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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주 8시간전

오늘, 퇴사했습니다 (1)

퇴사하는 날, 아지와의 아침 산책길에 비가 왔다. 긴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맞은 11월 중순의 아침 6시는 깜깜했다. 비가 오는지 모르고 신나게 아지와 밖으로 나왔다가 꽤나 굵은 빗줄기에 당황했다.

”비가 오네.. 아지야 어쩌지? “

잠시 고민하다가 집에 올라가 우산만 가지고 내려왔다. 아지는 우비 입는 것을 싫어한다. 우비를 입으면 배변도 잘하지 않는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지 않는 한, 가급적 우산을 나눠 쓰며 적당히 비를 맞고 적당히 비를 피하며 우중 산책을 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7시에는 비가 그친다고 했다. 출근 시간이 있으니 산책 시간을 바꿀 수는 없었다.

“아지야~ 엄마 퇴사하면 비 안 오는 시간에 맞춰서 산책하자~”



지금 회사를 다닌 지난 3년 동안 아지의 아침 산책은 여름엔 5시, 다른 계절엔 6시였다. 노래가사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태풍이 와도 언제나 동일했다. 아직 잠에서 덜 깼어도 아지는 내가 산책가방을 메면 발딱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현관으로 걸어왔다. 그때가 아니면 밤늦게나 산책을 하고 배변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아지는 잘 알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싫어하는 비를 맞으며 찌뿌둥한 듯 천천히 움직이는 아지에게 늘 미안했고 그런 녀석이 안쓰러웠다. 앞으로는 비가 안 오는 시간에 맞추거나, 덜 오는 시간에 맞추어 산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퇴사를 하면 좋을 점은 차고 넘쳤다.


산책을 마치고 기분 좋게 출근을 했다. 차들로 꽉 찬 복잡한 도로도 괜찮았다. 출근길 멀리 보이던 산들에 멋지게 단풍이 들어 있다. 이 시간, 이 풍경들도 마지막이란 생각에 틈이 날 때마다 풍경들을 눈에 담았다. 편도로 꼬박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출퇴근길에, 계절마다 멋지게 바뀌는 산의 풍경들은 언제나 위로가 되어 주었다. 좋은 풍경을 보기 위해 일부러 드라이브를 하는 것처럼,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회사에 도착해 언제나 그랬듯 컴퓨터를 켰다. 메일함을 확인하고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했다. 다행히 부서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인수인계를 할 것도 없었다. 부서 이동 공지 2주 후 나는 사표를 냈다. 몇 번의 면담과 협상 아닌 협상(?)이 이어지고 3주가 지나 퇴사일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야 사직서 결재가 최종적으로 끝났다. 사직서를 올린 그다음 주부터 나는 회사 사람들에게 퇴사한다고 소문을 냈고 미리 점심 식사를 하기도 하면서 퇴사 준비를 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퇴사의 이유를 물었고 나는 퇴사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직’

잘 됐다, 고생했다, 무슨 회사냐, 좋은 조건으로 가는 거냐, 나도 데려가라, 필요하면 불러라 등등 비슷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밥을 먹다 보면 점심시간 1시간은 금방 갔다. 사직서를 올리면 쉬쉬하는 회사 분위기를 알고 있기에 나는 일부러 더 소문을 내어 퇴사 사실을 확정 지었다. 사직서가 언제 최종 결재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직서에 희망퇴사일을 적었고 그 날짜는 순식간에 당일이 되었다.




입사 면접 이후 네 번째, 입사 이후 세 번째로 부서가 바뀔 수도 있다는 소문 같은 이야기를 나는 흘려 들었었다. 그리고  

“네가 이 일을 맡아주면 좋겠다, 할 수 있지?”

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제가 선택을 할 수 있는 건가요?”

라고 나는 웃으며 질문했고

“이 일이 지금 중요해, 못한다고 하면 안 돼”

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 답변을 듣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표현을 이렇게도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맡게 된 새 부서의 팀장이 된 지 며칠 만에 내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 지난 3년간 늘 간당간당 채워질 듯 말 듯했던 퇴사의 이유가 100이 된 순간을 기억한다. 구구절절 이유를 대자면 몇 시간이고 떠들 수 있지만 100을 채운 마지막 1%는 그동안 직장 동료들과 시시콜콜 떠들어댔던 회사에 대한 불만이 아니었다.


부서가 바뀌고 며칠 후 대표님은 나를 따로 불렀다. 다른 직원들과 다르게 크게 긴장하지 않은 채 앉아 있던 나에게 대표님은 불쑥 물었다.

“집에 안 좋은 일 있다며?”

언제나처럼 비상경영이라는 이유로 모 대기업처럼 해야 한다며, 팀장급 이상 직원들의 퇴근 시간을 늦추고 주말에도 출근을 하라는 지시가 있은 지 이미 한 달여가 지난 시기였다. 그리고 팀장이 된 나 또한 아마 비슷하게 퇴근 시간을 늦추고 주말 출근을 고려해야 할 텐데, 나는 이런저런 사정들로 쉽지 않은 상황임을 직속상관이던 분이 대표님에게 설명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멋쩍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나에게 대표님은 나에게 맡긴 일이 중요하다며 한참 설명을 하고는, 잠시 멈췄다가 이야기했다.

“그런데 주변에 보니까.. 아프신 부모님은 요양원에 보내는 게 낫다더라. 요양원에 보내면 거기 프로그램도 더 전문적이고, 비슷한 친구들도 있고….”


아뜩하게 이야기가 멀어졌다. 깜깜한 공간 속에서 언어들이 블랙홀에 휙휙 빨려 들어가듯,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처럼 낯설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고 눈에 그렁, 눈물이 고이는 느낌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숨을 한 번 들이쉬어 차오르는 눈물샘을 막아버렸다.  

“집에 일이 있을수록 더 억척스럽게 살아야지, 기회를 줬으니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 봐.”

“예..”

서둘러 대답을 하고 일어서 대표님 방에서 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아… 지금이 그만둘 때구나…’


머릿속에 어떤 이유가 생각났던 건 아니었다. 화가 난 건 더더욱 아니었다. 아무런 감정적인 동요도 없었다. 자리에 돌아와 앉아 그제야 왜 그런 생각이 떠오른 건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아 문을 열고 들어간 그 순간부터의 시간을 다시 복기했음에도 여전히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컴퓨터의 잠긴 화면을 켜려 마우스를 움직인 순간 문득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게 어떤 일이건, 내 인생의 어떤 결정이건 내가 하는 거지.’



나는 경계선(Border line)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내 삶의 중요한 어떤 결정들을 내리는 데 있어 충고나 조언이 아닌 ‘간섭’이 들어왔고,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마음이 하는 이야기였다. 월급쟁이가 월급을 받아 그 월급으로 ‘밥줄’을 연명해 나간다 하더라도, 그 ‘밥줄’을 어떤 모양으로 지켜갈지는 나의 몫이었다. 그저 내 밥줄은 나의 모양으로 그려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늙어가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지, 요양원에 보낼지, 억척스럽게 살지, 여행하듯 살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고 나의 결정이었다. 이곳에 계속 있게 된다면 내 ‘밥줄’이라는 나의 그림에 누군가 덧칠을 하거나 다른 색을 칠하는 것을 허락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무기력하게 그 색칠을 바라보게 될 것만 같았다. 나의 ‘밥줄’을 지키기 위해 말이다.




그날 이후 퇴사 이후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일주일을 꼬박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할 일들과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새 부서를 총괄하는 분과 부서의 팀원들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 주어, 나로 하여금

‘이 부서에서 같이 일하다간 내가 과로사 및 화병으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새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지금이 퇴사하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


퇴사하기에 이보단 더 좋을 순 없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인연들은 이어지고 이어져,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는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고, 멀리서 보았을 때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 만큼 납득할 수 있는 ‘퇴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여러 번의 퇴사 후 깨닫게 된 ‘퇴사도 잘해야 한다’라는 나의 신념에 맞게, 그렇게 모든 정황이 딱딱 맞아 들어갔다.


나는 그렇게 퇴사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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