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준비를 하는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대리운전. 어느새 반년이 지나가니 제법 콜 좀 뛰는 대리기사가 되어 있었다.
차를 끌고 외곽지에 일찍 나가 장거리 손님을 모시기도 하고, 콜이 뜸한 새벽 시간에는 여유 있게 핫플레이스로 이동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적었다. 진상(?) 손님을 만나도 택시기사인 엄마랑 이래저래 떠들다 보면 노하우를 많이 전수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맨 정신도 아니고 술을 한 잔 하신 분들을 모시는 일이니 괜스레 짜증스러운 말투나 행동도 사정이 있겠거니~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나도 적응하기 힘든 것이 딱 하나 있었으니 바로 "합류차 끼어 타기"였다.
합류차는 기사들을 실어 나른다. 식당이나 술집들이 모여있는 곳이 아닌 주거지나 외곽지 같은 곳에 내린 기사들은 합류차를 불러 탈출한다. 합류차가 없으면 기사들은 택시나 버스, 혹은 도보로 나와야 하니 반드시 활용해야 할 시스템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합류차도 기사 한 명 달랑 태우고 나갈 수 없으니 탑승인원을 최대한 채워 움직여야 했다.
대리기사는 대부분 빠르게 걷거나 가볍게 달린다. 나같이 땀이 많으면 속옷과 셔츠, 바지가 계속 젖고 마르고를 반복한다. 아직 땀이 마르기도 전에 합류차에 몸을 구겨타면 기사님들 모두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약간의 고통섞인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이고~ 수고하십니다~" 하고 반갑게 인사 건네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다들 고통을 공유하기에.
차에 탄 기사님들은 저마다 파란 화면을 들여다보며 다음 콜을 기다린다. 마치 척추측만증이라도 있는듯 허리를 틀고 화면을 쳐다보고 있자면 머리가 어지러워 비어있는 속인데도 올릴 것만 같다.
탈출을 하다가 콜을 잡으면 차례대로 내려주지 않고 방향을 잡고 내려주는데, 합류차 기사님은 3명이든 5명이든 정확하게 하차시킨다.
그리고 뜨는 콜을 유심히 보며 콜을 받지 않거나 못 받은 기사가 있으면 잡으라고 오더도 내려준다.
6명 기사님들의 콜을 확인하고, 하차지점을 정확히 기억해 동선을 미리 그린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진기한 장면들이다.
뭐든 오래 한다고 다 잘하지 않듯 이 일도 마찬가지일 텐데 합류차 기사님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존경심이 배어 나온다.
덕분에 콜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고객들을 모실 수 있었고 탈출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장거리를 가도 합류차가 있으니 당연히 걱정할 것이 없다. 회사에서 정한 약간의 합류비만 드리면 된다.
좁은 합류차에 타지 않고 혼자 다녔더라면 쉽게 일을 할 수 없었을 테다. 실제로 합류차에 타는 것이 싫어 혼자 다니는 기사도 왕왕 있었다. 개인적으로 꼬리차를 붙여 다니는 분도 있었지만 나는 그럴 인력이 없다.
지나고 보니 가장 힘들고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나를 가장 편하게 해주고 있었다.
그 불편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망설였다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도 마찬가지다. 보기 싫은 부분, 어려운 부분을 계속 보지 않으면 점수는 늘 제자리다. 수험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던 것이 바로 보기 싫은 부분을 보냐 마냐였다. 그냥 보면 끝인데, 왜 이걸 가지고 고민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지만... 그랬다. 나도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는 '커트라인 속' 한 사람이라면, 그 법칙을 깨야지만이 합격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이런 삶의 귀한 가르침들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합격의 순간을 맛보고 나서야 내가 계속 연단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땀의 대가로 나는 계속 무의식적으로 지도를 받고 있었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