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김차장의 파란만장 중소기업 이야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중반부터 나는 여러 곳의 중소기업을 전전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외국계 회사들로 가고 싶기도 했지만, 매번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다. 중소기업에서 시작한 커리어는 다른 세상으로 옮겨지기가 쉽지 않았고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몇 번의 이직을 하면서 매번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마지막으로 빌런 오브 빌런에 다니는 영광(?)까지 경험 중이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책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평생을 일해 온 아버지들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이해가 되는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대기업을 다니는 그들의 삶이 부럽기도 했다. 그래도 회사를 나오는 그 순간까지는 대기업이라는 이름 아래, 나름 짜여진 시스템 안에서 살아오지 않았을까. 반면 정글보다 더 정글 같은 대한민국 중소기업들, 특히 대기업의 1,2차 공급업체인 제조업 기반의 중견기업들, 회사 자체가 한 달 살이인 영세기업들... 그 안의 치열한 세계들을 중소기업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른다.
회사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을 때쯤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제안받았다. 블라인드와 잡플래닛을 보면서 회사를 알아보니 지금 회사보다는 낫지만 그곳 역시 낮은 평점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기도 했지만, 옮긴다 한들, 지금의 고통에서 잠시 벗어날 뿐 "이상한 회사 경험을 +1 추가하였습니다" 정도밖에 안 될 것임을 알았다. 이상한 회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삶을 살아야 하기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며 나는 하루하루 내 삶을 갉아먹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랬다, 어쩌지 못해 출퇴근을 하고 행복하지도, 즐겁지도, 보람차지도 않은 회사라는 곳에서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매달 월급날만을 기다리며, 나는 나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흘러가는 나의 시간에 그렇게 하루씩 하루씩 미안한 마음을 더해갈 뿐이다.
유난히 추운 작년 12월의 겨울, 연일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밤이었다. 살기 위해 운동을 해야만 하는 나이가 되면서 퇴근 후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던 길에 길 건너편에 손에 목도리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버스 승강장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는 중년 여성을 보았다.
그리고 그냥 보기에도 지쳐 보이는, 그 추운 날 패딩도 아닌 코트를 입고 버스에서 내려 아주머니 쪽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가는 사회 초년생 즈음의 여자분이 있었다. 여자를 보자마자 아주머니의 발걸음은 빨라져 뛰다시피 하더니 여자 앞까지 다가가자 그 앞에서 서서 얼른 목도리를 둘러주고 가방을 받아 들었다. 딸이었나 보다. 추운 날씨가 걱정되어 목도리를 들고 한달음에 달려온 듯한 아주머니는 정작 급히 구겨 신고 나온 듯한 신발 위로 맨살의 발목이 드러나 보였다.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딸의 가방을 빼앗듯 받아 들고 지쳐 보이는 딸을 부축이라도 하듯 팔짱을 끼고 그렇게 둘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저 딸이 그렇듯, 나 또한 엄마의 귀한 자식이었다.
이리 귀한 자식이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지 안다면 우리 엄마 마음은 찢어지고 부서지겠구나.. 나는 뒷모습만으로도 사랑이 느껴지는 그 엄마와 딸을 보면서 집에 가는 것도 잊은 채 엄마가 보고 싶어 져 한참을 서서 눈물을 닦아냈다.
회사 생활이 힘든 것은 업무의 강도나 어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언제나 사람이었다. 집요하게 괴롭히는 현재 직장의 그 상사도 자식이 있다고 했다. 자식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전 직원 앞에서도 다 큰 어른이 된 자식들의 애칭을 불렀다. 그에게도 소중한 자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도 자신의 자식들이 회사에서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고생하면마음이 아프겠지. 나는 기도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당신이 나를 괴롭히는 딱 이만큼만 당신의 자식들이 똑같이 당하기를 바랍니다. 그래. 정말 딱 당신이 나한테 하는 이만큼만..’
이 이야기를 들으면 그 상사의 마음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만큼 당하라는 그 이야기에 그는 화가 날까? 자기 자식은 특별하니까. 그럴 대우를 받을 아이가 아니니까.
“우리 애는 이런 회사에 다닐 일이 없어!"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답한다면, 당신이 말하는 이런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상상 속에서 나는 따지고 있었다. 우리 애는 착하고 성실하고 똑똑하고 등등.. 여타의 이유로 회사에서 그런 대접을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상한 상사나 동료를 만나는 것은 나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다. 그건 나의 어떠함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운이다. 그 부서에 그 회사에 그 이상한 누군가가 있느냐 없느냐는 나의 어떠함과 상관이 없다. 지랄 총량의 법칙. 어느 회사나 이상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이 없다면 내가 바로 그 이상한 사람이라고, 그래서 언제나 이상한 사람은 있는 거라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럴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니다. 나 또한 내 부모의 귀한 자식이고 그가 괴롭히는 여러 직원들 모두가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자 가족이다. 어떤 일을 잘못해서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의 마음에 안 들어서, 그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아서, 그날 그 사람의 기분이 안 좋아서, 그 사람이 내 월급을 주니까, 별다른 이유도 없이 미움과 괴롭힘을 당하는 당사자들은 억울하고 분노하고 힘들어하며 순간순간 죽어간다.
이 일을 내 자식이 겪는다면 어떨까..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이유도 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갈굼’을 당하고 나서, 익숙한 듯 체념하는 다른 직원들에게 물었다.
"OO 씨 자식이 너랑 똑같은 일을 당한다면 어떨 것 같니?”
“가만 안 두죠”
“OO 씨 부모님도 똑같아. OO 씨가 이렇게 괴롭힘 당하는 거 알면 마음이 찢어지실 거야”
맞다, 저런 이야기 말고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한 번이라도 그대들이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보고,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지 말고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에 또 다른 기회는 없는지 열심히 찾아보라고. 그 말밖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세상 어디든 합리적이고 아름답기만 한 곳은 찾기 힘들 것이다. 대기업들도 아마 힘들긴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경쟁과 정치와 다툼들과 온갖 인간의 모습들이, 대기업이라고, 잘 나가는 외국계 기업이라고 없겠는가.
다만, 대부분의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이라는 곳이 조금 더 열악하고 조금 더 비인간적이고 더 불합리한 부분이 있었으며, 그렇기에 요즘 좋소기업이라고도 불리는 그곳의 생활들을 경험하고 들은 이야기들과 그곳을 살아낸 이야기들을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남기고 싶었다.
아마 내가 듣고 겪은 곳들보다 더 심한 곳도 있을 거란 걸 안다. 생각날 때마다 예전 회사들을 다니던 시절을 회상하며 글들을 끄적거릴 때면 나는 우울해지고 힘들어지기도 했다. 여전히 현재의 나에게 여전히 마음의 울렁임을 주는 과거의 상처들은 아마도 미래의 나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터였다. 그렇기에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는, 그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자 미래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으면서, 나는 글을 쓰면서 여전히 남아 있는 상처들을 끄집어내 쓰레기통에 넣어버릴 참이다.
어른은, 그냥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하고, 좋은 어른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념 없고 무례한 어리고 젊은 친구들도 물론 있겠지만, 어느 나이 때나 그런 사람들은 있지 않은가. 사회생활을 처음 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20대, 30, 40대의 젊은이들이 내내 그 빛을 잃지 않도록, 그 반짝임을 간직한 채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주고, 그들이 다시 어른이 되면 또 그 후배들의 반짝임을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러면 조금은, 아주 조금이라도 세상은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 누군가는 조금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나이를 먹어가며, 힘든 회사 생활을 견뎌내며, 내가 생각한 건 그런 거였다.
시시때때로 라떼를 시전하며, 나 때는 더 힘들었는데 요즘 젊은것들은 인내심이 없다는 둥, 개념이 없다는 둥 잔소리를 늘어놓기 전에, 요즘 젊은것들 또한 누군가의 자식이고, 나의 자식 또한 또 다른 곳에서 그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줄 순 없을까? 그들은 그 젊은것들에게 무엇을 해 줬을까? 자신들이 힘들었으니 지금의 '젊은것'들도 힘들어야 한다고? 자신들이 어렵게 배우고 얻은 지혜들을 조금만 알려준다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은 조금은 쉽게 일을 배우고 세상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 시간을 아껴서 더 생산적인 무언가를 할 수 있지는 않을까?
이 글들에 담긴 나의 이야기는 많은 경험들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배우고,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지를 담은 기록이자 성장일기이다. 나라는 사람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좋은 어른이 되는 것, 그리고 죽을 때까지 생각하고 성장하며 살아가는 것. 기억력이 나쁜 사람인지라 내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의 장치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부모님의 귀한 자식이라는 것을, 소중한 가족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본인이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나를 포함해 한 명이라도 더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과 같은 삶에 대해 생각해 보고 곱씹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힘든 현실에 찌들어 아무런 변화도 성장도 없이 다 포기한 듯 그렇게 시간을 보내버리려다가 나의 글을 읽고 아주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면 나는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하겠다.
나는 소설의 형태로 이야기를 썼다. 나의 경험과 주변의 또 다른 중소기업 경험자들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각색한 픽션이다. 삶은 때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지만, 그저 재미있게 읽고, 공감하며 즐거워하고 안타까워하고 때론 속상해하고 같이 눈물도 흘리다 어느 한 지점에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어 더 기뻐하고 더 즐거워하며 더 행복해지겠다고 마음먹어 보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해 본다.
왜냐하면, 내 어머니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가, 세상 사람들이 예쁘다 하고 어여삐 다루며 사랑받는 꽃과 같은, 아니 그보다 더 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꽃처럼 살아라, 나는 네가 꽃처럼 살면 좋겠어.
사람들이 다들 예뻐하고 사랑하는,
그런 꽃처럼 살아
- 엄마가, 하우주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