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의 중소기업, 그 안에서의 이직

여자 김차장의 파란만장 중소기업 이야기

by 하우주

지혜는 지난 14년간 다섯 곳의 회사를 다녔다. 지금 다니는 곳이 여섯 번째 회사이고, 26살에 대학 졸업 후 4년간 다닌 첫 회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여러 중소기업들을 전전했다. 길게는 5년, 가장 짧게는 4개월을 다닌 곳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지혜도 새 회사로 이직을 할 때마다

'여긴 오래 다녀야지. 정말 오래 다닐 거야'

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들로 그녀의 결심은 매번 여지없이 무너졌다.​


지혜가 이직을 결정하고 통보할 때마다 엄마는,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네 오빠가 그런 것처럼, 주변에 다른 집 자식들이 그런 것처럼 한 회사에 10년 이상씩 20년씩 꾸준히 다닐 순 없냐, 어딜 가나 힘든 건 다 비슷한 거 아니냐. 한 회사에 오래 다니면 나중에 퇴직금이라도 넉넉히 받을 텐데 이직하면서 퇴직금 쓰면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할 거냐”

라는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다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전화기 너머로 한숨을 쉬고는

"니가 알아서 해"

하고 전화를 끊곤 했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하고 이직을 하는 딸 때문에 꽤나 속을 썩었던지, 지혜의 엄마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첫 회사에 취직한 오빠네 첫째가 명절에 놀러 와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말하자,

"버텨, 죽어도 그 회사에서 죽는다는 생각으로 있다 보면 다 지나간다. 고모처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 안 돼."

라고 말했다. 회사 얘기가 나올 때마다

"엄마, 이직하는 것도 능력 있으니까 하는 거야"

라며 매번 올라오는 짜증을 누르고 누르며 지혜는 대화를 끝내곤 했다. 때론,

"회사가 괜찮으면 왜 이직을 해? 계속 다니지! 회사가 이상한데 그럼 계속 다녀야 해? 이직하면서 연봉도 올려서 가잖아!"

라고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부모님은 언제나 지혜의 결정을 존중해 주고 뭘 해라, 하지 말라는 간섭을 안 하는 편이었지만, 엄마 생각엔 회사 생활 다 비슷비슷할 텐데, 당신의 딸은 다른 집 자식들보다 유별나서 회사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조금 힘들다고 회사를 옮기는 건 아닌지 걱정되고 불안한 듯했다. 예전처럼 한 회사에서 신입으로 입사했다가 정년퇴직을 하는 평생직장도 찾기 힘들고, 그렇게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을 찾기는 더욱 어려운 시대라고, 능력껏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도 하면서 자기한테 맞는 일과 회사를 찾는 세상이라고 지혜가 열변을 토해도, 평생을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하며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를 이해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다 이해할 순 없어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받아들이며 사는 건 가족이기에 가능한 삶의 모습이기도 했다.




이직에 대해 지혜는 할 말도 많고 억울한 점도 많았다. 다른 누구보다도 지혜 본인이 한 회사에 정착해서 오래 다니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한 곳에서 오래 다니다 직장생활의 꽃이라는 임원까지 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엄마 말처럼 남들은 적당히 한 회사에서 너무 힘들지 않게 회사 생활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남들과 비교했을 때 지혜는 본인의 퇴사 사유들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지방에 있는 세 번째 회사로 옮기기 전, 지혜는 오랜만에 대학 동기와 선후배들을 연말 송년회 자리에서 만났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지방으로 스카웃 제안을 받아 내려가겠다는 그녀에게 직장 생활을 조금 더 오래 한 선배들과 동기들은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지방에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어렵지 않겠냐, 경력에 문제가 없겠냐,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내려가서 외롭지 않겠냐.. 그렇게 어떻게든 조금 조건이 안 좋아도 계속 서울에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던 선배들과 동기들은 지혜가 앞에 두 회사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자 더 이상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모임에 꼭 한 명은 있는, 여학생들과 얘기하길 좋아하던 수다스러운 남자 선배 하나가 툭 던진 한 마디에 다들 웃음을 터뜨리며 지혜의 이직에 대한 대화는 끝이 났다.

"으이그~ 파란만장한 년!".




이후로도 지혜의 직장 생활은 훗날 직장 동료의 말처럼 '쉽지 않았다'. 유난히 지혜에게 어려웠던 걸까. '나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이직이 결정되긴 했지만 불쾌했던 지난 면접을 보고 오면서 지혜는 지난 직장 생활들을 반추했었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고 나서 느낀 불편함과 불쾌함은 무슨 이유였을까? 정말 행복은 뭘까, 그 질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듯 보이지 않았던 걸까, 잦은 이직이 맘에 안 들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자수성가한 회사 대표가 보기엔 조금만 힘들면 옮기는 것은 충분히 노오력하지 않았다고 하는 전형적인 꼰대 마인드일까. 면접 후 맘에 들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지혜는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몇 명의 자수성가한 대표들을 겪은 후 그녀는 어린 시절 생각했듯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그들을 마냥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물론 그 결과물과 성과는 대단한 것이었지만, 언제나 그런 화려한 성공 뒤에는 월급 받고 부품처럼 자신의 인생을 바쳐 일해온 많은 직원들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모든 직원들이 다 열심히 일하는 건 아니고 모두가 정직하고 성실한 것은 아니라는 걸 지혜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는 대표 혼자 그리고 몇 명의 임원들로만 굴러가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닐 테지만 화려한 성공 후에는 본인의 성공에 심취한 나머지 이 대단한 걸 이뤄낸 스스로가 신이라도 되는 양 자만하고 교만한 대표들도 있었다. 함께 고생하는 직원들의 고생은 월급을 받으니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회사가 월급을 주는 건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직원들이 일을 해서 사업을 잘 만들어나가는 것 또한 고마운 일이라고 지혜는 생각했다. 사업이 성공했다고 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본인이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의 인성까지 성공한 건 아니었다. 지혜가 그간 보아오며 깨달은 것은 그 대표들의 주변에 정말 좋은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직언을 하는 사람들도,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없었고 그저 대표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사람들만 남아 있었다. 아니다, 지혜가 지금까지 보아온, 그 자리까지 올라간 대표들 중에는 그런 쓴소리를 용납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만난 대표들 중 정말 '어른'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마 그런 대표가 있었다면 아직 그 회사를 다니고 있을 터였다. 가뭄에 콩 나듯이 회사 내에 좋은 상사들이 있긴 했지만, 이상하게 그런 괜찮은 어른들은 금세 회사를 떠났다. 면접을 봤던 대표의 날카롭고 예민해 보이는 표정과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미간의 주름, 마른 체구와 의자를 제껴서 비스듬히 앉아 상대를 내려보는 모습은 그녀가 그동안 보아온 대표들의 전형적인 모습들 중 하나였다. 지혜의 경험상 시스템적으로 잘 갖춰져서 돌아가는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은 오너 또는 회사를 맡은 전문경영인 대표의 목표와 방향,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회사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복지, 회사 분위기, 하물며 회사 식당 밥까지도 모든 것이 오너나 대표에 의해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중소기업은 다닐 만한 회사가 되기도 하고 퇴사한 이후에 그 동네조차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기도 했다.


다닐 만한 회사, 사실 다닐 만한 회사의 기준은 본인이 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단 하나의 이유만 있으면 된다고도 했다. 연봉이 높아서(물론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흔치 않지만..), 월급은 안 밀리고 꼬박꼬박 잘 나와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집이 가까워서.. 젊은 사람들 중 일욕심이 있는 사람들은 일을 많이 배울 수 있어서, 회사 성장성이 있어서, 워라밸이 보장돼서, 식당밥이 맛있어서 등등..

그런데 지혜는 회사에 남아야 하는 그 하나의 이유를 찾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만둬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지혜가 이직한 이유들을 돌아봐도 '무슨 그런 일들이 다 있냐' 싶은, 일반적으로 주변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은 일들이 많았다. 좋소기업이라고도 불리는 중소기업.. 지혜는 나만 이런가 싶은 생각이 들어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 왜 중소기업을 가야 하지 말아야 하는지, 중소기업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누가 누가 더 이상한 일을 겪었는지가 줄줄이 나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을까, 지혜는 중소벤처기업부에 들어가 통계를 보았다. 2020년 기준 대한민국 기업체 수 중 중소기업의 비율은 99.9%이고 대기업은 0.1% 뿐. 전체 종사자 중에 81.3%가 중소기업을 다니고 18.7%만이 대기업을 다니고 있다. 무려 1,754만여 명이 중소기업에 다닌다. 그중에는 물론 괜찮은 회사들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지혜는 6번째 회사인 지금 회사까지도 다닐만한 괜찮을 회사를 듣지도, 보지도, 찾지도 못했다.


출처 : 중소벤처기업부 https://www.mss.go.kr/site/smba/foffice/ex/statDB/MainSubStat.do


출처 : 중소벤처기업부 https://www.mss.go.kr/site/smba/foffice/ex/statDB/MainSubStat.do


대기업으로 분류가 안 되고 중소기업에 포함되어 있을 외국계 한국지사들의 부러운 복지와 높은 연봉들에 대한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대학 졸업 후 국내 대기업을 갔다가 1년 만에 외국계 회사들로만 이직을 하며 직장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대학 동기의 SNS가 가끔 눈에 띄었다. 어린 시절 주재원 부모님을 따라 외국에서 오래 지냈다는 동기는 한국회사의 문화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했다. 동기는 복지가 좋기로 소문난 외국계 회사들로만 서너 번 이직을 했고, SNS로 보이는 동기의 모습은 늘 화려했다. 가깝게 지내는 이전 직장 동료의 남편이 다닌다는 외국계 회사의 복지를 듣고 있노라면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남편과 본인뿐 아니라 양가 부모님까지 일 년에 한 번씩 대형 의료 센터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고 자기 개발비를 지원해 주고, 영어 공부를 하라고 비싼 태블릿을 매년 주고, 성과급을 주고. 지혜가 다녔던 회사들은 요식행위처럼 회사로 병원차가 와서 엑스레이를 찍고 소변검사와 피검사를 하는 게 전부였다. 물론 그조차도 안 하는 곳들도 있었다. 지혜의 경험상 모든 곳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은 참 이상한 곳들이 많고 다니기 힘든 곳들이고 특히 여자들이 살아남기는 더더욱 힘든 곳들이었다. 어딜 가나 비슷비슷해..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그래서 지혜는 본인의 이직에 대해 당당했고 그러나 서글펐고 또 동시에 ‘잦은 이직’이라는 문구로 인해 알 수 없는 작아짐을 매번 느끼곤 했다. 괜찮은 회사들, 다닐만한 회사들이 정말 이렇게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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