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김차장의 파란만장 중소기업 이야기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듯, 사람들 모인 곳이 다 그렇듯 사연 없는 곳은 없어서 두 번째 회사 또한 무성한 뒷얘기와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소문들과 표면에 드러난 여러 가지 사건들로 하루하루가 스펙터클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여러 가지 일들도 많았지만 지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사람들과 적당히 잘 지내면서 회사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려고 했다.
두 번째 회사는 정기적으로 국내외 전시회에 참가했고, 지혜의 팀과 옆팀은 일 년에 몇 번씩 있는 전시회를 준비하고 참가하고 돌아와 생기는 새로운 일들을 하느라 많은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지혜가 입사한 두 번째 해에도 정기적으로 나가는 첫 전시회를 앞두고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업무들을 쳐내느라 지혜는 매일 야근을 해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해가 바뀌고 신규로 제작해야 하는 카탈로그 제작이 제대로 진행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옆 팀은 팀원도 많아 많은 업무를 적당히 나눠서 해 나가며 착착 진행이 되고 있었지만 지혜의 팀은 출산 휴가를 앞둔 선배와 지혜 둘이서 고군분투 중이었다. 후임은 사고만 안 쳐도 그저 고마울 뿐이었고 팀장은 일을 하는 듯 안 하는 듯, 실속 없이 입으로만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얘기했다. 지혜와 함께 국내 대형 고객사를 상대로 신규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모든 업무는 지혜에게 맡기고 다른 은밀한 미팅이라도 있는 듯 따로 고객사를 만나러 간다며 외근을 나갈 때가 많았다. 실제로 고객사와 미팅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덕분에 전시회 외 다른 업무들까지 지혜는 화장실 때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이 고스란히 모든 업무릉 혼자 감당해야 했다. 크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일하러 들어온 회사니까.
며칠을 고생하며 70% 정도 카탈로그 시안을 마친 어느 금요일, 팀장은 오후에 외근 나갈 일이 있다며 다음 주 월요일에 다 못한 업무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며 나가 버렸다. 어느 정도의 방향을 정해주고 같이 결정을 해야 하는 팀장이 미꾸라지처럼 이래저래 빼는 것이 기가 막히지만, 그다음 주에 팀장이 시안을 보면 바로 확정할 수 있을 정도로 시안을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몸이 무거운 선배는 쉬라고 하고 지혜는 결국 토요일에 혼자 나와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업무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시회 준비가 되어 어느 정도 되어가는지 보러 나온 대표는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고 있는 지혜를 보고 물었다.
"김대리 혼자 나왔어요? 카탈로그 다 됐어요? U팀장은 거의 다 됐다고 하던데, 가져와봐요."
"네, 대표님"
"아니, 아직 이 부분 이 부분 확정이 안 된 거예요?, U팀장은 어디 있어요? 이제 마무리해서 시안 넘겨야 할 텐데 김대리 혼자 두고 안 나오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화를 버럭버럭 내는 대표 앞에서 지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대표는 U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를 않았다. 다시 전화를 했다. 여전히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대표는 씩씩거리며 지혜에게 나가서 일을 하라고 했다. 10분이나 지났을까, 대표가 지혜를 다시 불렀다.
"U팀장한테 전화가 왔는데, 전화번호가 해외로 뜨던데 주말엔 못 나온다 그러고. 어떻게 된 건지 김대리 몰라요?"
U팀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번호는 852로 시작하는 홍콩의 번호였다. 무박으로 홍콩으로 여행을 가는 관광객들을 위해 친절한 항공사들이 퇴근 시간에 맞춰 홍콩으로 출발하는 비행기 스케줄을 운행하고, 홍콩에서 밤비행기를 타면 인천에 새벽에 도착하는 항공편이 있다는 것을, 1년 가까이 홍콩에 살았던 지혜는 알고 있었다.
'월요일 새벽에 도착해서 꾀죄죄하게 사무실에 오겠네'
지혜는 주말 토요일, 일요일 이틀을 꼬박 일하고 쉬지 못한 채 월요일 출근을 했다. 지혜가 '이쯤이면 도착하겠네' 싶은 시간에 팀장은 역시나 씻지 못한 꺼칠한 모양새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대표의 눈치는 보였는지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는 바로 대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주말을 보내면서 대표는 무슨 다른 생각이라도 하게 된 듯, U부장을 집으로 돌려보내고는 옆 팀의 W부장과 지혜를 대표실로 불렀다. 마치 본인은 이미 왜 불렀는지 다 알고 있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W부장의 맞은편에 앉으며, 지혜는 뭔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다.
"지난주 토요일에 U부장이 홍콩에서 전화하면서 나한테는 지방에 갔다 그러고.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U부장 조사를 좀 해 봐야겠어요. 장기 미수금이 있다고 한 미국 업체 대표랑 내가 어제 통화를 했는데 거기는 대금을 전부 지급했다고 그러거든? 김지혜 대리가 W부장이랑 같이 U부장 메일이랑 컴퓨터 확인 좀 해 봐요."
대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W부장이 말을 이었다.
"제뉘퍼가 우선 U부장 컴퓨터에 있는 아웃룩 메일 좀 전체적으로 봐요. 미국 회사랑 메일 주고받은 거 찾아보고. 거 봐요 대표님. 제가 사람 너무 믿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W부장은 직원들에게 언제나 영어 이름을 불렀다. 지혜의 영어 이름을 굴리고 굴려 발음하며, 지혜가 함께 앉아있는 자리에서 콧소리를 내며 대표에게 이야기하는 W부장의 뒷말이 더 이어질 듯하여 지혜는 얼른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그럼 나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좀 조용히 일만 하고 지내면 좋겠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지혜는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며 대표실을 나왔다.
그 주가 채 다 지나기도 전에 회사는 U부장을 횡령 및 배임죄로 경찰에 고소했다. 가장 큰 죄는 미국 고객사에서 주문한 제품의 대금을 회사 은행 계좌에 문제가 생겼다며 개인 통장으로 송금을 받아 횡령을 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고객사에서 주문하지도 않은 제품을 주문을 받았다며 주문서를 위조하여 실적을 올려 들키지 않고 대표의 환심을 샀다. 고객사에서 받았다는 주문서의 제품들은 거짓 주문이라 미국으로 보내진 못하고 국내 어딘가의 창고에 보관을 하고 있었다. 물론 혼자 한 것 또한 아니었다. 지원팀 막내 여직원이 그 범죄의 과정에 동참하고 있었고, 그 막내 여직원 역시 지난 주말 이후 월요일 감지 못한 머리를 질끈 묶고 피곤한 얼굴로 U부장과 10분 정도 간격을 두고 출근을 했었다. 주말 동안 어디를 다녀온 것인지,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을 뿐 다들 알고 있는 눈치였다.
U부장의 컴퓨터를 뒤지며 지혜가 경악스러웠던 것은 횡령뿐만이 아니었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보이는 바탕화면에는 빈틈없이 빼곡히 음란동영상들이 가득했다. 지혜는 바탕화면에 그대로 보이는 영상 이미지들 사이의 폴더들을 뒤지고 이메일들을 확인해야 했다. 앞에 여직원들이 다 앉아 있는 사무실 가장 뒷자리에서 업무시간에 U부장은 나름대로 매우 바빴던 모양이었다. 속이 메스꺼웠다.
U부장이 횡령한 금액은 2억이 조금 안 되었다. 그 돈으로 주말마다 카지노를 다녔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고 전해 들었다. 20억 도 아니고 2억.. 겨우 그 정도의 금액으로 자신의 인생을 망치길 자초할 정도로 인간이 어리석을 수 있구나..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업무적으로도, 업무와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일로도 회사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