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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May 06. 2024

2-3 정보가 주는 함정

 정보가 주는 함정

 

 투자시장에서 거래량이 발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래량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정보다. 투자자에게 정보는 모든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정보가 아예 없는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도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심지어 도박도 정보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투자시장에서 정보를 가진 자는 곧 권력과 돈을 얻을 수 있었다. 현대에 등장한 HTS나 MTS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개인이 매매를 하는 세상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개인이 거래하는 세상이 오기전에는 주식 중개인을 통해서 매매하거나 투자사에 돈을 맡겼다. 주식 중개인과 투자사에게 정보는 수익과 직결됐다.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사람들이 그들을 찾았고 돈을 맡겼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집에서 클릭 한 번으로 세상애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소수만이 정보를 독점했고, 그래서 정보는 권력이자 돈이었다.


 음모론의 단골로 등장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힘도 정보에서 나왔다. 1744년 유태인 격리지역인 게토에서 출생한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가난했지만 비상한 머리로 사업 수완을 배웠다. 당시 귀족들은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골동품을 모았는데, 이를 본 마이어는 골동품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골동품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골동품 모으기를 즐겨했던 헤센 왕국의 왕세자인 윌리엄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윌리엄 왕세자와의 친분 덕에 그는 왕실에서 일하게 됐고 곧 윌리엄은 빌헬름 9세로 즉위했다. 하지만 헤센 왕국은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에 패했고, 윌리엄 왕세자는 국외로 도망쳤다. 


 마이어는 남아서 왕실의 재산을 은폐한 뒤 남았지만, 본인의 재산은 모두 몰수당하고 말았다. 그동안 모은 재산을 모두 빼앗겼지만 오히려 그에게는 이 일이 기회가 됐다. 돌아온 빌헬름 9세는 왕실 재산을 지켜낸 로스차일드에게 왕실 재정을 책임지는 임무를 맡겼다. 왕실 재정 대리인이 된 그는 자신의 다섯 아들에게 유럽 각국을 돌며 왕실 국고를 수금하는 일을 맡겼다.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큰 은행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첫째 아들인 암셀은 프랑크 푸르트의 본점을, 둘째인 살로몬은 새로운 시장 개척을 맡겼다. 셋째인 네이선은 영국으로 보냈고, 넷째는 나폴리, 다섯째는 파리로 보냈다. 이들 형제는 각별한 사이를 유지했고, 서로 긴밀하게 정보를 공유했다. 당시 세계 금융의 중심지는 런던이었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셋째 네이선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런던 금융가에서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힘은 단순히 돈에서 나오지 않았다. 바로 정보에서 나왔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다음 일화는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영국의 군수 책임자였던 존 헤리스는 네이선에게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던 웰링턴 공에게 군수 장비를 전달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네이선은 유럽 전역에 형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도움을 받아 어렵지 않게 군수장비를 웰링턴 공에게 조달했다. 이런 임무를 맡은 덕에 네이선은 전쟁의 양상을 파악하는데 유리한 위치에 올라섰다. 네이선은 정보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닫고 남들보다 빠르게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비둘기 통신과 쾌속요트에 많은 투자를 했다. 이 투자가 빛을 발하던 때가 왔는데 바로 유명한 워털루 전투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프랑스 군대와 연합국간의 전투가 벨기에 워털루 인근에서 벌어졌다. 이 전쟁의 승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유럽의 패권은 물론이고 엄청난 자본 역시 이동될 터였다. 네이선은 그동안 구축해둔 정보 수집 인프라를 활용했다. 대중의 관심은 워털루 전투에 집중됐다. 폭풍속의 전야 같이 적막하던 때 네이선 측에서 영국의 국공채를 대량으로 매도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투자자들은 대량으로 영국의 국공채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대중은 정보가 빠른 네이선이 영국을 필두로 한 연합군의 패배를 미리 알아챘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국공채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그때 상황은 다시 반전됐다. 네이선은 폭락한 영국의 국공채를 모두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영국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런던에 도착했고, 영국 국공채를 헐 값에 사들인 네이선은 엄청난 돈을 벌게 됐다. 

 

 사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유명한 이 일화는 진위가 불분명하다. 많은 역사가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일화의 진위여부와는 관계없이 로스차일드 가문은 정보수집에 많은 공을 들였고, 그들이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큰 힘이 된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비둘기 통신이나, 쾌속선이 없어도 인터넷만 있다면 집에서 클릭 한 번으로 전세계에 공개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가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 한지 여부다. 정보는 신속해야 하며 정확해야 한다. 하지만 신속, 정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정보에 대한 해석이다. 같은 정보도 투자자의 해석에 따라 큰 차이가 나타난다. 그것이 수익을 가르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정보가 힘이 되는 만큼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힘이 쌘 만큼 그 힘을 잘 못 해석했을 때 후폭풍도 거센 법이다. 네이선이 살던 시대 이전에도 정보의 힘은 막강했다. 그 사실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정보를 제대로 다루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때 투자 시장을 지배했던 이론이 있다. 물론 지금도 그 이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시카고 학파가 중심이 되어 주장한 “효율적 시장 가설이다.” 설명하자면 시장에 있는 정보는 이미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정보는 이미 가격에 반영되어 있다. 주식시장이 과다평가 혹은 과소평가할 여지는 미리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시장 초과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나는 효율적 시장가설이 맞거나 틀렸다고 말하기 앞서 기본적으로 투자할 때 대중이 효율적으로 정보를 가격에 반영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어느정도 그렇다고는 생각하지만 모든 대중이 효율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단 어떤 정보가 공개됐을 때 즉각적으로 가격에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내부자 정보일 경우에는 다르지만 공개된 정보라면 즉각적으로 가격에 반영된다. 하지만 정보에 비해 가격이 비싸면 매도하고, 싸다면 매수해서 적정한 가격이 된다는 효율적 시장가설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보가 공개되고 즉각적으로 가격에 반영되었다면 오른 가격이 또다른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가격을 올린 정보보다 가격이 올랐다는 사실이 투자자를 더 끌어들인다고 생각한다. 가격이 올라서 매수하는 세력은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매수를 멈추거나 매도하지 않는다. 


 전설의 투자자이자 퀀텀 펀드를 설립한 조지 소로스는 이러한 현상을 재귀적 피드백이라 말했다.


"투자시장은 불확실성하고, 인간은 불확실성을 근거로 한 왜곡된 시선으로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은 투자시장에 영향을 준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투자했다. 초기 가격 상승을 이끌었던 정보는 어디까지나 거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문제는 시작된다. 매수 근거가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라면, 가격이 떨어지면 더 이상 매수하거나 보유할 근거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때 매수 세력은 매도세력으로 바뀐다. 주가는 일시적인 조정에 빠지고 가격이 떨어지면 투자자들은 이성적인 생각을 되찾는다. 자신이 이종목에 투자한 근거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낸다. 가격 상승을 근거로 투자했다면 이때 손해를 보고 팔아버린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거들었을 뿐인 정보를 매수 근거로 삼는다. 이 논리에 빠진 투자자들은 잘못된 확신을 갖게 된다. 생각과 이론을 자신과 일체화 한다. 칼 포퍼가 말한 이론을 객관적으로 두지 않고 자신과 일체화 했을 때, 그 이론이나 생각이 논박되거나 반증되면 그 주체까지 죽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즉 잘못된 정보, 혹은 옳은 정보지만 잘못 해석해서 확신을 가졌을 경우 그에 따른 대가는 처참할 수 있다. 정보가 주는 함정에 빠지게 된 것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 연준은 양적완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고 애썼다. 제로금리 정책으로 시장에는 많은 유동성이 유입됐다. 금리가 낮아지고 대출이 완화되자 안정적인 투자처에 묶여 있던 자금은 갈 곳을 찾았고, 리스크가 큰 시장에도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특히 신규 상장 붐이 일었다. 미래 성장성과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당장 수익 구조가 없어 복잡한 IPO절차를 통과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많았다. 이런 기업들도 어렵지 않게 상장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는데 바로 스팩이다. 기업 인수목적회사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페이퍼 컴퍼니를 말한다. 그들은 상장하지 못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합병을 추진해 상장시키는 특수목적 회사다. 양적완화 이후 주식시장이 서서히 가열되기 시작했을 때 스팩주 열풍도 시작될 징조가 보였다. 


 벤 버냉키 전 연준의장은 버블은 늘 유사한 순서를 따른다고 말했다. 투자기관이나 은행에서 과도한 대출을 해주거나, 규제가 극단적으로 완화된다. 코로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전 세계 중앙은행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해결책인 무제한 양적완화와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대출 기관이나 투자자의 낙관적인 대중심리가 뒤따른다.이는 “뉴 노멀”이라 불리는 신기술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가설이 더해져 더 낙관적으로 흐른다. 위대한 투자자 필립 피셔의 아들이자 본인 역시 위대한 투자자의 길을 걷고 있는 켄 피셔는 뉴 노멀이라는 단어의 등장을 항상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뉴 노멀은 2020년에만 등장했던 단어가 아니다. 인터넷 버블이 극심했던 1990년대 후반, 라디오와 이동수단의 혁명이 있었던 1920년대, 철도 혁명이 있었던 1850년에도 등장했던 단어다. 20세기의 유명한 투자자였던 존 템플턴은 이런 상황을 두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마디를 남겼다.


“투자에서 가장 비싼 말은 ‘이번에는 다르다’이다”


 2020년 코로나 사태이후 무제한으로 풀려버린 유동성은 또다시 대중에게 “뉴 노멀”의 환상을 심어줬다. 넘쳐나는 돈으로 더 큰 수익을 쫓던 벤처투자자들은 복잡한 절차의 IPO대신 간단한 절차로 상장이 가능 스팩 형식으로 뉴 노멀 시대에 어울릴 법한 회사들을 상장했다. 개인투자자의 낙관적인 심리도 한 몫 했다. 한 두건의 스팩이 크게 성공하자 개인투자자들은 스팩 상장한 주식을 매수했다. 투자자는 신기술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확신으로 공장조차 없는 회사에도 큰 돈을 투자했다. 


 코인, 스캠, 폰지사기 등 여러 내러티브 버블 중에서 내가 스팩 주식을 언급한 것은 내가 직접 투자했던 종목이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꽤 진지하게 스팩 종목에 접근했는데 상장된 종목들과 다르게 따로 찾아볼 수 있는 자료는 내러티브 자료밖에 없었다. 즉 기업의 가치를 숫자로 확인 가능한 데이터는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신기술 혹은 내러티브만 보고 투자한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당시 시대는 벤 버냉키의 말을 빌리자면 잃고 싶어도 잃을 수가 없는 시장이었기 때문에 수익을 거둘 수 있었지만. 조금만 다른 시대에 같은 방법으로 투자했다면 수익을 거두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진 확신은 대단히 위험한 확신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알 고 있다.”는 교훈을 소크라테스로부터 배운 이후 나는 이런 류의 확신을 하지 않기로 했다. 가끔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또 유혹이 투자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내가 틀렸을 때를 대비한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다.


 아무리 높은 확률이라도 러시안 룰렛 게임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보상이 주어지더라도 말이다. 적은 확률의 대가가 죽음이라면 그 높은 확률의 보상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정보를 해석해 확신을 갖고, 큰 보상을 기대해 모든 것을 투자하는 일은 나에게 다시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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