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접어들면서 쉬는 날 아침이면 아지를 데리고 뒷산에 올라간다. 여름 내내 무더위와 싸우고 추석엔 땀띠까지 났던 아지도, 날이 시원해지자 '산에 가자'라고 말하면 털이 쪄서 잔뜩 부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산으로 향한다.
집에서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 전원주택 단지가 있다. 집에서 오며 가며 산길 옆에 조그마한 텃밭을 일궈놓으시는 동네 어르신 한 분이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청소해 놓으셨다. 나무가 너무 우거지고, 벌레가 많은 여름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큰길이 아닌데도 봄, 가을, 겨울마다 떨어진 낙엽과 눈을 쓸어놓으신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날이 있어 인사를 하면 아지에게 인사를 하시면서
"운동 가는구나~ 너 다니라고 여기 쓸어놨어~"
하신다.
그렇게 깨끗이 청소해 놓으신 길을 지나 올라가면 끝에 쉼터가 있다. 이 쉼터와 주변 등산로도 누군가 빗자루로 다 쓸어놓으신다. 이전에 어느 아저씨 한 분이 운동하듯 쉼터와 길을 쓸어놓는다는 이야기를 다른 등산객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한 산길은 낙엽들이 덮이기 시작했는데, 쉼터와 그 주변의 등산로는 굴러다니는 낙엽이 몇 개 없을 정도로 항상 깨끗하다. 깨끗한 벤치에 앉아 아지에게 까까도 주고, 나도 한숨 돌리기도 한다. 별 일 아니라며, 운동삼아 하신다는 몇몇 분들의 수고 덕분에 안전하게 뒷산에 올라, 봄이면 가장 먼저 진달래가 피는 것을 보고, 가을이면 귀여운 도토리들과 밤들을 구경하고, 겨울에는 길 옆에 녹지 않은 설경들을 구경한다.
요즘 시간 날 때마다 듣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유튜브에서 법문 중에 ‘꽃 한 송이가 피는 것도 온 우주가 허락해야 가능하다 ‘라는 이야기를 하셨었다.
모든 일들이 인연이 되어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먹는 밥 한 그릇도 어쩌면 지구의 60억 인구의 아주 조금씩의 도움이 모아져 올라온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기에 나의 삶 또한 나의 어떠함으로만 살아지는 일이 아니고, 세상살이 감사하지 않은 일들이 없다고 하셨다.
맑고 시원한 10월의 공기를 느끼며 맨발로 다녀도 될 만큼 고운 흙길을 아지와 지나간다. 산으로 올라가 깔끔하게 정돈된 쉼터 벤치에 잠시 앉아 파랗게 높은 하늘과 시시각각 바뀌는 구름들을 구경한다. 여전히 폴짝폴짝 가볍게 걷는 아지를 보며 흐뭇해하다가 다시 일어나 낙엽 하나 없이 깨끗한 등산길을 다시 걷는다. 날이 더 추워져 온 산이 낙엽으로 가득하더라도 이 길은 미끄러질 걱정이 없다. 참 감사한 일이다.
온 우주가 허락하여 꽃 한 송이가 피듯이 우리도 알지 못하는 모든 이들의 도움으로 순간을 살아가고 씨실과 날실처럼 엮인 인연들이 이어져 오늘이 완성된다. 지금 이 순간 또한 그러함을, 이미 온전하고 완전함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렇게 조금씩 혼자의 힘이 아닌 주변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또 배우며, 그런 이유로 오늘도 역시 날마다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