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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Aug 01. 2023

친구가 먼저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결국, 나에게 집중하라

제4장. 화재최성기


최성기 때는 화재와 관련된 모든 가연물이 타들어 간다. 


그 동안 알고 있던 불과는 차원이 다른 열기를 경험하는 시간이다.


두꺼운 방화복도 뜨거운 열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목조화재의 최성기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게 만든다.


얼굴에 씌워져 있는 면체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 처럼 뜨거운 열기가 목구멍을 통해 넘어간다. 




나는 이 열기를 나의 열정에너지로 바꾸었다.




(이전 글)


https://brunch.co.kr/@kiii-reng-ee/41



30년 가까이 연락을 하며 서로 챙겨 오고 있는 친구 3명이 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들이다. 다들 각자의 꿈을 향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노를 젓고 있었다. 지금은 모두 자리를 잡아 애기 아빠가 되기도 하고, 직장도 잘 다니고 있다.


그중 한 명은 공무원 시험을 몇 년째 준비하고 있었다. 소방을 준비하던 나와 완전히 다른 직렬이고 문도 굉장히 좁아 어려운 시험으로 알고 있다. 서울로 올라가 사력을 다해 공부를 하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노량진의 뜨거운 분위기와 고시원 생활을 내게 들려주었다.


새벽에 일어나 강의실 앞자리를 위해 자리를 맞춰놓고 다시 고 시원으로 가 쪽잠을 자거나 아침을 먹는다.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다시 새벽에 일어난다. 잠은 언제 자냐고 하니,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잔단다. 공부할 때 집중은 되냐고 물었는데, 잘 된단다...


'역시 대학 나온 친구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잠시 하며,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멀리 했던 지난날이 후회가 되었다. 필시 이 친구는 공부가 몸에 배어 있을 터.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나도 밤에 대리운전을 한다지만 그건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인 거고 이렇게나 몸을 불사르며 공부를 하는 친구도 있는데 나는 뭐 하는 건지 싶었다.


하지만 친구는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 될 것 같아... 도저히 자신이 없어... 모의고사를 봤는데...'


라며 합격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는 고민하는 친구에게 한 가지 제안을 조심스레 했다.


"소방공무원 시험 안 쳐볼래?"


"?"


소방공무원 공개채용 과목과 체력준비, 시험의 난도, 경쟁률과 같이 시험에 필요한 정보들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꽤 며칠을 그렇게 통화해다. 한참이 지나서야 친구는 결심했는지 소방공무원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함께 근무하면 좋을 것 같았다. 평생을 나와 함께 해 온 친구와 같은 직업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학창 시절 서로 커서 어떤 직업을 가질지 그렇게 이야기 많이 했었는데 말이다.




이번 시험을 준비하며 다른 과목은 어찌어찌 커트라인 이상은 넘기겠으나 영어가 계속 걸렸다. 공무원 전용 강의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강의도 들어보았다. 문법 강의와 독해 강의를 이것저것 주워 들었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독해 연습도 해보고, 문법도 풀려고 노력해 봤다. 하지만 도무지 강의 내용도 이해되지 않았다. 안다 싶으면 헷갈리고, 이제 알겠다 확신하면 잊어버리고 말았다.




시험 결과... 는 불합격이었다.


국어와 영어, 국사 이렇게 세 과목은 100점을 기준으로

소방학개론과 소방법규, 그리고 각종 선택과목(사회, 수학, 과학 등)은 조정점수로 채점되었다.

조정점수는 해당과목을 응시하는 수험생들이 득점한 것을 비율로 계산하여 조정한다.

따라서 조정점수의 최대 점수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대략 80~85 정도 되었다.


다섯 과목을 모두 합쳐 평균으로 나누니 0.02점이 모자랐다.


불. 합. 격.


이번에는 정말 충격이었다. 체력도 다 준비되어 있었다. 소방에서 흔히 말하는 '필컷에 50 이상'이면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방은 체력 점수가 60점 만점이다) 그런데 그것은 일단, 필기를 통과해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친구의 시험결과는 합. 격.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필컷(최하점)이었다...

축하해 주고 싶었지만, 나의 속 좁은 마음이 상처를 입고 말았다.


나의 불합격 사실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친구는 체력준비와 관련한 온갖 질문들을 쏟아내었다. 조언을 해 줄 힘이 나지 않았다. 나도 못 붙은 시험인데, 한 번에 붙어서... 내가 무엇을 가르쳐 주리오...


정신을 차리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독기라도 생겨야 되는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태양을 바라보면 몸이 타 버리는 흡혈귀처럼 낮에는 칩거하고 해가 떨어지면 밖으로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술에 취한 고객들만 실어 날랐다. 6시부터 새벽 4시, 주말에는 아침 9시 넘게까지 일을 했다. 이제 그냥 대리운전 사업을 해도 될 것만 같았다.


공부에 대한, 시험에 대한 아픔을 잊기 위해 미친 듯이 일만 했다.


30명중 친구가 30등이고 내가 31등일 때 친구가 시험을 치지 않았다면, 내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30등으로 합격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말 치사하고 속좁은 생각이 아닐 수 없지만, 친구의 합격이 반갑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 나에 대한 분노 때문일 것이다. 진심으로 친구로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됐었다.


나의 대한 철저한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상황탓이나 하고 있다니... 그런 내가 또 한심스러워 자책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한 번도 없었던 뜻밖의 하반기 채용 공고가 뜨고 말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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