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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Jul 04. 2024

큰 불 이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어느 여행지든 마음에 차지 않는 필수 코스가 있다. 사람이 많을 것도 알고, 오래 머물지 않을 것도 알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지나치자니 마음 한편이 찝찝하니 일단 한 번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곳. 기어코 방문하고선 수많은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이럴 줄 알았다고 후회하는 곳들 말이다.

 프랑스 파리에도 그런 필수 코스가 있었다. 에펠탑, 개선문과 함께 꼭 방문해야 할 장소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노트르담 드 파리. a.k.a. 노트르담 성당이다.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과 그 에펠탑이 우뚝 선 시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개선문은 인터넷에 “파리 관광”을 치기 전부터 나의 위시 리스트에 있었다. 노트르담 성당은 글쎄. 그저 유명하다고 하니 관성처럼 여행 코스에 집어넣었던 것 같다. 나는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유럽 역사에 별 관심도 없었지만, 남들 다 가는 곳을 놓치는 것도 싫었다.


  노트르담 성당은 좋았다. 수많은 유럽의 성당들 사이에서 이곳이 유명한 이유도 납득이 갔다. 널찍한 예배당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기대 이상이긴 했다. 근데 이미 바르셀로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가우디의 성당을 보고 오는 길이라 솔직히 감흥이 덜했다. 하필 또 흐린 날이었다. 스페인에서처럼 햇살이 색유리들을 비추며 실내를 밝히지 않았다. 내부는 관광하기보단 경건히 기도를 드려야 할 분위기였다. 서둘러 인증 사진을 몇 장 찍고선 성당 밖을 나섰다. 성당 관광은 숙제였고 그다음 코스인 달팽이 요리는 보상이었다.


 2019년 1월, 지나가듯 희미한 기억만 남겼던 노트르담 성당은 같은 해 4월 불에 타 사라져 버렸다. 기사를 보고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하늘을 찌르던 높이 96m의 첨탑이 그냥 무너졌다. 그 첨탑을 보수하기 위해 세운 비계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전기 배선 오작동이거나 담배꽁초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 작은 불은 탑을 타고 내려와 성당의 목재 기둥을 하나씩 삼켰고, 파리 시내의 복잡한 도로는 불이 커질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렇게 지붕이 몽땅 타버린 것이다.


 불은 되돌릴 수 없다. 빛과 열을 내며 산소를 먹어치우는 연소반응은 한 물체의 성질을 완전히 바꿔버린다. 젖으면 말리면 되고, 깨지면 붙이면 되지만 불과 만난 후엔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삶은 계란을 다시 날계란으로 되돌릴 수 없잖나. 재료만 있다면 다시 만드는 것은 쉽지만 그게 어떻게 원래대로 돌아간 것일까. 그저 닮은 무언가일 뿐이다.

 무너진 성당의 사진이 첨부된 기사를 읽으며 생각했다. 내가 봤던 노트르담 성당은 이제 없겠구나. 그곳은 어땠더라. 방문했을 때 더 유심히 살펴볼걸. 기도하는 사람들 틈에 앉아 잠시 눈이라도 감아볼걸. 구석구석 있는 안내문들을 자세히 읽어볼걸. 후회해도 이미 불은 모든 걸 삼키고 난 후였다.






"이봐! 불이야! 조종석에 불이 붙었다!" 



 1967년 1월 27일, 지상 테스트를 진행하던 우주선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바로 다음 달 발사 예정이었던 아폴로 1호였다. 그 안에는 세 명의 우주인 '거스 그리섬', '에드워드 화이트', '로저 채피'가 타고 있었다. 


아폴로 1호에 탑승 중인 세 명의 우주인들 왼쪽부터 로저 채피, 에드워드 화이트, 거스 그리섬 /NASA.


 마찬가지로 시작은 작은 불꽃이었다. 마모된 전선에서 시작된 불꽃은 고압 산소로 가득한 실내 공기를 만나 큰 불이 되었고, 이어 우주복과 내부 시설에 옮겨 붙었다. 당시 우주선과 우주복은 나일론 소재가 많았다. 화재 조사 결과 이들은 고압 산소 환경에서 불이 쉽게 붙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석 조종사 에드워드 화이트는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바깥보다 높은 압력을 가진 내부에서 안쪽 방향으로 열리는 해치를 여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더욱이 불이 붙은 산소는 팽창하며 내부 압력을 높였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결국 이 화재 사고로 세 명의 우주인이 희생되었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들인다는 기대로 가득했던 미국 국민들에게 이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왜 그렇게 불이 잘 붙는 재질이 사용됐는지. 내부 기체는 어째서 순수 산소여야 했는지. 내부에서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우주인들 스스로 탈출할 방법은 정말 없는지. 지상 테스트에서도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데 과연 우주에서는 안전할 수 있을지. 정말 많은 논쟁이 오갔다.

 사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아니 사고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기회는 있었다. 제조사에선 폭발 볼트를 이용해 내부에서도 해치를 열 수 있는 장치를 제안했으나 실수로 작동된다면 도리어 위험할 수 있다는 반박을 받았다. 가연성 소재 역시 바꾸면 좋겠다는 말 역시 나왔었으나 개선되지는 않았었다. 지금 와서 말해봤자 무얼 어떻게 할까. 이때 말을 들었어야 했다고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사고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서 끝나는 걸까.


 성당 화재 이후 5년.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은 지금 복원 작업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우리는 아름다웠던 그 성당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고 다시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과거와 완전히 같을 수는 없더라도 최대한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똑같이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너졌던 첨탑도 다시 꼿꼿이 섰다. 이르면 내년, 공사를 마무리한 후 다시 관광객을 받을 예정이다.

 아폴로 1호의 화재 사건 이후 아폴로 미션 역시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세 명의 우주인을 기억하고 있고 같은 희생은 절대 치르고 싶지 않다. 우주선을 전면 개량하고 매뉴얼을 새로이 썼다. 지상 시험 시 순수 산소의 사용을 금지하고 내부 배관과 배선은 두꺼운 절연 소재로 둘렀다. 불이 붙는 소재들을 모두 불연성 재료로 교체했다. 마찬가지로 우주복 역시 나일론 대신 유리 섬유로 제작됐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해치는 비상시 7초 만에 바깥쪽으로 열리도록 바뀌었다. 덕분일까. 이후 아폴로 우주선에서 이와 같은 화재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폴로 13호가 미션 중 산소탱크가 터지는 사고를 겪었지만, 이러한 철저한 대비가 있었기에 폭발로 인한 화재는 없었다고 한다.



불은 많은 것들을 너무 쉽게 바꿔버린다. 하지만 큰 불을 만난 후엔 반드시 그다음 과정이 있다. 


5년이 걸렸지만 다시 옛 모습으로 만날 수 있게 된 노트르담 성당처럼. 


잊지 않고,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고 나아갔던 아폴로 계획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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