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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찬 Sep 12. 2023

변신_프란츠 카프카

이렇게 산다 12화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 변하고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변한다.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지는 기준에 그 변화의 가치와 판단이 달라지곤 하지만 변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세계문학전집을 아이들 교육에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광고하는 한 홈쇼핑 쇼호스트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신 나머지 우리 집 거실 책장은 세계 유명 작가들의 책들로 가득했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책장 앞을 서성이다 제목에 이끌려 카프카의 변신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한다는 설정은 당시 내가 갖고 있던 변신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고 흉측하게만 느껴져 절반도 읽지 않은 채 책을 덮었다. 그러나 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 그레고르 잠자의 변신이 이제는 흉측하기는커녕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나도 그레고르와 같은 변신을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 그에게 연민심을 느꼈다. 게다가 그레고르의 변신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경험하는 삶의 한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어릴 적 공부를 꽤나 하는 학생이었다. 학교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성적과는 별개로 받지 않아도 될 인정과 기대를 받고 자랐다. 그러다 갖게 된 외고생이라는 간판은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타인의 인정과 기대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과 명예에 안주했던 탓에 학교 성적은 떨어졌고 결국 이른바 명문대에 단번에 진학하지 못했다. 나는 수능을 총 네 번 치렀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었다. 수능 시험을 거듭할수록 타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힘들었다. 싸늘하기까지 느껴지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열등감이 깊어져 갔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덕에 나는 열등감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열등감은 자신감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타인보다 무엇을 잘하거나 더 낫다는 비교우위에서 오는 자신감은 나보다 더 잘난 이를 만났을 때 마치 동전을 뒤집듯 가졌던 자신감만큼 열등감으로 변한다. 나는 사수생이던 작년 가을에 비로소 깨달았다. 학창 시절 내내 나를 뒷받침하고 있던 것은 건강한 자존감이 아니라 취약한 자신감이었고 명문대 간판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한 것도 그동안의 삶이 학교 성적만으로 만사형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나는 한 문장을 만났다. “삶은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순간 시작된다.”(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2017) 나는 초라한 내 마음을 채우고 싶었고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여행은 익숙한 안전지대를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다양한 갈래가 있지만 내가 선택한 길은 여행이었다. 수험생 시절, 학비를 위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둔 돈을 모두 챙겨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고 94일 뒤인 지난 5월 말에 돌아왔다. 여행에서 마주한 행운과 불행 그리고 우연한 만남들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삶의 불확실함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즐겁다. 그레고르의 변신만큼 충격적이지 않지만 내게 있어 강렬하게 남을 두 번의 변곡점은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님을, 오히려 당연한 삶의 원리임을 일깨워주었다. 

 그레고르 잠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변신한 이후 가족들은 서서히 그들 스스로 생계를 마련하기 위해 일을 시작했고 말미엔 서로의 일 자리가 썩 나쁘지 않고 심지어는 희망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들은 더 이상 그레고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레고르가 되어 전차에 앉아 희망에 찬 눈빛을 주고받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다 존재에 대한 허무함이 밀려온다. 그레고르는 그의 직장은 물론 심지어는 가족에게까지도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지 못했다.

최근에 좋은 소식이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가 회계사 시험을 단번에 합격했다. 그 친구와 같은 공부 모임에 있는 다른 친구와 합격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걔가 단번에 합격한 게 내게도 좋아. 왜냐면 우리가 하고 있는 공부의 방향이 맞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하던 대로 하면 되겠다 싶어. 만약에 걔가 떨어졌으면 더 조급해지고 불안해졌을 거 같아.” 우리의 대화는 그에게 친구의 합격이 왜 도움이 되는지 나누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둘은 둘도 없는 단짝이고 서로를 의지하는 친구다. 그러나 그런 관계 속에서도 존재 그 자체로 존중하고 기쁨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나 또한 덕을 볼 심산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상대방과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곱씹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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