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그리고 ”갑“님의 합격 통보

여자 김차장의 파란만장 중소기업 이야기

by 하우주

재작년 가을이 끝날 무렵, 지혜는 이직을 제안받고 면접을 보고 지금 회사에 입사를 결정했다. 구매팀 팀장으로 있는 회사 대표 아들의 갑질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 이직을 고민하며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중 이전에 같이 일했던 선배는 본인한테 이직 제안이 왔던 회사에서 팀장급 경력사원을 채용한다며 이직 생각이 있냐고 물어왔다. 지혜는 흔쾌히 이직 생각이 있다고 대답했고 선배가 알려준 이메일 주소로 이력서를 보낸 지 2주 정도가 지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본인의 경력 사항과 이직 후의 계획과 포부를 ppt로 준비해 오라는 인사팀장의 연락을 받고 지혜는 며칠을 고심하여 ppt를 만들었다. 회사에 대해 조사하고, 회사에서 하고 있는 제품과 관련 시장에 대해 자료를 뒤지고 분석하고 업무 방향에 대한 기획, 전략 자료를 만들었다. 조사를 할수록 이제 막 시장이 크고 있는 제품이라 할 일이 많을 것 같아 신이 나고 설레었다. 아무것도 없는 제로에서 사업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한 프로젝트의 과정은 언제나 고되기도 했지만 성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어느 순간, 지혜는 등뒤가 쭈뼛, 전율이 몸을 타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그 짜릿함이 좋아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려고 했고, 중소기업의 특성상 업무가 정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아 이것저것 다양한 업무들을 해 왔기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는 생각도 했었다. 지혜에게 있어 일은 그저 단순히 돈벌이, 밥벌이가 아니었고 친구들이 워커홀릭이라 할 만큼 일하는 것을 좋아했고 매번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회사를 다니고 일을 하고 성과를 내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지혜는 본인의 가치도 올라가는 것 같고 쓸모 있는 사람인 것 같아 자존감도 높아지는 듯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더 좋은 기회들이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지혜는 성실하게, 열심히 주어진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해 왔다. 그 사실은 지혜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또 하나의 기둥이었다.




회사의 면접 날, 회사 대표와의 면접을 보고 지혜는 딱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동안의 경력에 대해 발표하고 회사에서 하고 있는 제품의 시장 트렌드와 전망, 그리고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긴장되더라도 티 나지 않게 자신감 있게, 여유로워 보이게 발표를 했다. 회사의 오너이기도 한 대표는 한 손에 볼펜을 들고 날카로운 표정으로 비스듬히 의자에 기댄 채 지혜의 발표가 끝나자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기분 탓이었을까, 대표의 모든 질문의 저변에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없다는 것을 느꼈고, 그런 대표의 태도와 말투가 맘에 들지 않았다. 자수성가한 중소기업의 대표들이 어떤지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지혜였기에, 대표의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가진 오만함, 본인들만 옳다는 믿음, 그래서 세상 많은 사람들이 발아래로 보이는 것처럼 행동하는 안하무인의 태도. 한참을 질문하던 오너는 손에 들고 있던 볼펜을 내려놓더니 뜬금없이 물었다. 짜증이 가득 섞인 말투로. 나중에 알았지만 짜증 반, 분노 반의 대표의 목소리는 회사에 있을 때 평소의 말투였다. 대표가 보기엔 월급받는 직원들이 다들 제대로 일을 못해 언제나 화가 나 있는 듯 했다.


“김지혜 씨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요?”

“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요”

“…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인 것 같습니다.”

지혜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표는 다시 질문인지 비꼬는 것인지 모를 말을 했다.

"그런 거 생각해 본 적도 없죠?"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말투, 지혜에 대한 판단이 그 질문에전부 녹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혜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두 면접관은 아무 말도 없었다. 질문도 하지 않았다. 대표는 다시 침묵을 깨고 질문했다.

“본인의 장점이 뭐예요?”

“... 어떤 업무이건 빨리 배우고, 성실하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지혜는 무겁게 입을 떼 대답했다. 또다시 침묵. 지혜는 그 자리가 점점 더 불편해졌다.

‘대답도 다 안 들을 거면 뭐 하러 질문을 하는 거야?’

아마도 지혜의 표정은 이미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을 터였다. 감정이 얼굴 표정에 쉽게 드러나는 지혜에게 코로나 시기 마스크는 큰 방패였다. 다시 침묵을 깨고 오너가 말했다.

“두 사람은 질문 없어요? 됐습니다. 나가도 돼요”

한 시간이 넘는 면접이 끝나고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면접자들이 물었다.

"압박면접 스타일인가요?"

"그런 듯하네요"

짧게 대답을 하고 지혜는 가방을 챙겨 면접자들이 있는 방을 나가며 중얼거렸다.

"압박면접은 무슨.. 그냥 무례한 거지.'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인사를 건네며 면접 비용을 송금해 준다는 인사팀장에게 통장 계좌번호를 적어주고 지혜는 굳은 얼굴로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다. 대표의 태도로 보아 떨어진 것 같았다. 그것보다 사무실을 나선 후에도 그 숨 막히고 답답한 공기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 같아 기분이 찜찜했다. 대기업들의 면접 문화는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건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대표들 마음대로, 기분대로였다. 정작 행복이 뭐냐고 질문했던 대표는, 회사에 와서 보니 단 한 순간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날의 느낌을 믿었어야 했다. 아니, 선택지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원서를 넣었던 대기업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와 면접을 보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떨어졌다는 연락이라도 받으면 좋을 텐데 열흘이 넘도록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다시 같이 일해 볼 생각이 없냐고 한 번 밥이라도 먹으러 오라는 얘기에 놀러 가는 마음으로 오후 연차를 내고 가볍게 방문했던 예전 직장에서는 지혜가 제시한 연봉을 맞춰줄 수가 없다고 했다. 연봉을 맞춰주긴 어려워도 회사 임원들을 포함해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편하게 일할 수 있게 해 주겠노라는 제안도 솔깃하긴 했지만 더 이상 연봉을 낮출 수는 없었다. 대다수 중소기업의 연봉은, 더 이상 낮추려야 낮출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다. 벤더인 중소기업들에게 분기별로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대기업은 해마다 최대실적의 뉴스를 내보냈지만, 역대급 매출을 기록했다는 중소기업은 실상은 영업이익이 얼마 안 되어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나눠줄 형편들이 못 되는 곳이 많았다. 대기업을 다니는 김부장은 서울 자가가 가능했지만, 중소기업을 다니는 김부장은 경기도 자가만 가능한 것이 현실이었다. 대기업을 다니는 김차장은 해마다 성과급으로 목돈을 만질 수 있지만, 중소기업을 다니는 김차장은 성과급은 고사하고 연봉 동결 혹은 물가 상승률에도 한참 못 미치는 연봉 인상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여성이라면, 그 차이는 더욱 컸다. 지혜는 이직하면서 연봉을 올려갔고 다녔던 회사들에서 연봉이 올라가는 수준은 동결이거나 정말 많아야 2-300 수준이었다. 동료들 중에는 월 50만 원이 아니라 연 50만 원이 인상되는 경우도 있었다.


출처: 통계청 2021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보수) 결과


면접을 본 후 채용하겠다고 할 것 같지 않아 그냥 지금 직장에 머물러야 하나라고 생각하며, 지혜는 씁쓸한 마음으로 차를 타고 시동을 켰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남자친구의 카톡이 와 있다.

"면접 잘 봤어?"

20분 전에 보낸 카톡이었다. 그 시간쯤이면 끝났을 것이라 생각하고 보낸 듯했다.

"아니"

짧고 간단하게 지혜는 답장을 보냈다.

"끝났어?"

다시 답장이 왔다.

"응"

전화가 온다.

"어~"

"면접 잘 못 봤어?"

"아니, 음.. 면접은 잘 본 거 같은데.. 기분이 별로야"

"기분이 별로야 왜? 무슨 일 있었어?"

"음.. 오너가 직접 면접 보던데, 경력 발표할 때는 그래서 너가 뭘 할 수 있냐는 식으로 질문하고 나중에는 뜬금없이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어보더라. 그러더니 대답도 안 끝났는데 그런 거 생각도 안 해봤죠 하면서 비꼬더라구. 그래도 결혼계획 이런 거 안 물어봐서 다행인 건가.. 참.. 짜증 났어"

"행복이 뭐냐고 물어? 그래서 뭐라고 했어?"

"뭐라고 답할지 잘 생각도 안 나더라.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이라 그랬어 ㅎㅎ"

"잘했네. 수고했어"

"그러게, 나 수고한 거 같다. 저녁에 맛있는 거 먹자 밖에서"

"그래, 이따가 전화할게"




그날 저녁 지혜는 남자친구의 퇴근길에 만나 지혜의 집 근처 자주 가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단골인 그녀와 남자친구를 잘 아시는 가게 사장님은 반갑게 맞으며 자리를 안내하고 지혜는 늘 먹던 메뉴를 시키고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 지혜를 보며, 지혜의 기분이 더 이상 다운되지는 않는지 슬쩍슬쩍 눈치를 살피며 고기를 잘 굽지 못하는 남자친구는 직접 집게와 가위를 들고 어설프게 고기를 자르고 익지 않은 고기를 자꾸 이리저리 뒤집었다. 고기 익는 소리만 들리던 분위기를 깬 건 "까똑"하고 울리는 알림 소리였다. 지혜는 카톡을 확인했다. 회사를 소개해 준 선배였다.

'면접 잘 봤다며? 좋은 사람 보내줘서 고맙다고 사장님이 카톡 보내셨더라.'

무슨 소리지.. 지혜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잘 봤대요? 떨어진 줄 알았는데요, 연락도 없고요'

'사장님한테 연락 왔는데, 대표님이 아주 맘에 들어하셨다는데?'

'그래요? 전 면접 때 압박면접하고 대답만 하면 뭐라고 해서 떨어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분 스타일이 그런가 보다 ㅋㅋ 맘에 들어했대. 팀장으로 바로 채용하자 그랬다던데, 연락 못 받았어?'

'와.. 진짜요? 완전 의외네요. 연락도 받은 거 없어요.'

'내일 연락하려나보다, 좀 기다려봐'

'네, 감사해요 선배. 내일 연락받으면 카톡 드릴게요, 채용 확정되면 밥 살게요!'

'그래라^^'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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