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다녀도
그날, 정말로 칼퇴를 했다.
6시 정각에 컴퓨터를 끄고 일어났다. 팀장님이 살짝 놀란 얼굴로 쳐다봤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으니까.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네, 김차장 고생했어요. 들어가요."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경영팀 송대리를 마주쳤다.
“차장님 들어가세요?"
송대리가 말을 걸어왔다.
"아, 대리님. 네. 저 오늘 일찍 들어가려고요.”
“칼퇴하시는군요. ㅎㅎ”
“칼퇴라기보다 정퇴죠 ㅎㅎ, 대리님도 일찍 들어가세요.”
그랬다. 오후에 생각해 보니, 6시 퇴근은 칼퇴이기 이전에 정시 퇴근이었다. 6시 퇴근은 내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였다. 나는 아침 9시부터 6시까지만 일을 하기로 했고, 그렇게 적힌 연봉계약서에 사인도 했다.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없는 일을 만들어 하며 퇴근 시간을 늦추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돌아오는 건 ‘지랄한다’는 말이었다.
“차장님, 저…”
사무실로 들어가려던 송대리가 몸을 돌려 다시 나를 불렀다.
“네?”
“차장님, 혹시 잠시 시간 되세요?”
“지금요?”
“네… 아… 일 있으시면 어쩔 수 없고요.”
머뭇거리는 송대리의 표정에 미안함이 묻어났다. 동시에, 설핏 아쉬움이 얼굴에 스쳤다. 할 말이 가득한 얼굴.
“괜찮아요, 차 한 잔 할까요?”
“네! 저 바로 가방 챙겨서 나올게요.”
“1층에서 기다릴게요, 내려와요.”
송대리의 어두웠던 표정이 환해졌다. 송대리는 육아휴직이 끝나고 한 달 전에 복귀했다. 복귀 기념으로 여직원들끼리 점심을 한 번 같이 먹었었다. 워낙 조용조용한 편이라, 있는 듯 없는 듯했다. 회사에 불만이 있을 법도 한데, 직원들끼리 모여 회사 흉을 볼 때도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회사 앞 카페. 아까 점심에 갔던 그 카페였다. 둘 다 따뜻한 페퍼민트 차를 시켰다. 언제부턴가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들기가 어려웠다.
"칼퇴하고 오니까 좋네요 ㅎㅎ”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게요, 이렇게 칼퇴하고 나와서 차 마시는 게 처음인 거 같아요.”
“저녁이 있는 삶이네요.”
송대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차장님 오늘 많이 힘드셨죠?”
사무실 직원 중 그 누구도 하지 못한 말을 송대리가 꺼냈다.
“아… 네… 어쩌겠어요…”
그 광경을 본 사람이 얘기를 꺼내니 갑자기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보고 시간의 나의 얼굴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사람들은 욕을 듣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동안 내가 해 온 일들을 부정당하는 느낌을 그들도 느껴봤을까…
수만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 저편에서 밀물처럼 확 밀어닥치는 느낌이었다. 그 속도에 다시 숨이 막힐 것 같아 서둘러 말을 꺼냈다.
“그런데 송대리님 무슨 일 있어요? 표정이 좀 어둡던데…”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던 송대리가 손을 뻗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차장님, 저 이번 주까지예요.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저 퇴사해요…”
“갑자기요? 왜요? 복귀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네…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잠시 뜸을 들인 뒤, 송대리가 말을 이었다.
"복귀하기 전부터 좀 이상하긴 했어요. S전무님이 팀장님한테 계속 물어보셨대요. 정말 복귀하냐고, 힘들지 않겠냐, 이제 돌 된 애기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냐… 그런 질문들을 계속하셨대요. "
"…"
"처음엔 걱정해 주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송대리는 이 회사가 첫 직장이었다. 대학 졸업하고 바로 들어와서 벌써 10년이 넘었다. 경영팀에서 경비, 총무 업무 등을 두루 맡았다. 회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원 중 하나였다.
"복귀하고 나니까… 일을 안 주더라고요."
송대리가 육아휴직을 가기 전, 회사에서는 계약직으로 혜원 씨를 뽑았다. 혜원 씨는 일을 곧잘 했고 송대리가 하고 있던 일 중 많은 부분을 맡아해 왔다.
"혜원 씨한테 제 업무 인수인계하고 갔는데, 복귀하니까 혜원 씨가 일을 잘하고 있더라고요. 초반에는 업무 모른다고 연락도 많이 하더니, 일을 빨리 배웠더라고요.”
혜원은 일머리가 있는 친구였다. MZ 답게 자기 할 말도 하면서,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했다. 그 덕에 올해 초 계약직 기간이 만료된 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고 들었다.
"혜원 씨가 일을 해도 송대리님 업무를 다 할 순 없을 텐데요?”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혜원 씨가 처음에 와서 다 못하는 업무들은 다른 팀으로 업무를 넘기기도 하고 경영팀에서 좀 나누기도 하고 분배를 했더라고요.”
경영팀 팀장과 다른 팀원들이 그전에 송대리는 다 했던 일이라면서 우격다짐으로 시켰던 일들을 거절했다는 혜원의 말이 떠올랐다. MZ들 무섭다며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하던 경영팀 팀장의 말도 떠올랐다.
언젠가 혜원과 이야기하던 중, 팀장이 ‘그 자리에 있으면 원래 다 하는 일’이라고 했다기에,
“원래 하는 일이 어딨어요, 상황 따라 바꾸기도 하는 거지.”
라고 혜원의 편을 들었던 것도 생각났다. 괜스레 송대리에게 미안해졌다.
송대리가 말을 이었다.
"출근해서 앉아 있으면 별로 할 일이 없어요. 팀장님도 업무 분장하자고 얘기는 하는데, 자꾸 차일피일 미루더라고요"
10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출근해서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기분은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첫 직장이고, 친한 사람들도 많고, 곧 업무 분장을 해 주겠지 했어요. 혜원 씨도 혼자서 업무가 너무 많아서 혼자 다 하기는 힘들다고 했거든요.”
송대리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건 처음이었다.
"근데 지난주 금요일에 S전무님이 부르시더라고요."
송대리가 잠시 멈췄다. 눈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
"실업급여받을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퇴사하라고요."
“하…"
퇴사라는 단어를 말하면서 송대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냥 그렇게 됐어요. 저도 더 버텨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절대 실업급여는 안 해 준다고 S전무님이 나가는 직원들한테 얘기했다던데…”
“베트남 발령을 내면, 원거리 발령으로 실업급여 처리가 가능하다고…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고요.”
“참… 궁리 많이 했네, 그런 건…”
숨이 막혀왔다.
10년이다. 10년을 넘게 다닌 첫 직장에서, 아이 낳고 돌아왔더니 나가라고 한다.
감히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었던 첫 직장이, 대규모 투자를 받고 망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쫓겨나듯 퇴사한 기억이 떠올랐다. 첫사랑이 깨어진 것 같은 슬픔과 아픔이었다. 어리고 여렸던 나는 몇 달 동안 다른 직장을 구할 엄두를 못 내었다가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그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그때의 슬펐던 감정은 여전히 마음 한 켠에 남아 있었다. 송대리의 심정이 어떨지, 알 것도 같았다.
"아휴… 그랬구나… 송대리님 너무 속상했겠다…"
"그렇죠. 근데 어쩌겠어요."
송대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여직원이 육휴 쓰고 복귀한 게 제가 처음이에요. 그전에는 다들 그냥 나갔거든요. 육휴 시켜주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남자 직원들은 가끔 육휴 쓰는데, 그건 이직하려고 쓰는 거고, 복귀하는 사람 없었어요."
알고 있었다. 이 회사가 그렇다는 걸.
"저는 진짜 복귀하려고 했거든요. 첫 직장이니까. 정들었으니까."
"…"
"근데… 회사는 아니었나 봐요."
송대리의 말끝에 울음이 묻어났다.
송대리와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봤다.
아침에는 '지랄하네' 소리를 듣고, 화장실에서 울고, 저녁에는 10년 다닌 직원이 쫓겨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게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다.
집에 도착하니 성준이 먼저 와 있었다.
"어? 오늘 일찍 왔네?"
"응. 칼퇴했어."
"칼퇴? 무슨 일 있어?"
"오늘… 많은 일이 있었어."
나는 천천히 이야기했다.
아침 주간업무보고. 대표가 '지랄하네'라고 한 것, 화장실에서 울었던 것, 그리고 송대리 이야기.
성준은 말없이 듣다가 한숨을 쉬었다.
"… 진짜 너무하네."
"그치…"
"지난주에 이어서 또 그런 거야?"
"응.”
"미쳤다 진짜."
성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송대리님은… 육휴 쓰고 복귀했는데 나가라고 한 거야?"
"응. 실업급여 처리해 줄 테니 나가래."
"다닌 지 10년 넘었다며?"
"응."
성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 회사 정말 너무하네. 아무리 월급 준다지만 사람을 완전히 부품 취급하는 거잖아.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혜야."
"응."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그 회사 그만두는 게 어때?"
지난주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그때는 그냥 위로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달랐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더 버틸 필요 없어. 네가 왜 그런 데서 욕먹으면서 일해야 해."
“흠…"
"송대리님 보면서 생각 안 들어? 10년 다녀도 저렇게 되는 거야. 회사는 널 안 지켜줘."
맞는 말이었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 그만두면… 어떡해. 대출도 있고."
"어떻게든 되지. 내 월급도 있고."
"외벌이는 힘들어."
"힘들면 힘든 대로 살면 되지. 지금보다 더 힘들겠어?"
“…”
"천천히 생각해. 급하게 결정 안 해도 돼. 근데 그 회사에서 버티는 게 답은 아닌 것 같아."
"…응."
"이직이든 퇴사든, 뭐든 같이 생각해 보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저녁은?”
분위기를 바꾸듯 성준이 물었다.
“치킨 시켜 먹을까?”
보통 월급날 시켜 먹는 치킨이 생각났다. 성준의 얼굴이 환해졌다.
“좋지! 집에 맥주가 있던가?”
치킨 얘기에 이렇게 기뻐하는 소박한 남자라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아주 오랜만에, 넷플릭스로 기안84가 나오는 예능을 보며, 깔깔거리며, 맥주를 마시고 치킨을 먹었다.
퇴사.
그 막연한 단어를 우리의 입으로 뱉었다는 해방감 때문이었을까? 마음이 가벼웠다. 오늘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그 많았던 일들 너머에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희미하지만 확실한 느낌을 둘 다 알아차리고 있었다.
마치, 금기를 깨고 나서, 별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두려우면서도 가벼워진 마음으로, 우리는 싱거운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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