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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은 취미로 즐길 수 있을까

나의 성악 레슨 일지

by 키랭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러나 그 설렘도 잠시. 한계의 벽에 부딪히고 무능력한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은 빠르게 다가온다. 벽을 넘는 순간 또다시 새로운 벽이 가로막는다. 그 벽을 넘어가면 다시 벽. 한 계단 넘어섰다는 만족의 도파민은 빠르게 새어나간다.


취미로 배우는 성악이 바로 그렇다. 성악을 취미로 한다는 것은 사실 자신을 괴롭히는 것과 같은 것 같다. 세상에 많은 취미가 있는데, 성악은 그리 유쾌하지 못한 취미 중의 하나다. 테니스를 배워도 배우면서 즐길 수 있고, 탁구를 배워도 동호인들과 함께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다. 전자기타를 배워도 연습곡들을 연주하며 즐길 수 있다. 사진을 배운다면 출사를 다니며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성악은 다른 것 같다. 아니, 다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말이다.


내가 느낀 성악은 한 곡을 편안하게 부르는 순간까지 도달하는 것이 즉, 첫 문턱이 상당히 높다. 그래서 배우는 내내 괴로웠다. 취미인들이 선택하는 방법 중에 가장 보편적인 해결법은 '인골라 발성법'이지만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오래 걸려도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성악이 도대체 취미로 하는 게 가능할까

20여 년 전 성악을 잠시 배워보았지만 그 뒤로 한 곡도 제대로 부른 적이 없다. 노래방에 가면 "이모 30분 추가요"를 외치는 나였지만 성악을 배웠다는 말은 어디서도 내뱉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중년이 되어 가고 있는 나. 멍청한 나.


또다시 성악을 시작하고 말았다. 그렇게 1년을 다시 배웠지만, 첫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다시 미끄러졌다. (운명적으로 코로나가 터져 레슨은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그리고 한 3년이 지났을 무렵 우연히 레슨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나는 이 선생님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니 내가 믿고 계속할 수 있게 믿음을 주셨다.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었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나도 성악...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시작한 지 1년 하고 6개월이 됐을 무렵, 바로 지금.


드디어 한 곡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더 정확하게는, 작년 아마추어 콩쿠르 때처럼 성대접지가 다 풀리고 발음위치도 없던 그런 상태가 아니라 이제 겨우 접지를 유지 하며 발음도 제 위치로 갖다 놓을 수 있게 되었다. 한 곡 부르면 목이 다 쉬어버려 연습도 못하던 내가, 드디어 접지를 유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날 오전 10시 30분에 예정되어 있던 레슨은 점심 식사 후에도 계속되었고,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돌어가려던 내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잘했어요. 이제 겨우 한 계단 올라섰네요."


난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이제 겨우 노래를 배울 준비가 되었다는 것. 생애주기로 비유하자면 이제 겨우 옹알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언제고 이 고통스러운 레슨을 왜 계속하고 있냐고 누가 내게 물었었다. 나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다.


"어렸을 때 성악 배우고 싶다고 없는 형편에 아버지께 많이 졸랐어요. 그런데 노래 한 곡 제대로 부르는 모습도 못 보여 드리고 그만뒀네요. 언젠가 꼭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제 약점*을 극복해 보고 싶어요. 도전해서 약점을 이겨내면 즐겁잖아요!"

*축농증을 완치하였으나 만성 비염 있고, 10대 때부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목의 신경 일부가 기능을 하지 않아 전면 우측의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나 같은 놈도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을 보면 성악은 분명 취미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고민하고 연습하다 보면 길이 열린다. 배우지도 않고, 혹은 배운 지 6개월도 안 된 분들도 충분히 취미로 잘 즐기고 있다. 나는 그 보다 훨씬 더 오래 걸렸지만 억울하지 않다. 이제 나도 계단 한 개는 넘었으니 말이다.


햇살이 사정없이 쏟아지는 거실 창 앞에서 잠옷 바람으로 서서 19년 전 그렇게나 부르고 싶었던 곡의 반주를 틀었다. 묵직한 피아노 선율의 몸을 싣고 온갖 똥폼을 다 잡으며 한 곡 뽑고 나니 눈꼬리 즈음에서 괜히 눈물이 맺힌다.


성대는 붙였으니, 이제 단련을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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