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경찰 채용 시험을 쳐 보았다.
맞다. 딱 그 정도였다. 나름 공부법을 바꿨다고 생각하고 자신감도 붙었는데, 정작 실력은 붙지 않은 것 같았다.
시험이 약 두 달 정도 남았던 때로 기억한다. 경찰 시험이 국어, 영어, 국사 이렇게 세 과목이 소방과 겹쳐 시험을 한 번 쳐 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정말 마지막 시험이라고 생각하니 오만 것이 다 간절해졌다. 이 아까운 시간에 멀리까지 가서 시험을 치고 오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러나 하반기 시험이 너무도 절실했으므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선택과목 2과목은 아예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경찰만 바라보고 준비하는 수험생에게도 해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경기도로 올라갔다. 정말 먼 길이었다. 숙소를 잡으려고 하는데, 수험생이 몰려서인지 금요일이라 그런지 숙박비가 세 배는 넘게 껑충 뛰어 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숙소를 못 잡고 있다가 밤 8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저렴하지 않은 가격의 숙소를 한 군데 잡을 수 있었다.
시험 당일 아침...
같은 수험생들이 모인 공간이지만, 내가 준비하지 않은 직렬에 몰래(?) 앉아 있으려니 호흡조차 불편했다. 시험 종이 울리고 첫 장을 펼쳤다.
맙소사...
아는 게 거의 보이지 않았다. 너무 놀래 국사를 펼쳤다. 국사는 괜찮겠지.
안 괜찮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영어를 펼쳐 보았는데, 어차피 우리나라 말이 아니니 어려운지 쉬운지도 모르겠고 그냥 영어부터 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석 달간의 노력에도 문제가 너무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과는...
국어, 영어, 국사 모두 과락을 면하고 아주 낮은 점수를 득하게 되었다.
또다시 내가 잘하는 반성을 시작했다. 소방과 경찰은 과목이 세 개가 같았지만(현재는 다르다) 출제되는 문제의 유형은 상당히 다른 점도 있었다. 유형이나 출제성격이 비슷했더라면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겠지만,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다행히 어느 정도 자가치유가 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반성을 하려면, 철저히 나를 까 뒤집어야 한다.
계속해서 문제점을 분석했고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보기 싫은 것을 계속 안 보고 있구나.'
사람은 참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실패를 겪으면 내 속의 변화를 끌어내어 조금 더 나아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 변화하여 다음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더 이상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금 돌아가면 어디로 돌아간단 말인가.
시험이 고작 두 달도 남지 않았지만, 시간을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컴퓨터 앞에 앉아 고민하며 몇 시간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보기 싫은 것을 골라서 보자'
각 과목별로 목차와 목차에 없는 나만의 카테고리를 종이에 적어나갔다.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못하는 것 중에서도 보기 싫어서 안 보는 것, 어려워서 안 보는 것, 있는 줄도 몰라서 못 본 것을 각각 표시하고 회독을 할 때 어려워서 안 보는 것을 먼저 공략하기로 결심했다.
보기 싫거나 어려워서 안 봤던 것들을 보아야 90점 정도라도 받을 것이고, 있는 줄도 몰라서 못 본 것은 출제빈도가 낮거나 중요도가 떨어지니, 잘하면 100점도 받을 수 있는 영역이기도 했다.
내가 보기 좋아하고 쉬운 것은 며칠 안 본다고 휘발되는 그런 것은 아닐 터였다.
시험 두 달 전 작전을 소개하면 이렇다.
1. 일을 줄였다. "남은 돈을 쥐어 짜내었다(쥐어 짜낼 돈도 없지만)"
대리운전은 되도록이면 12시 전에 마치거나 주 1 ~ 2회 출근 정도로 줄여 공부시간을 최대한 확보했다. 모자란 돈은 그전에 채워둔 것으로 조금씩 쪼개어 쓰고, 신용카드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작은 적금통장도 깼다.
2. 과목별 작전(국어, 영어) "목차를 분해하고 공부할 분야를 세세하게 나누었다"
국어, 영어는 언어 분야이고 크게 문법, 독해, 어휘로 나눌 수 있다. 독해와 어휘는 계속하는 것으로 하고 문법 부분을 잘게 쪼개어 평소 어려워하던 부분만 아침에 공부해 나갔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최대한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서 배워나가며 채웠고, 며칠에 한 번씩 쉬운 부분을 같이 공부해 나갔다.
3. 과목별 작전(국사) "소거법을 개발(?)했다."
안 보던 것을 하나씩 깨는 작업과 동시에, 현재까지 '소거법'이라고 내가 명명하고 있는 작전을 같이 썼다. 사실 국어나 거의 모든 암기과목에서 다 사용했는데, 기출문제집에 나오는 문제 중 내가 아는 것이 나오면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지우는 것이었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내가 한 번 지운 문제는 다시는 볼 수 없다.
소거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이렇다.
1번 문제를 본다. 문제에 제시된 사례를 본다. 사례를 보고 보기를 본다. 그중 사례를 내가 다 안다? 그럼 다 지운다. 검은색으로. 다시는 볼 수 없게. 보기 중에 3개를 내가 안다. 다음에 다시 나와도 무조건 알 수밖에 없는 지겨운 보기다. 그럼 지운다. 다시는 볼 수 없게. 그리고 두 개 보기는 잘 모르거나 헷갈린다? 그럼 그 지문 내용을 내가 정리한 요약노트에 표시하고 없으면 작게 메모해 두고 기출이 되었었음을 표시한다.
혹시 사례, 보기 모두 아는 것이 나온다? 그러면 문제까지 모두 지워버린다.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도록.
이렇게 지워나가다 보니 상대적으로 풀기 쉬운 문제들이 더 이상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방법은 내가 공부를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아는 문제를 계속 반복해서 만나다 보면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독시간을 현저하게 줄여주었다. 또한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하게 분리시켜 주었다.
시험이 2주 정도 앞으로 다가왔을 때는 책이 모두 검은색으로 변해 책을 들고 다닐 수 없어 책장에 꽂아두었다. (지금도 엄마 집에 있는지 모르겠다)
4. 과목별 작전(소방학, 5개 소방관계법) "요약노트를 활용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대부분 기출문제만 많이 풀어보고 응시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60 ~ 75점 사이를 받는 것을 많이 보게 되었고, 운 좋으면 80점을 겨우 받았다. 물론 거기에 더해 공부를 조금 한 수험생은 90도 받겠지만 말이다. 나는 애초에 이런 도박성 공부를 하기 싫었기 때문에 모든 내용을 파기로 마음먹었다.
요약노트를 만들 때 단순히 내용을 요약하는 것을 넘어서 구조화 작업을 통해 자료를 만들었다. 특히 법은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과목이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려 구조화를 해 나갔다. 잘은 몰라도 그림을 그려 놓으니 기억에 굉장히 오래도록 남았고, 단순 줄 글 요약이 아니라 구조화시켜 놓으니 나중에는 몇 번째 종이에 있는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아래인지 위인지까지 위치를 모두 외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점심을 먹고 나면 가장 잠이 많이 온다. 이 시간에 독서실 스터디룸에 혼자 들어가 대형 칠판에 요약노트를 한 바닥에 쓰는 연습을 했다. 글이 많으면 입으로 말하고 넘어가고 큰 키워드만 적어가며, 법 1개당 칠판 한 바닥에 쓸 수 있을 정도로 암기를 해 나갔다.
그렇게 하고 시험 한 달 전부터 기출문제를 저녁마다 파고들었는데, 이제 뭔가 눈에 들어왔다. 기출문제를 풀면서 또 얻어지는 것들이 있었다.
이번에도 '소거법'을 활용했다. 기출문제 회독이 5회 정도 넘어가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사정없이 지워나갔다. 그랬더니 소방학과 5개의 소방법을 모아놓은 기출문제집도 재활용품이 되고 말았다.
4. 소방 체력 준비
소방은 체력 시험이 있어, 매주 2회 고강도의 운동을 했다. 이 날은 저녁 시간 공부를 모두 빼고, 운동 후 새벽 1시 정도까지 영어단어 암기 위주로 채워나가며 학습을 이어갔다.
만약 내가 경찰 채용시험을 치고 오지 않았더라면, 그때까지도 나의 문제점을 전혀 눈치 못 챘을 것이라고 정말 천 프로 만 프로 장담한다. '자기 자신을 알라'고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 보니 자기 자신을 아는 것만큼 힘든 것은 없었다. 진정한 나를 보지 않고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나라고 착각하는 게 사람이다. 아직 이루지 않았음에도 이루었다고 착각한다. 가지지 않았음에도 가졌다고 착각하는 것이 인간이다. 따라서 큰 사고를 겪거나 크게 한 방 맞지 않는 이상, 아니 그런 것들은 겪고도 본인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게 참으로 쉬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공무원 시험이 제일 쉽다고 말하는 분을 본 적이 있다. 책이었는지, 영상이었는지, 면대면이었는지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공무원 시험을 쳐 보고 합격해 본 분들이 하는 말이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분들이 느끼기에는 그렇겠지라고.
공부법을 알려주는 분들도 알고 보면 고스펙의 고학력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분들이 공무원 시험을 쉽게 치르고, 공부법을 알려줄 수 있었던 것은 나처럼 과거에 방황하지 않고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나는 고학력의 고스펙 수험생이 아니므로 그분들의 방법을 모두 똑같이 따라 할 수가 없었다. 10년을 노력한 전문가를 1개월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내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노력만 한다면 최소 몇 개월은 당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철저히 내려놓고 '나'를 분석하다 보면 나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을 것이고, 나아가 시험에서도 합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쉬울 수도 있고, 혹 누군가는 조금 웃을 수도 있지만 나의 이 '수험기(記)'는 나의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하고 조금 더 밝은 미래에 발을 디딜 수 있게 해 준 나의 '성장기(記)'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의 이 '성장기'를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과감 없이 풀어 주고 싶다는 결심이 섰던 것 같다.
수험생활 내내, 합격하면 꼭 다른 사람들을 도와줘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늦었지만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나의 기억을 기록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
대한민국 모든 수험생들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