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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당주민 Nov 25. 2023

너에게 이제 물어볼수 없지만 넌
나에게 좋은 동료였어

안녕, 꼬마 아가씨

좀 불편한 글을 쓰기로 했다.

불편한 마음이 몇 일 계속 괴롭힌다. 소화가 안된다. 소화제를 달고 살고 있다.


누가 나에게 과거로 돌릴 기회를 단 한번 준다면

나는 딱 대학교 입학해서 삶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기와 

런던에 있던 시간을 기억을 제일 먼저 해볼 것 같다.

시간을 많이 거스른 기억을 해본다.

그 시기는 걱정도 어떤 삶의 무게도 나를 힘들게 한적이 없었고 건강했고 웃는 날이 참 많았다.

군대에서 시간만 뺀다면 (난 이시기를 내 삶에서 가장 아까운 시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 시간을 경험하지 않고 여러 이유로 바로 입사하는 친구들이 있다.

상고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기업에 바로 오는 직원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 친구들을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기특하다는 생각은 한번도 없었다.

내 경험에 비춰 그 나이에 누리고 살아야 할 삶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게 된다.

최근 입사한 친구는 우리 애와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들의 부모들은 나와 이제 나이 차이가 거의 없다. 

대학의 정원은 이제 수험생의 수보다 넘쳐나지만 그래도 회사 입사를 선택하는 친구들은 계속 있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왜? 뜬금없이? 그래도 마음이 불편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나는 직장인이다.

1999년 2월 졸업 전 지금 반포에 있는 JW Marriott 호텔 홍보실에 짧은 인턴기간을 거치고

그해 5월 H그룹 H상선(현 HMM) 기획실 입사하며 

지긋하고도 가끔은 즐겁기도 했던 그 대기업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L전자와 L애드 (현 H애드)를 거쳤고 다시 H그룹에 몸을 담고 있다.

지겨워 질만한 시기에 또 윗사람이 거지같았을 때 시의적절한 이동을 통해

나름 괜찮은 직장생활을 해왔다.

아는 사람도 많아졌고 무엇보다 각기 다른 산업에서 다양한 경험은 지금 내가 앉아있는 자리에 

밑거름이 된 것은 틀림없다.

신문방송을 전공하고 강제로 정치외교학을 부전공 했지만 광고회사인 H애드 시절을 제외한다면

난 딱히 전공에 맞춰 살고 있지는 않다.


직장생활하면서 많은 대표이사, 임원 그리고 주변동료들이 있었다.

아직도 연락하는 사람도 많지만 아예 핸드폰 전화번호 목록에 지워진 인간들도 꽤 많다.

연락처를 지운 것은 실수였다. 

모르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으니 그 인간과 연을 끊겠다고 했던 그 인간인 경우가 간혹 있다.

차단을 했었어야 했다.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동료들, 연락은 안해도 한번도 전화기 목록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그들에 대해서이다. 

그들은 여직원이고 대졸이 아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한 그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다녀던 직장에 팀 조직에는 꼭 한명씩 있었다.

그들은 정시에 출근해서 각종 지원업무를 하다 정시에 퇴근했던 동료였고

존재감은 가끔 노래방에서 우리가 부르지 못하는 최신곡을 멋있게 분위기를 띄우는 것 외에

크게 두각되지 않던 동료들이었다.


첫 번째 대기업에서 마주한 동료는 아주 나이가 많았다.

경험도 많고 노련하고 대리급 정도와는 자주 다퉜고 나는 안중에도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정치에 능했고 윗 사람들의 니즈를 선제적 대응을 통해 본인의 이익을 극대화 했다.

그 시절 여직원들은 유니폼을 입었다. 계절별로 지급되는, 누구에게는 편했고 누구에게는 불편했던.

특히 대졸 여직원들의 불만이 컸다. 

대신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료들에게는 유니폼은 교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직원은 말로는 희망퇴직 실제로 강제퇴직되었다. 더 다니고 싶었지만 그 시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상고를 갓 졸업한 여직원이 대체되었다.

키가 컸던 것 같고 이름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특이했다. 목적의식이 뚜렸했다. 그녀는 노래방에서 DJ DOC의 런투유를 아주 잘 불렀다. 


공부를 잘 한 탓에 대학이 가고 싶었고 집안에서 반대를 무릅쓰고 회사에서 1년 좀 넘게 근무하고

모은 돈으로 학원을 다녔고 결국 원하던 H대학에 들어갔다. 

집에서는 상고를 보냈고 공부를 잘한 탓에 대기업에 졸업 전 취직이 된 것을 무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걸 극복하고 본인의 목적을 달성했고 나는 지금도 그녀를 존경한다.


그녀의 퇴사를 회사는 반겼다.

그녀가 이룬 성과에 대한 박수는 아니었다.

회사가 사업부를 없애고 사업을 철수하며 인원 재배치 중 나온 퇴사라 반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문대를 졸업한 분이 오셨다.

그분도 본인의 전공을 찾아 얼마 있지 않아 떠났는데 난 그전에 LG전자로 이직했기 때문에

큰 기억은 없다.


그리고 L전자에서 또 같은 일을 하는 여직원이 있었다.

말 걸기에 좀 어려운 타입이었고 일에 대한 성의는 물론 지원도 형편없어 기억하기도 싫다.

그럼에도 나중에는 말을 트고 잘 지내기는 했다.

그 저변에는 그녀의 지원이 없어도 내가 하면 되니 크게 개의치 않은데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맞으편에 앉아있는 여자사람 정도 대했던 것 같다.


H애드에서는 처음에는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었던 버릇없는 직원이 있었는데

그럴수도 있는 것이 내가 H상선에서 만난 여직원과 연차가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H상선에서야 내가 사회생활을 첫 시작한 터러 불편함을 감수했는데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지내다 내가 팀장을 맡고 사이가 좋아졌다.

말을 트고 다른 부서에 갈 상황을 잘 해결해 주었고 매 밑에 있는 동안 결혼을 했고

신혼여행에서 사준 화와이 스타벅스 텀블러는 아직도 있고 무엇보다 몇 번의 임신실패에 대해

많은 배려를 해주었고 그 고마움을 알았는지 아주 좋은 사이로 지냈었다.


그리고

지금 있는 이 회사에 취업하고 얼마 있지 않아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입사했다.

똘똘했다. 나이가 먹을 만큼 먹은 나에게는 그냥 똘똘한 꼬마 아가씨 같았다.

단순 업무를 빠른 손을 장점으로 잘 처리해 냈고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고

무엇보다 어려운 답변도 밉지 않게 유연하게 잘 해냈다. 

그래서 잘 지낸다고 생각했고 대졸 여직원들 무리에서 혹시나 소외감 같은게 없게

가끔 비슷한 일을 하는 직원과 점심도 사주곤 했다.

잘해주려 했다. 

그 나이의 찬란한 시간을 이기심이 가득한 이 곳에서 묵묵하게 지내고 있는 

그 친구가 기특한게 아니라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이기심에 희생되지는 않을까 혹시나 대졸 여직원들의 모습에서 상대적으로

느끼는 박탈감은 없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더 조심하고 더 잘해주려고 했는데

 

그런데

내가 몸이 안좋아 휴직을 하고 수술을 하고 휴직을 하고 다시 복귀했을 때

다른 부서를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좀 화가 났다.

조직에서 사람을 그렇게 보낸 것에 대해 몇 일 화가 났는데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정도. 그게 더 화가 났던 것 같다.

다른 부서는 다른 층에 있었고 그 층에 갔을 때마다 그냥 인사 정도하고 지냈다.

가끔 점심 사주고, 친했던 터라 장난도 치고.


그리고

여름이 되고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말도 안되는 시간에 완성하고 오픈해야 하는 일을 맡았고

여름휴가는 워케이션이 되고 런던 출장을 다녀오고 매일 회의 지옥에 살고 있다 

어느날 그 친구가 있는 층에서 그 친구를 볼 수 없는걸 알게 되었다.

휴직이라고 들었고 아프다는 말도 들은 것 같은데 연락해 봐야지 생각만 하다 

연락을 못할 정도로 바쁘다는 핑게로 연락을 못하고 살고 있다가, 까먹고 있다가,

몇 일 전에 퇴사했다는 이야기들 들었고 앞으로 내가 연락할 수가 없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그 시점부터 소화를 못하게 되었다.


회사의 업무 메신저로 나눴던 대화를 찾아본다.

내가 복직했을 때 왜 갔어...하고 물어봤을 때 그 대답은 안하고

어느날 내가 차를 가지고 유명 햄버거집에서 가서 점심을 사준거를 고맙다고 하고

이제 술 마실 수 있는 나이니 술 사달라고 했던 그와의 대화 기록들을 한참 본다.


난 너에게 누구였는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어볼 수 없지만

넌 나에게 정말 좋은 동료였다고 말하고 싶다. 올 겨울은 너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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