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은 학창 시절 공부 좀 했던 사람부터 아예 공부를 해보지 않은 사람까지 누구나 응시가 가능하다.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봤던 친구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공부법을 적용시켜 단기간에 합격하곤 한다. 물론 장수생이 되는 수험생도 없지는 않지만...
나처럼 공부를 거의 해보지 않은 수험생들은 초반에 많이 헤매기도 한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공부법 관련책을 몇 권 읽고 합격수기를 봐도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모른다. 적용을 해본다고 한들 확신이 없다. 공부를 거의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부 못하는 게 자랑은 아니지만 시작이 너무 힘들다.
산행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간혹 산에 올라가 길을 잃기도 한다. 등산을 하기 위해서는 며칠 전부터 길을 충분히 공부하고 준비물은 어떤 것이 있는지, 올라가다가 힘들 때 먹을 수 있는 간식은 어떤 것이 있는지, 가방 무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상시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 많은 사전준비를 거쳐야 안전사고를 방지하고 즐거운 산행이 될 수 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해 본 경험이 거의 없거나, 머리가 많이 굳어있다면 공부 시작 전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보아야 한다. 나중에 수정을 하게 되더라도 몇 페이지를 몇 시간에 얼마큼 볼건지 정도도 나름 계획을 세워 놓으면 좋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험에서 떨어지는 많은 수험생들이 계획을 제대로 세우고 있지 않은 듯하다. 모든 수험생을 다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시험에 떨어지는 주변 수험생들을 보며 일반화시킨 점도 분명 있지만, 혹여나 나의 생각이 틀렸다 하더라도 계획을 세우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계획은 연 단위부터 세우고 거꾸로 세우는 게 원칙이다.
1. 계획은 거꾸로 세운다.
시험이 정확히 1년이 남았다면 각 과목별 목표점수를 설정한다. 목표점수는 보통 커트라인보다 높게 잡는다. 커트라인이 80점인데 80으로 목표를 설정하면 딱 그만큼만 공부하게 되고, 지역별 채용인원이 적어지거나 난도가 올라갈 경우 떨어질 수 있다.
목표 설정이 끝나면 그것을 바탕으로 시험 당일부터 거꾸로 계획을 세운다.
1) 시험 하루 전
"전 날 본 것과 시험 당일 아침에 본 것은 반드시 나온다."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며 계속해서 느낀 것이지만 전 날 본 것과 당일 아침에 본 것 덕분에 간과했던 부분 중에서 맞힌 문제가 꽤 많다. 아예 처음부터 안 본 것은 아니지만 워낙 내용이 많다 보니 마지막에 놓치는 것이 조금씩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에 한 번 더 보는 게 아주 좋다.
휴식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물론 동의한다. 하지만 휴식이라고 해서 미드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무조건 명상만 하는 것도 말리지는 않겠으나 추천하지는 않는다. 책을 가까이한 상태로 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쉬어도 늘 공부하던 곳에서, 책을 펴놓고 말이다. 객지로 나가서 시험을 칠 경우 숙소를 일찍 잡고 근처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서 공부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절대 밤은 새우지 않는다. 밤을 새우면 다음 날 아침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리 없다. 밤을 새운다는 것은 불안한 것도 있겠지만 그 불안의 근원이 미흡한 준비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밤을 새울 정도로 봐야 할 양이 많다면 다음 시험을 기약할 수도 있다. 물론 밤을 새워서 합격을 했다면 박수 쳐주고 싶지만, 내가 아끼는 지인이 밤을 새운다면 나는 말릴 것이다.
2) 시험 1주 전
그동안 공부한 것을 훑어보는 시간이다. 이제 모든 공부가 끝이 났다. 하루에 5과목 모두를 눈으로 회독할 수 있어야 하며, 이제까지 보지 못한 것은 미련을 버려야 한다. 혹시라도 헷갈리는 부분이 있는데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면 그런 시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회독과 동시에 오답노트를 활용하면 좋다. 오답노트 혹은 정리노트를 통해 빠르게 회독이 가능하다. 익숙한 것은 지나가기만 해도 좋고, 눈에 잘 안 들어오는 것은 쥐어짜 내면 된다. 하지만 한 번도 보지 않은 것, 즉 포기한 것이 있다면 버리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것이 단 한 문제에 불과하고 다른 부분에서 모두 맞힐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가급적 가족의 중요한 문자나 전화 외에는 외부와의 연락도 끊는 것이 좋다. 연락 잘하고 공부도 잘하면 좋겠지만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공부에 도가 튼 수험생이 아니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냥 과감히 안 하는 게 도움이 된다.
3) 시험 한 달 전
하루에 한 과목을 1 회독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마무리해야 한다. 이때 국어나 영어 같은 과목이 있다면 매일 해주어야 한다. 일반행정 등 일반적인 직렬이 이에 해당하겠다. 소방은 이제 국어가 사라지고 영어와 한국사가 인증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
2. 월 단위 계획을 세운다.
이 번달에 주로 어떤 부분을 공략할지 전략을 세운다. 모든 과목은 매일 돌아가되 과목별 중점적으로 공략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집중 타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운다.
3. 주 단위, 일 단위 계획을 세운다.
1) (처음에는 꼼꼼히) 구체적인 시간계획을 세우라.
보통 기본서 회독 기준 20페이지 당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기본서를 읽을 때 어느 정도 걸리는지 체크해 보는 것이 좋다. 보통 기본서 한 권이 800페이지 정도 된다고 봤을 때 한 번 읽어나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40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것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하루 순공시간(순수 공부만 한 시간, 쉬는 시간, 화장실 등 제외)이 최소 8시간이라는 것을 가정했을 때, 1 회독에 5일이 걸린다. 다시 말하면 1과목만 달렸을 때 매일 8시간씩 5일 동안 봐야 1 회독이 끝나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한 과목을 1 회독한다 한들 기억도 남지 않을뿐더러 다른 과목을 못 챙기기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공부가 된다. 위 계산은 단순히 1 회독에 걸리는 시간을 수치화했을 뿐이다.
2) (이제 크게 크게) 하루를 세 등분하라.
하루는 보통 아침, 오후, 저녁으로 나뉜다. 나는 하루를 크게 세 등분하여 계획을 세웠다. 시간이나 분 단위로 세우는 계획은 보기에는 좋지만 지켜지지 않을 확률이 크다. 오늘 아침에 먹은 음식이 잘 못 되어 화장실에 계속 간다던지, 친구 전화를 받느라 30분씩 지나간다던지, 아파서 아침에 늦게 나갔다던지 하는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늘 발생할 수 있다. 수험생이라면 당연히 이런 이벤트를 줄여나가야 하지만, 건강상 문제나 피치 못 할 일들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계획을 너무 빡빡하게 세우면, 매 계획마다 실패의 경험이 늘어나게 되고 이는 공부를 하는 수험생이 계속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동력을 빼앗기게 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를 통제하며 하는 공부는 특히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오늘도 해냈구나라는 스스로의 만족감이 내일 또 공부할 수 있게 만든다. 수험생은 마인드 컨트롤이 정말 중요하다. 성공 경험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계획을 크게 크게 세워야 한다.
① 아침시간 : 반복 숙달이 필요한 과목 위주
아침에는 주로 국어와 영어를 했다. 아침은 직장인도 그렇지만 참 피곤한 시간대다. 대리운전을 마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공부하러 나오면, 책 속의 글자들이 퍼져 보였다. 동시에 나도 퍼졌다... 따라서 아침에는 머리를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반복적인 숙달이 필요한 것들로 채웠다.
출근하면 바로 전 날 자기 전까지 외웠던 영어단어 시험을 쳤다. 스터디가 따로 없어서, 책을 가리고 시험을 쳤다. 초반에는 100개 정도, 나중에는 하루에 400개씩 암기해 시험을 쳤다. 틀린 건 모아서 책에 표시해 두고 다음에 외울 때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암기했다. 단어 시험이 끝나면 차 한잔하고 영어나 국어를 공부했다.
② 오후시간 : 잠이 많이 오기 때문에 중요도가 낮은 과목(즉, 쉽게 할 수 있는 과목)
사실 과목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잠이 많이 오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쉬운 과목들을 처리했다. 오후임에도 집중이 잘 되는 날이 있다면 어려운 부분을 파고 들어가도 좋다. 주로, 잠이 많이 오기 때문에 쉬운 부분을 했을 뿐이다. 강의를 들어도 좋다. 강의를 듣는데 잠이 온다면 다른 걸 하면 된다.
참고로 낮잠은 엎드려 자는 게 좋았다. 시간은 30분 이내가 제일 좋다.
③ 저녁시간 : 집중이 필요한 과목
아무리 공부해도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 시간 내서 반드시 잡고 가야 하는 부분을 이 시간에 해도 좋다. 반대로 저녁시간에 집중이 너무 떨어지는 스타일이라면 오후 공부와 바꿔도 무관하다.
④ 잠이 오면 낮잠을...
점심을 먹고 나면 보통 바로 졸리지는 않는다. 대략 1시간 정도가 흘러야 잠이 오기 시작하는데, 자고 싶으면 30분 정도 엎드려서 잔다. 일어나 화장실로 가보면 얼굴에 자국이 가득하다. 세수를 하고 자리에 앉으면 생각보다 개운하다. 그대로 2시간 정도 공부를 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주로 1시간 정도 산책을 한다. 이때 낮에 공부했던 것들이나 전 날 했던 것을 걸어 다니며 '머릿복습'을 한다. (머릿복습이라고 촌스럽게 이름 지었었다.) 머릿속에서 공부했던 것들을 주욱~ 흘려보낸다. 생각이 잘 나지 않으면 넘어가거나, 미리 준비한 휴대폰 사진을 보며 다시 떠올린다. 이렇게 하면 내부출력이긴 하지만 문제를 풀며 알고 있는 것을 출력하는 행위와 비슷한 효과를 얻는다.
나의 경우를 예를 들어 다시 정리하자면
공부시작 전 : 영어단어 시험 아침 : 국어, 영어 오후 : 국사(또는 소방 관련) / 산책으로 머릿복습 저녁 : 소방(또는 국사) 마무리 전 : 책을 덮고 머릿복습 대리운전 할 때 : 영어단어 암기
이렇게 반복을 했다.
이제는 소방도 과목이 조금 바뀌고 추가되고 했지만, 공부법은 비슷할 것이라고 본다.
다시 강조하지만 계획은 시간대별 세부적인 것보다는 위의 예시처럼 크게 크게 잡는 게 좋다. 국사의 어떤 부분을 공부하기로 했는데 2시간을 딱 계획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1시간 만에 끝을 내었다. 그러면 남은 1시간은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고민하다 보면 30분은 지나가고 없다. 2시간짜리 계획을 3시간 만에 마무리하면 다음 스케줄은 계속 밀리게 된다. 뜻하지 않게 계속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오늘 오후는 국사 중에서 조선 전기 경제 부분을 해야지'라고 하면 2시간이 걸리든 3시간이 걸리든 조전 전기 경제를 파면된다. 빨리 끝내서 시간이 남으면 문제를 풀거나 강의의 도움을 받아 더욱 확실히 다져볼 수 있다. 아니면 다음에 하려고 했던 국사의 다른 부분을 가져와 빠르게 한 번 볼 수도 있다. 오후 내내 조선 전기 경제 부분을 계획 잡았는데, 대부분 시간 안에 못하는 경우는 없었다. 혹시 분량을 너무 많이 잡아 못 끝내면, 저녁에 이어서 공부를 하고, 저녁 공부를 다음으로 미루거나 내일 오후에 추가하는 전략도 세워볼 수 있다.
계획을 크게 잡으면 계획 수정에 있어 융통성을 발휘하기 좋다.
마치며...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학습 전 계획 수립은 반드시 필요하다.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나눈다는 것이 썩 기분 좋은 것은 아니나, 시험을 떨어져 보았고 또 합격을 해 본 나는 계획수립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시험에 계속 떨어지고 있던 동생에게 계획을 세우냐고 물어보았을 때 돌아온 답변은 '아니요'였다. 그 친구뿐만이 아니라 많은 수험생들이 계획을 세우지 않고 아침에 자리에 앉아서 '오늘 뭐 하지'라며 고민을 하고 있다. 지금 같이 근무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질문을 했다. 너는 공부할 때 계획을 세웠니? 답변은 일관되었다. '네'
계획을 세우는 것이 반드시 합격을 보장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계획을 세우면 그만큼 합격에 가까워질 수 있음은 분명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이 크든 작든 어떤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면 반드시 계획을 세울 것을 추천한다. 나 역시 나만의 계획 수립으로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