴은 인간의 본능이고 생존에 도움이 됐다. 다만 확신하지 말라는 충고다. 소크라테스의 지혜를 빌릴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다면 전투에서는 패배해도 전쟁에서는 패배하지 않을 수 있다. 한 두번의 투자에서는 아쉬운 결과를 맞이할 수 있으나 결국에는 승리하는 길이다. 좋은 패턴이 눈에 보인다면 다음과 주문을 외워보면 도움이 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적용하기 좋은 패턴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 있음 또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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