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는 월요일 아침이었다. 5시 정각, 알람이 울렸다. 매일 다르긴 하지만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5시 10분, 다시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끄고 노란 조명등을 켠 후 이불이 너무 젖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집사의 몸에 닿는 위치의 이불 위에서 자고 있는 냥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주고는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아직 잠이 덜 깬 녀석이 답답하지 않게 둥그렇게 이불로 굴을 만들어 주고 거실로 나갔다. 아지도 여전히 자는 중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자 실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얼마 전 초음파 검사를 하느라 배털을 다 밀어 분홍분홍한 뱃살을 만져주자 한쪽 발을 들어 올렸다. 20kg이 나가는 덩치 큰 귀여운 녀석.
불을 켜지 않은 채 주방으로 가 전기포트의 콘센트를 꽂고 물을 끓이고, 잘 세척하여 갈은 후 다이소 얼음틀에 넣어 둔 레몬을 냉동실에서 꺼냈다. 꽝꽝 얼은 레몬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힘껏 누르자 레몬이 툭하고 컵 속으로 떨어진다. 그 사이 물이 다 끓어 삑삑 소리를 낸다. 컵에 뜨거운 물을 가득 부어 컵을 화장대에 올려두고 씻고 나온다. 얼었던 레몬이 다 풀어져 있었다. 머리를 말리고 준비를 하며 레몬물 한 컵을 다 마셨다. 혈당 조절도 되고 내장지방도 빠지고.... 여러 가지 이유들로 레몬물이 유행이라길래 따라서 먹어보는 중이다. 스트레스를 핑계로 빵이며 과자며 탄수화물과 당을 3년간 달고 산 결과는 뻔했다. 몸에 좋다는 것 하나라도 먹으며 지금보다 더 나빠지질 않길 바라는 욕심이었다.
6시가 조금 넘어 준비를 마치고는 거실로 나가 '아지야~' 하고 부른다. 현관문 앞에 있는 산책 가방을 메고 걸려있던 몸줄을 꺼내자 녀석은 벌떡 일어나 슬렁슬렁 다가오다가 완벽한 '다운독' 자세로 스트레칭을 한 번 하고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품에 파고든다. 몸줄을 채우고 품에 파고든 녀석을 가만히 안고 있다가 일어선다.
"아지야 나가볼까~"
해가 뜨는 방향에 아침노을이 보였다. 요 이삼일 아침노을이 멋지게 하늘의 구름들을 물들이고 있었다. 공기가 차가웠다. 어느 날 갑자기 더위가 가 버렸고 또 갑자기 추위가 찾아왔다. 후드 점퍼의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모자를 뒤집어썼다. 아지는 찬 공기가 맘에 드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옆으로 천천히 흔들었다. 멋진 아침 하늘의 노을도, 아지의 기분도, 차갑지만 맑은 공기까지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녀석들의 밥을 챙겨주고, 사과를 깎아 통에 담고 계란과 귤을 간식 도시락에 넣어두고 집을 나섰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엉뜨’를 켠 후 회사로 출발했다. 큰길에 들어서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서로 질세라 “우주만큼 사랑해~”를 외치고 통화를 끝낸 후 유튜브의 법문을 틀어 들으며 회사로 향했다. 오늘도 하늘은 높고 맑고 공기는 청량했다. 기분도 좋았다. 깜빡이도 없이 갑자기 끼어드는 옆 차선의 차도 이해가 되었다. 아침의 시간들이 좋아 기분이 좋은 건지, 기분이 좋아 이 시간들이 즐거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완벽한 아침이었다.
흘러가는 시간들이 아까울 만큼 그 어느 해보다 눈이 부시게 멋진 10월이었다. 그리고 그 10월의 어느 아침, 나는 사표를 내러 회사에 간다. 사표를 내야만 하는 이유들이 이전에 90이었다면 최근 며칠간 드디어 100으로 채워졌고, 마음의 결정과 함께 다음 할 일이 생겼고,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일들도 생겼다.
규모가 좀 있는 코스닥 상장사이건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이건, 중소기업에서의 삶이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비슷하기에 머무르는 것과 떠나는 것의 이유 또한 드라마틱하게 다르지 않았다. 퇴사의 이유는 조금씩 쌓이고 쌓이다 어느 순간 별일 아닌 일이 트리거가 되어, 아주 짧은 사이에 지난 몇 년의 시간을 정리하기로 결정하는 것뿐이었다. 별일인 듯, 그러나 또 별일 아닌 듯, 중요한 듯 그러나 또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나의 경우, 머무르거나 떠나는 것에 대한 고민에 빠진 그 어느 날이 마침 건강검진 결과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병원 방문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이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우편 결과만으로는 넘어갈 수 없었을 것이고 아마도 다른 검사들이 추가될 수도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만약 나에게 단 1년의 시간만이 남는다면 난 무엇을 할까?’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퇴사’였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퇴사 다음에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해 보았더랬다. 그런 생각들의 흐름 가운데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그 일들이 퇴사를 결정하게 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삶이 그러했듯 이번에도 역시 가장 필요한 순간, 가장 필요한 일들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삶이 진실이라는 말처럼, 사직서를 올리는 그 순간 또한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회사에 있었던 시간들을 포함하여 어느 한순간 진실이 아닌 순간이 없었으나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모든 순간이 나를 위한 최선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표를 내기 좋은 날이었다. 적당히 하늘을 채운 붉은 아침노을처럼, 맑은 공기처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모든 것이 완벽한 날에, 나는 사표를 내러 회사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