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알고, 말이 나를 만든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이 ‘의식이 나를 통해 표현되는 방식’이라면, 그 의식은 어디에 깃들고, 어떻게 세상에 드러나는 걸까?
자기 바깥으로 나가는 어느 한 존재의 일치, 그것이 몸입니다.
- 장 뤽 낭시, 『코르푸스』 P141
프랑스 철학자 장 뤽 낭시는 『코르푸스』에서 몸을 ‘영혼의 도구’가 아닌, 의식이 세상에 자신을 내보이는 방식 그 자체로 바라본다.
의식은 몸을 통해 드러나고, 말을 통해 표현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통로가 보내는 신호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을까?
내 안테나는 외부를 향해 있었다
잠시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스쳐 지나가는 ‘아하’의 순간들을 놓치기 싫어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라는 사람을 더 많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에 대해 깨달은 사실 중에 가장 큰 것이, 나의 안테나는 많은 시간 외부를 향해 있었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들리는 이야기에 더 많이 신경 쓰고, 타인의 반응에 더 예민했고, 남들의 평가가 가장 중요했다.
단순히 마음뿐 아니라 몸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나에게 "요즘 힘들어 보여” 혹은 “피곤해 보여”라고 하면 바로 반응했다. 상대방의 “너 어때 보여”라는 말에 나는 즉각적으로 자기 검열을 하곤 했다.
“내가? 왜? 어디가? 초췌해 보인다는 건가? 기분 상한 게 티 났나?...”
그러나 재미있게도 내 몸이 "나 피곤해"라고 신호를 보내면 나는 대부분 무시하곤 했다. ‘조금만 더 버텨.’, ‘이것만 끝내고.’… 그러다 결국 완전히 소진되고 아프고 나서야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며 ‘아, 진짜 힘들었구나.’ 했다.
목표를 지키겠다고 수면 시간을 줄이다 이명을 겪고 나서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것이 두 시간이나 깊이 잠들고 나서야 나는 내가 피곤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몸은 이명으로, 쏟아지는 잠으로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너 지금 너무 무리하고 있어."
나는 매번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무시했고, 결국 더 지쳐버리고 완전히 소진되었다가 겨우 회복하기를 반복하곤 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 한마디 하면 며칠을 곱씹으면서, 정작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는 왜 이렇게 둔감할까.
몸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하고 한 주 동안 어떤 소재들이 좋을까 생각하다 문득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균대에서 친구와 밀어내기 놀이를 하다 떨어졌는데 하필 바닥에 있던 돌멩이에 머리를 부딪혀 머리를 꿰매야 할 정도로 크게 상처가 났다. 엄마와 급히 병원에 가 상처를 봉합하는 동안 울지 않는 나를 보며 엄마가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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