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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찬 Jul 03. 2024

L'Étranger

온 몸으로 살아가고, 온 마음으로 증언하는 사람

사랑받으려고 하지 말라_앨리스 워커


사랑받으려고 하지 말라.

자발적인 추방자가 되라. 너의 인생의 모순들을 숄처럼 몸에 두르라. 날아오는 돌들을 막고 너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이 환호하며 광기에 굴복하는 것을 지켜보라.

그들이 곁눈질로 너를 보게 하고 너도 곁눈질로 화답하라.


추방자가 되라.

초라해 보여도 혼자 걷는 것을 기뻐하라.

그렇지 않으면 혼잡한 강바닥에서 성급한 바보들과 함께 줄을 서야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용기 있게 아픈 말을 하고 죽어 간 강둑에서 즐거운 모임을 가지라.


사랑받으려 하지 말라. 추방자가 되라.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 자격을 얻으라.


류시화 시인은 말한다. "자발적인 추방자가 된다는 것은 집단 속에 매몰된 자아를 찾는 일이다. 다발에 묶이지 않고 한 송이 꽃으로 고고하게 서는 일이다. 사랑받기 위해서 타의적인 삶을 살지 않으며, 집단으로부터 버림 받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 일이다. 타인의 생각을 의식하는 것만큼 큰 감옥은 없다. 타인이 당신의 여행을 이해하리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어차피 당신과 같은 여행을 하지 않을 사람들이니까.

필요한 것은 ‘사랑받지 않을 용기’이다. 사랑을 구걸하지 않으려면 고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군중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강둑에서 자신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사람들이 당신을 곁눈질로 쳐다보면 당신도 곁눈질로 보며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모순 덩어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모순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합리적인 머리만으로는 멋진 춤과 음악을 만들 수 없다. 사람들이 나를 추방하기 전에 나 스스로 추방자가 되어야 한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신이 준 선물이다."


배낭여행을 할 때 일이다. 어느 마을과 도시를 가도 나는 이방인이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현지인들과 생김새도, 말하는 언어도, 쌓아온 정서도 달랐다. 여행하면서 한국인도 많이 만났다. 그러나 나는 내가 대부분의 한국인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과 대화하며 순간순간 깨닫곤 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사랑받고자 애쓰며 살아왔다. 그것이 선(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출입이 자유로운 감옥에서 자발적으로 복역하고 있었음을 이제 깨친다. 나는 잠겨 있지 않은 철문을 열고 감옥에서 걸어나간다.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는다. 곁눈질이 쏟아지는 듯하다. 누군가는 화를 낸다. 가슴이 떨려온다. 나는 왜 저항하는가. 이렇게 나가면 무엇이 나를 기다릴까. 지금껏 살아온 대로 안정을 느끼며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나았던가? 불안이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는다. 이 길을 앞서간 동서고금의 선배들을 생각하면서. 저 멀리 들려오는 듯한 지금은 볼 수 없는 내 벗들의 발자국 소리에 집중하면서. 나는 인정투쟁에 애써왔던 내 모습에 '농'(non)을 외친다. 나는 자발적 이방인인 내 모습에 '위'(oui)를 말한다.


카뮈는 말한다. "나는 본 대로 묘사하고, 말한다. (중략) 잠시 후 압생트 풀밭에 몸을 던져 그 향이 몸에 배게 할 때, 나는 모든 편견에 맞서 진리를 실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리라. 그 진리는 태양의 진리이고, 또한 내 죽음의 진리일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내가 지금 내거는 건 다름 아닌 내 삶이다. 미풍은 상쾌하고 하늘은 푸르다. 나는 꾸밈없이 이 삶을 사랑하며, 이 삶에 대해 자유로이 이야기하고 싶다.(중략) 모든 아름다운 존재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연스런 자부심을 지니고, 오늘 이 세계는 모든 면에서 자신의 자부심이 새어 나오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 그 앞에서 내가 왜 삶의 기쁨을 부인하겠는가? 삶의 기쁨에만 매몰된 것이 아닐진대 말이다. 행복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바보가 왕이고, 나는 즐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를 바보라 부른다. (중략) 나는 온 몸으로 살아가고, 온 마음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티파사에 살고, 증언하기. 예술 작품은 그 뒤에 올 것이다. 거기에 바로 자유가 있다."

‘사랑받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그 용기를 기어코 갖게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온 몸으로 살아가고, 온 마음으로 증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슴 아린 찬사를 보낸다. 동서고금을 초월한 내 벗들을 만나고 싶다. 벗들과 함께 하고 싶다. 시인의 마을에서.




*작가이자 시인인 앨리스 워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곧 추가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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