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라 다행이야
아주 오랜만에 아지를 데리고 공원 놀이터에 갔다. 전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공원 산책도 하고 놀이터에 풀어놓고 놀게 했는데 코로나 이후부터 놀이터가 폐쇄된 기간도 길고, 나도 직장을 옮기면서 바빠지니 점점 집 주변 산책만 하게 되었다. 이렇게 적으니 짧은 기간 같지만 2020년 3월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발표되었으니 거의 5년이 다 되어간다. 그 긴 시간 동안 띄엄띄엄, 아주 가끔 아지와 공원에 가 산책만 하곤 왔다.
어느 여름 아지와 냥이 둘 다 데리고 고향으로 여름휴가를 가려다가, 10분 내내 냥이가 악을 쓰며 울기에 결국 차를 돌려 냥이를 두고 아지만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고양이들은 혼자 잘 있는다고 들어서 처음으로 혼자 두고 갔다가, 혹시나 싶어 친구에게 집에 가 봐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친구가 보내온 동영상에는, 마치 혼자 있어 무서웠다고 하소연이라도 하듯 친구를 보고 큰 소리로 울며 반기는 녀석의 모습이 있었다. 짠하고 미안한 마음에 울컥 눈물이 나 일정을 앞당겨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그때 알았다. 고양이들이 혼자 있을 수는 있지만 외로움을 타지 않는 것은 아니란 걸.
그렇게 나는 냥이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고, 가급적 혼자 있는 시간을 줄여주고 싶어 냥이를 두고 아지와 어딘가로 멀리 가지 않았다. 회사에 가 있을 동안은 그래도 둘이 있으니 다행이었다. 홈캠을 보고 있으면 멀찍이 떨어져 각자의 공간에서 자거나 창문으로 밖을 보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때때로 아지가 누워있으면 냥이가 달려와 아지의 얼굴과 다리 등을 그루밍해 주기도 하였다. 녀석들은, 친한 듯 친하지 않은 듯 서로의 공간들을 지켜주며 집사가 없는 시간 동안 서로에게 기대지 않은 채 서로를 의지했다.
이런저런 핑계들로 아지와의 공원 놀이터행이 오랜만이었다. 대형견 놀이터에는 이미 허스키 두 마리가 뛰어놀고 있었다. 그동안 아지와 산책을 하면서 나와 아지가 심하게 물려 나는 종아리 앞뒤를 10 바늘 넘게 꿰매기도 했고, 리드줄을 안 한 소형견들에게 공격을 당한 적이 여러 번이라, 아지는 집 주변 산책을 할 때 다가오는 다른 강아지들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아지의 순둥한 얼굴만 보고 무작정 만지거나 자신의 반려견을 인사시키겠다는 사람들도 있어 언제나 조심하는 편이었다. 놀이터에 들어가면서도 나와 아지는 긴장했다.
강아지들의 인사와 탐색이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하여 아지의 리드줄을 풀어주었다. 시원하게 놀이터를 달리는 녀석, 곧 다른 강아지들과 엉켜 놀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레슬링도 하고 서로의 이빨도 부딪히며 대형견답게 거칠게 놀았다. 그 사이에도 나는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아지 주변을 맴돌았다. 전전긍긍하며 아지 옆을 떠나지 못하며 잔소리를 하는 나에게 허스키 집사님이 이야기했다.
"애들 그냥 노는 거 같아요, 잘 노는데요, 그냥 두셔도 될 것 같아요"
정작 아지는 긴장이 풀리고 난 후 다른 강아지 친구들과 잘 노는데..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는 건 나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중요한 건, 그 놀이터에 있는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에 사로잡혀 걱정을 하고, 또 무슨 일이 있을까 봐 잘 노는 아지를 쫓아다니며 간섭을 하며,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며 나는 아지의 '지금, 여기'를 방해 중이었다.
잘 놀고 돌아오며 여러 생각들이 들었다.
1. 삶의 면면에서 가벼워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있는 장소에 따라, 나의 역할에 따라, 나의 어떠함에 따라 내려놓은 부분과 내려놓지 못한 부분들이 있음을 인지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저 받아들이는 것 또한 중요할 듯하다. 왜 이 부분에서 가벼워지지 못하지 라며 스스로를 다그치지 말 것, 가벼워진다는 그것 자체에 집착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2. '나'의 '지금, 여기'는 가볍게 살아가기로 하면서 타인의, 혹은 다른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가벼운 삶을 방해하고 있진 않은지. 그저 즐거운 아지와 냥이의 시간들을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아이들을 귀찮게 해 온 건 아닌지, 한여름 땡볕에 아스팔트 위를 지나가는 지렁이들을 흙으로 옮겨준 것이 혹시 애써 가던 길에서 더 멀게 만든 건 아닌지, 나의 가벼움이 타인에게는 부담이 된 적은 없을지. 내가 생각하는 나도 가볍고 너도 가벼운 삶이, 순전히 나의 기준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지는 오랜만에 열심히 놀아 피곤했는지 차에 올라타자마자 순식간에 잠들어 버렸다. 가볍지만 사려 깊게, 배려하되 너무 진지하여 부담스럽지 않게, 그렇게 살아야겠다 마음먹는다. 늘 집사를 깨닫게 해 주는 귀한 녀석들, 집사라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