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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Aug 13. 2023

공시생 대리기사의 영어정복기

길 위에서 올라서다

하반기 채용이 확정되고 다음 필기시험까지는 약 5개월 정도가 남았다. 설레는 마음도 잠시, 이번에도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낮은 채용인원에 그 불안은 한층 더 해갔다.


거기다가 영어라는 큰 산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상반기 시험 때는 과락을 겨우 넘겨, 5개월 만에 기적을 만들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물론 상반기 영어가 일반행정 시험의 고득점자 수험생들도 과락이 많이 나올 만큼 난이도 조절을 실패한 것도 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한 1주일가량은 영어공부법에만 몰두했다. 인터넷 바닷속 어딘가 천기누설의 비기가 있을까 싶어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다녔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심오해서였을까 내 앞에 그런 비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따금 단어를 많이 외우라느니, 매일 풀어보라느니 하는 것뿐이었다. 합격수기를 봐도 '00 선생님 강의 듣고, 매일 조금씩 풀어봤어요'라는 말뿐... 당장 적용할 수 있는 그런 구체적인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과외까지 생각했다. 누군가 나를 강제로 끌어준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힘들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내가 무슨 과외... 그리고 무엇보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부법을 새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여간 운 게 아니었다.


그러다 과외를 하니 마니 하며 신세를 한탄하던 중 우연히 한 게시글에서 눈이 멈췄다. 바로 과외 홍보글이었다. 어떤 과외강사가 그룹 혹은 개인을 모집하는데, 영어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며 커리큘럼을 적어놓았다. 어? 너무 상세하게 적어놓아서 무지렁이인 내가 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긴 글을 요약하자면 '기초부터 다시'였다. 그리고 수준억 맞게 공부하라는 것이다.


 글을 바탕으로 나는 어떻게 공부할 수 있을지를 탐구해 나갔고, 결국 나만의 방식을 찾게 되었다.




영어단어를 외웠다. 중학생이 된 것처럼


영어단어는 중학 영어 단어부터 보기로 했다. 중학단어를 다 외우면 수능단어, 그게 끝나면 공무원 수준의 영어단어를 차례대로 공략하고자 마음먹었다. 비즈니스 단어가 가득한 3000개의 단어만 달달 외워봤자 기본적인 단어를 모르면 독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았다.


암기량은 일 100개를 기준으로 잡았다. A4용지를 가로로 반을 접고 또 반을 접는다. 그러면 4등분이 되는데, 1면과 3면에 단어를, 2면과 4면에 뜻을 적었다. 그리고 단어 부분만 보이게 막대기처럼 접어 다니면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었다. 책으로 암기하지 않은 이유는 휴대성 때문이기도 하고 입체감이 없어서였다. 지루한 것을 싫어하는 나는 최대한 재미를 추구하며 해나갔다.


잠시 쉴 때, 화장실 갈 때, 산책할 때 오늘 외워야 할 분량을 외워나갔다. 스마트폰 두 배 크기의 단어종이를 습관적으로 들고 다녔다.


대리운전을 나가면 콜이 뜨기 전에 주로 외웠다. 단점도 있었는데 종이에 적어서 그런지 어두운 곳에서는 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다행인 게 고객을 모시러 가는 도심은 대부분 화려한 불빛이 있어 크게 장애요소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가끔 시골로 들어가더라도 가로등 불빛을 스탠드 삼아 영어단어를 수십 개씩 외우고 있으면 합류차가 나를 데리러 와주었다. 그럼 차에서 다시 외웠던 것을 확인 암기하면서 기억을 굳혀 나갔다.


그래도 아예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일을 하며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으니, 고객에게 온전히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원칙을 세웠다. 일이 몰리는 시간대와 운전하는 동안에는 머릿속으로 암기 금지! 이것은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고, 고객과 나의 안전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매일 100개씩 암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등단어 한 권을 다 보게 되었다. 그리고 수능단어 100개를 시작할 때 중등단어는 며칠 간격으로 200 ~ 300개 정도씩 복습을 해주었다. 수능단어가 100개씩 돌아가는 동안 중등단어는 벌써 몇 회독이 지나갔고, 하나도 틀림없이 암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수능단어도 1 회독이 끝날 때 즈음 공무원단어를 돌렸다. 공무원단어도 하루에 100개를 외우고, 수능단어도 같이 돌렸는데, 중등단어와는 다르게 조금 어렵게 느껴져 100개씩 같이 돌렸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 수능단어도 300개 이상을 하루에 볼 수 있게 되어 제법 많은 반복을 할 수 있었다.


단어는 무조건 시험을 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어제 외운 것을 손으로 가리고 입으로 내뱉었다. 쓰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쓰면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손목도 많이 아프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스터디를 할 때야 시험을 치듯 쓸 수밖에 없지만 혼자라면 입으로 소리 내는 것이 좋다. 쓰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은 써도 무방하지만, 중요한 것은 출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력하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어? 아~ 이거였네, 음~" 이런 식으로 지나가버리면 머릿속에 오래 저장되지 못하고 빠르게 날아가버린다.




문법책을 샀다. EBS에서...


EBS 홈페이지에 가서 가장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강의를 골라 해당 책을 구입했다.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가 가장 땀이 났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뭐 별 것 있나 싶다. 조카를 위해 책을 사주는 삼촌이 된 것처럼 자연스러웠으니까!


학교 다닐 때 영어공부를 통 안 해 본 터라 어떻게 하는지 감이 잘 안 잡혔다. 그런데 그 영어과외 선생님의 홍보글에 있는 커리큘럼을 보고 비밀을 발견했다.


'공무원 수험생을 대상으로 과외를 해줄 건데, 중학교 교재로 너를 가르칠 거야'


???


처음에는 물음표를 삼 만개 정도 띄웠었는데, 이내 그 물음표는 모두 느낌표로 바뀌었다. 대가를 지급받고 몇 개월 안에 합격시켜준다고 장담하며 자기 이름과 얼굴을 팔아 과외를 하는 저 선생님 무슨 거짓말을 하겠는가 싶었다.(팔랑 귀?)


당장 따라 해야겠다 싶어 중학생 수준의 영어 문법 교재를 사게 된 것이다. 도서관이나 독서실에는 1,0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유명 영어 서적들이 즐비하다. 그것을 뚫고 앉은 얇디얇은 나의 영어 책. 책은 얇은 걸 사야 한다는 어느 분의 말이 기억나 자신감을 잃지 않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게 시험에 나오겠어?"


라는 의심은 거뒀다. 오히려 '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공무원이 될 자격도 없어!'라는 마인드로 책을 봤다. 불과 며칠 만에 수업은 끝이 났고 몇 번 더 돌려 보며, 아예 공무원 수험서를 책장에서 꺼내지를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나의 어휘와 문법 기초가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고, 공무원 문법 문제를 받아보니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이제 '풀 수' 있게 된 것이다.


참고로 시험에 나오는 표현(?) 기본서에 나오는 문장을 몇 개 외우기도 했다. 매일 한 문장씩 작은 수첩에 적으면서 외워나갔다. 나중에 보니 90여 가지가 넘는 표현이 수첩에 적혀 있었다. 아주 오래전 S대를 다니신 연배가 좀 높은 아는 형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인데, 정답으로 쓰이는 표현이나 기본서의 예시문장을 외우다 보면 '감'이라는 게 생긴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로 간절한 마음에 그냥 시작했는데, 결국 믿게 되었다.


독해는 수능영어 수준에서 단어만 공무원 단어가 추가된다.


독해는 수능영어 수준에서 단어만 공무원 단어가 추가된다는 것이 나의 분석이다. 물론 그 해 시험 난이도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애초에 공무원 시험 응시자격 자체가 고교졸업만 하면 칠 수 있는 정도이니(직렬별 나이 등 다 다르지만) 왠지 맞는 분석 같았다. 공무원단어라는 것도 사실 없는 개념이다. 나는 한 번도 쳐 본 적이 없지만 토익이나 토플 같은 데서 사용하는 혹은 그 이상의 고급 단어들이 모여있는 집합이 '공무원영어단어'이다.


어쨌든 독해의 수준은 수능영어 수준으로 공부해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고 고등학생들이 보는 책을 또 서점에 가서 샀다. 문법책에 이어 이제 고교 영어문제집이라니. 서점 주인 분이 '조카 사주는 거냐'라고 묻던 게 아직도 생각나네... 하하하...


다만, 아주 다만 고3 수준의 책보다는 고1 수준으로 구입을 했다. 고3 수준을 사봐야 학교 다닐 때 영어 8등급으로 졸업한 내가 이해할리 없다고 판단했다. 쉬운 책을 고르되 어떻게 푸는지 요령을 익히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영어 독해 관련 된 EBS 강의를 활용해 연습을 조금씩 해 나갔다.


그 정도면, 그 정도면 되었다.




공무원 시험에 영어가 왜 있냐고 투덜대는 수험생들이 많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접근이 틀렸다. 수험생으로서 말이다. 수험생은 영어가 왜 있냐고 투덜대기보다는, 영어 점수가 왜 안 오르는 가에 대해 투덜거려야 한다.


나는 영어단어를 외우며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 많이 투덜거렸다. '일만 안 했어도 하루에 1,000 단어는 외울텐데'라며 불평했었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학업을 계속하는 여동생에게 피해를 줄 수도 없었기에 이를 더 꽉 깨물었다. 그것이 더욱 동력이 되어 포기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어 지금의 내가 있지 않았을까.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 지난 수험생활에 감사하며...


그리고 갈 길을 잃고 헤매는, 혹은 늦게 시작하는 단 한 분의 수험생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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