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아이 없음', 다른 무게
대표에게 욕을 먹은 다음 날, 목요일에도 나는 정시에 퇴근했다. 성준에게 이번 주 내내 칼퇴를 할 거라고 선언도 했다. 금요일에도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카톡을 확인했다. 평소보다 숫자가 많이 떠 있었다.
‘무슨 일이지?’
회사 식당으로 올라가며 카톡을 열었다. 대학 동기 나영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동기 카톡방에 올라와 있었다. 친구들은 조심스럽게 장례식장에 언제 갈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혜화역 근처 대학병원의 장례식장. 멀었다. 금요일 저녁, 경기도에서 서울 강북까지. 지하철이 얼마나 복잡할지 걱정이 앞섰지만 주말엔 또 지방으로 시댁 친척 동생의 결혼식에 가야 했다. 오늘 다녀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늘 검은색 계열의 옷을 입고 다니는지라 조문복으로 갈아입을 필요도 없었다.
다만 베이지색 단화가 조금 걸렸다. 신발장에 고이 모셔둔 짙은 색 구두들이 떠올랐다. 버리지도 못하고 신지도 않는 구두. ‘정장이 잘 어울리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중소기업에서 부장 달기도 어려운 만년 차장이다.
어찌 되었건, 조문 복장을 따로 갈아입을 필요가 없고, 신발은 화려한 단색은 아니니 장례식장으로 가도 괜찮을 것 같다.
한 시간 반이 걸려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빈소 앞에 나영이 보였다.
“어? 지혜야! 먼데 어떻게 왔어. 고마워.”
검은 상복을 입고 선 채로 조문객들을 맞으며, 온몸으로 울고 있는 듯한 나영을 보니 코끝이 찡해졌다. 고마움과 반가움이 섞인 얼굴로 내 손을 잡는 나영의 어깨를 한 번 안아주고 한쪽에 가방을 내려놓고 조문을 했다. 고인을 향해 절을 두 번 하고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상주들을 향해 섰다.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가방을 다시 들고 나오며 나영의 손을 잡았다.
“민지랑, 수정이랑… 애들 와 있어. 나도 금방 갈게.”
뒤이어 조문객들이 찾아와 나영은 빈소에서 함께 나오려다 다시 발길을 돌렸다. 조문객 사이 한 테이블에 친구들이 앉아 있었다.
"지혜야, 여기 앉아."
민지가 옆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들 일찍 왔나 봐."
지난 연말 모임 후 세 달 만에 보는 얼굴들이었다.
"응, 우리 온 지 30분쯤 됐어.”
은진이 고생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영이 많이 힘들어 보이더라."
"그렇겠지... 갑자기 돌아가셨으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장례식장 특유의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그 공기를 참지 못한 듯, 친구들이 말을 건네왔다.
“지혜 오느라 힘들었겠다. 오래 걸렸지?”
“밥 먹어, 배고프겠다. 여기 밥이랑 국 좀 주세요.”
동기들은 급하게 안부를 묻고 밥을 달라고 얘기했다. 순식간에 앞에 밥과 국, 그리고 다른 찬들이 놓였다.
“나영이 어머님 왜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신 거야? 지난번에 만났을 때 나영이 별 말 없었잖아”
앞에 놓인 일회용 숟가락의 비닐을 뜯으며 나는 동기들을 향해 물었다.
“급성 위암이셨대.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그랬나 봐. 처음 진단받으시고 세 달도 안 됐는데.. 손 쓸 겨를도 없이 온몸에 퍼졌대.”
나영과 평소에도 자주 연락을 하는 혜진이 대답을 해 주었다.
“그랬구나… 에휴… 나영이도, 가족 분들도 너무 황망하시겠다…”
천천히 숟가락을 들어 국을 입에 넣었다.
“나영이 온다.”
돌아보니 나영이 다가오고 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앉아, 앉아”
동기들이 앞다투어 나영을 향해 말을 걸었다.
“밥 좀 먹었어? 와 줘서 고마워.”
나영의 목소리에 아까보다는 울음이 사라진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밥을 먹다가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한 두 마디씩을 건넸다. 그때, 아이들 둘이 뛰어왔다.
“엄마~”
나영의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다가오더니 큰 딸은 엄마의 손을 잡고, 둘째 아들은 엄마에게 폭 안겼다.
“얘들아 인사해야지, 엄마 친구들한테.”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꾸벅 인사했다. 장례식장인데도 해맑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긴 하는 걸까.
"어머, 얘들아 안녕~"
"세연이 많이 컸네! 세진이도 여전히 귀엽다~"
친구들이 아이들을 반겼다. 아이들은 잠깐 인사를 하고 뭔가 엄마에게 할 말이 많은 듯 조잘거렸다. 한참을 이야기를 하던 아이들이 곧 다시 어딘가로 뛰어갔다.
아이들이 잠시 다녀갔을 뿐인데 친구들의 화제는 아이들 이야기로 옮겨갔다.
"세연이 벌써 초등학생이지?"
“응, 나 이제 학부모야.”
"시간 진짜 빠르다."
"둘째 낳고 힘들었는데, 벌써 이렇게 컸네."
"그러게. 두 살 터울이면 진짜 힘들지."
“너희 애는 어린이집 들어갔어?”
“응, 집 앞에 국공립 돼서 거기로 보냈어. 너무 잘됐지.”
자연스럽게 아이 얘기가 이어졌다.
"은지 너희 애는 어때? 어린이집 적응했어?"
"적응은 무슨. 매일 전쟁이야."
"혜진이 아들은?"
"걔는 요즘 유튜브 중독이야. 핸드폰 뺏으면 난리 나."
아이들 이야기가 시작되니 갑자기 테이블에 활기가 도는 듯했다. 육아 고충, 학교 얘기, 학원 얘기, 어린이집에 처음 간 얘기… 끝이 없었다.
나는 밥을 먹으며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서 어쩌다 한 번씩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애가 없는 민지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수정이 우리를 쳐다봤다.
"참, 너희 둘은 아기 소식 없어?"
순간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모든 시선이 나와 민지에게로 쏠렸다.
민지가 어색하게 웃었다.
"음… 아직…"
나도 말을 얼버무렸다.
"어… 우리도 뭐…"
“일도 좋지만 빨리 낳아. 나이 먹어서 애 낳고 키우려면 힘들어.”
“맞아, 점점 더 힘 빠져.”
2년 전 둘째를 낳은 은지가 말을 이어갔다.
“3월 돼서 어린이집 개학하니까 진짜 살 거 같아. 방학이 제일 무섭다니까.”
방학과 개학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잠시 후 민지가 조용히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지혜야."
"응?"
"나 물어볼 거 있는데."
"뭔데?"
민지가 잠시 망설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네도… 불임이야?"
"…응?"
"아… 미안. 갑자기 이런 거 물어봐서."
민지가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떼려다 말고, 내 쪽으로 한 번 더 몸을 기울였다.
"너네도 아직 아기 소식 없길래… 그냥… 나만 그런가 싶어서…"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불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나 이번 달 초에 휴직했어."
"… 휴직?"
"응. 휴직하고 시험관 하려고."
민지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3년 동안 시도했는데 안 돼서. 아예 쉬면서 시험관 하면 좀 될까 해서."
나는 민지를 바라봤다. 동기들 모임에서, 인스타에서 보는 민지는 늘 행복해 보였다. 대기업 다니고, 여행 다니고, 호텔 수영장 사진 속의 민지는 군살도 없이 날씬하고 피부도 좋아 보였다. 잘 어울리는 명품 선글라스 뒤에, 민지도 고민이 있다는 걸, 민지의 그런 표정을 나는 처음 봤다.
"애들은 아무도 몰라. 회사는 그래도 휴직이 가능하니까, 일 년 휴직하기로 했고.”
“그랬구나…"
"근데 장례식장에 와서도 애들 얘기만 하는 걸 들을 줄은 몰랐네 ㅎㅎ 나만 할 말이 없는 것 같고."
그랬다, 죽음을 맞이하는 장례식장에서 우리는 생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너흰 아직 계획 없는 거야?"
나는 잠깐 멈칫했다.
우리는 불임이 아니다. 안 낳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는 불임을 비자발적 딩크라 했다. 나는 자발적 딩크였다.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고, 누군가는 원치 않는다… 간절한 표정의 민지 앞에서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도 아직… 그냥 지내고 있어…"
민지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너희도 그렇구나… 우리 비슷하다 ㅎㅎㅎ”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워하던 민지의 표정이 조금 환해졌다. 처지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일까. 무슨 말이든 위로를 해 주고 싶었다.
"많이 힘들었겠다."
“어휴… 그니까… 너네는 시험관 안 해 봤어?”
“응…”
“난 병원 갔다 오면 며칠씩 앓아, 진짜 너무 힘들어.”
민지는 그 힘듦이 실제로 느껴지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인공수정도 안 해 봤어? 우린 그것도 안 돼서 시험관 하고 있어.”
인공수정이랑 시험관이 다른 건가, 뭐가 뭔지도 모르겠어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랬구나... 우린 아직.. 그냥 지내고 있어”
거짓말도 아니지만, 사실도 아니었다. 나는 아무 말이나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 다니는 병원 알려줄까?”
“아니야 아니야, 서울일 거 아냐. 너무 멀지”
나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래, 집이랑 가까운 게 젤 좋더라.”
“응, 그렇지.”
친구들도 거의 이야기가 끝나가는 듯 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민지야 좋은 소식 있음 알려 줘.”
나는 진심을 담아 민지에게 이야기했다.
"고마워. 너도 알려 줘"
“그래 그럴게"
“우리 애들 같은 해에 태어나면 재밌겠다.”
아까보다 훨씬 맑아진 얼굴로 민지가 덧붙였다. 그 맑음이 짠하게 느껴져 마음이 무거워졌다.
친구들과 장례식장을 나오는 길.
병원 입구에서, 지하철 입구에서, 다른 방향으로 가는 플랫폼 위에서 각자 헤어졌다. 같은 방향인 친구는 없었다. 혼자 우두커니 기다리다 지하철을 탔다. 늦은 시간이지만 금요일이라 그런지 여전히 사람들이 꽤 있어 앉을자리는 없었다. 자리를 잡고 손잡이를 잡고 섰는데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민지의 카톡이었다.
‘지혜야, 오늘 고마웠어. 같이 이야기해 줘서.’
‘고맙긴. 이야기해 줘서 내가 고맙지.’
‘좋은 소식 있으면 알려주기다!’
‘그럴게. 잘 들어가. 건강 잘 챙기고.’
‘응. 너도~. 또 연락할게.’
글을 보내며 민지는 웃으며 손을 흔드는 이모티콘을 이어 보냈다. 미소가 지어졌다. 민지와의 카톡을 닫고 성준에게 이제 집으로 간다는 카톡을 보냈다.
낳고 싶어도 못 낳는 사람. 안 낳기로 한 사람.
같은 '아이 없음'인데, 전혀 다른 무게.
나는 '선택'을 할 수 있었고 민지는 선택할 수 없었다.
그 차이가 마음에 걸렸다. 마음이 내내 불편했지만,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민지에게 ‘자발적 딩크’가 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할 순 없을 것 같았다.
지하철 역에 내려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갔다. 지하철 역까지 마중을 나와 준 성준의 차를 발견하고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성준이 버튼을 누르자 딸깍하고 차 문이 열렸다.
"왔어?”
“응. 잠도 못 자고~ 고마워.”
"나야 뭐, 집에 있다 나왔잖아. 네가 힘들었겠네."
"응, 금요일이라 지하철이 계속 붐비더라."
민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딩크.
우리의 선택.
그 선택이 '선택할 수 있는 사람'만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아 언니 말이 떠올랐다.
'애 낳고 안 낳고, 그건 너의 고유하고 소중한 권리야.'
권리.
민지에게 그 권리가 있을까. 낳고 싶은데 낳을 수 없는 민지에게.
그 권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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