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곧 방학이었다. 방학 전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느라 재우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연스레 클럽에서 주로 약을 파는 건 내가 되었다. 클럽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게 된 나는 그들과 같이 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잦았다. 재우는 공짜 약 그만 퍼주라는 핀잔을 할 뿐, 나를 통제하지는 못했다.
서연이... 안 궁금하냐?
마지막 시험을 치른 날, 느지막이 돌아온 재우가 물었다.
글쎄...
서연이가 학교에서부터 나 몰래 따라온 날 말이야. 그날 이상하게 걔가 날 자꾸 쳐다보더라고. 너 어디 있는지 아냐고 물어보기는 했어도, 그렇게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 적은 없었는데... 그날은 진짜 무슨 촉이 왔는지 계속 눈이 마주치고 그랬거든? 그래서 우리 집에 와서 문 두드렸을 때 진짜 나 깜짝 놀랐었잖아.
나는 잠자코 재우의 말을 들었다.
근데 왜 하필 나를 따라왔을까 생각해 보니까... 나한테서 네가 쓰던 로션 냄새가 났었던 것 같아. 왜, 나 로션 다 썼다고 해서 네가 새로 주문했었잖아. 비싸 보였던 거. 나도 그 로션 처음 발라보고, 어 이거 민준이 너한테서 나는 향이다 했었거든.
아, 그랬구나. 그랬을 수도 있겠네.
내가 말했다.
그치? 아무튼 여자들 촉이 무섭다니까.
재우는 나를 보며 이어 말했다.
그날 서연이한테 무슨 말한 거 있어?
재우는 나를 봤다.
아니... 서연이가 너무 심하게 나를 피하더라. 솔직히 너랑 걔랑 헤어지기는 했어도 그렇게까지 나를 피할 이유는 없지 않아? 근데 너무 이상하게 굴어.
서연과 재우는 같이 듣는 수업이 하나 있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셋이 함께 듣는 수업이었다. 서연은 교수님이 강의실에 들어오기 직전 살금살금 들어와 맨 뒷자리에 앉았고 수업이 끝나면 가장 먼저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멀리서 재우의 모습이 보이면 재빠르게 뒤돌아서 멀리 길을 돌아갔고, 내 친구들의 무리와 서연이 자주 들르던 학교 후문 앞 카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런 서연의 모습은 재우의 눈에 모두 포착되고 있었다.
뭐랄까... 너랑 관련된 모든 걸 지우고 싶어서 안달 난 느낌? 슬프거나 힘든 얼굴이 아니라니까?
그럴 거야. 서연이는 지금 나라는 존재 자체를 깡그리 지우고 싶을 거야.
왜?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어?
재우가 물었다.
내가 약했다고 했거든.
담담한 나의 말에 재우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약했다고... 실수로 말이 나오기는 했는데, 그냥 잘한 것 같아. 서연이는 자기 남자친구인 내가 마약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거야. 남들의 이목을 많이 신경 쓰는 애잖아. 내가 약을 했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서연이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을 거고, 서연이는 나랑 헤어지는 것보다 그런 시선 받는 걸 더 힘들어할 애야.
아 진짜? 너랑 헤어지는 것보다 소문이 더 무섭다고?
재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요즘에 찬성이랑 자주 만나는 것 같긴 하던데. 둘이 원래 친했나?
아니었다. 서연은 재빨리 찬성으로 나를 덮고 있었다.
그래도 야, 너 약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하고 다니는 거 아니냐? 이건 신고만 해도 바로 잡혀간다니까? 우린 약을 단순히 먹기만 한 게 아니고 팔았잖아. 단순 투약자가 아니라 판매책이야. 처벌이 세다고. 조심 좀 해.
재우는 내가 너무 대담해지는 것 같은지 조금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래 조심할게, 미안. 서연이에게는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어. 근데 걔 입에서는 마약의 마 자도 안 나올걸.
그래, 알았어. 재우가 말했다.
재우는
그건 그렇고... 하며 가방을 열었다. 주춤거리며 가방 속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오늘부터 이것도 한 번 팔아볼까 해.
재우는 가방에서 꺼낸 파우치를 나에게 보여줬다. 파우치의 지퍼를 열자 작은 비닐봉지들이 보였다.
이게 뭐야?
코카인.
재우가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는 처음 보는 하얀 가루가 들어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그 물건이 재우의 손에 들려 있었다. 나는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코카인을... 팔겠다고, 오늘부터?
응. 찾는 애들이 계속 있었잖아. 마침 물건 대주겠다는 친구도 믿을 만한 애고 해서...
재우는 말끝을 흐렸다.
소프트 드럭만 취급하겠다던 재우였다. 돈은 좀 안 되더라도 두 발 뻗고 자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재우가 코카인을 팔겠다고 내 앞에서 선언할 줄은 미처 몰랐다. 앞으로의 불확실한 불행을 확실한 불행으로 만든 날이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재우에게만 찾아온 방학이 아니었다. 클럽은 이제 두 배로 붐볐다. 대학생들은 물론, 많아야 열일곱쯤 되어 보이는 어린애들이 클럽 안으로 마구 밀고 들어왔다. 클럽 사장은 법이 자기를 좋아한다며 걱정할 것 없다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집중단속기간만 잘 피하면 되니 물 들어올 때 노 젓자고 어기야 디어차 노 젓는 시늉을 했다.
재우는 그전보다 공짜 약을 더 많이 뿌렸다. 어린 친구들은 공짜로 LSD와 엑스터시를 주는 재우의 연락처를 받아갔다. 재우가 건네는 약을 한번, 두 번 하고 나서는 어김없이 대량으로 약을 사 갔다. 중독이 빠르게 진행된 경우에는 약을 시작한 지 두 달도 안 되어 코카인을 찾기 시작했다. 코카인은 가격이 비싸 부모님이 주는 용돈으로 사기가 벅찼다. 모자라는 돈을 여자아이들은 조건 만남으로, 남자아이들은 주변 친구들에게 웃돈 붙여 약을 팔아 마련했다. 약을 공짜로 많이 뿌리면 뿌릴수록 재우에게는 더 많은 돈이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재우는 불쑥 여행 가고 싶은 생각 없냐고 물었다.
여행?
위태롭게 약이나 파는 일상이었다.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갑자기 여행이라니?
내가 묻자, 재우는 전에 클럽에 놀러 온 호주인들 이야기를 했다. 그날 그들이 호주에서 놀러 왔다는 것을 내가 듣고 약에 취해 유리! 유리! 하며 소리 질렀던 일을 꺼냈다.
아, 그 얘긴 하지 말자.
왜. 큭. 유리가 빵 만들러 갔다며.
야. 하지 마.
내가 웃음기 없이 말하자 재우도 놀리는 것을 관뒀다.
아니... 너만 호주에 가고 싶은 건 아니라고. 나도 버킷리스트에 있다. 호주.
재우는 호주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였어. 우리 학교랑 호주에 무슨 학교랑 자매결연을 했다나. 그러면서 그 학교 애들이 우리 학교로 와서 같이 수업도 듣고 홈스테이도 하고 그랬어. 우리 반에는 한 다섯 명인가? 배정된 거 같았는데, 우리 반 반장, 부반장, 공부 1등 하는 애, 잘 사는 애 뭐 이런저런 애들 집에 같이 가기로 이미 다 정해져 있었더라고. 나는 보육원이 집이니까... 걔네를 데려오고 싶어도 데려올 수가 없잖아. 파란색 눈에 밝은 갈색 머리카락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나도 홈스테이 같은 거 하고 싶었는데... 못하니까 학교에서 걔네를 계속 따라다녔어. 근데 그 홈스테이 하는 우리 반 애들이 옆에 딱 붙어가지고 말도 못 걸게 하는 거야.
그러다 한 번. 캐시라는 애였어. 이름도 아직 기억해. 주근깨가 엄청 많고 키가 큰 애였어. 캐시가 쉬는 시간에 잠깐 혼자 창밖을 보고 있는 거야. 나는 헬로 하면서 캐시의 앞자리에 앉았어. 캐시는 헬로 한마디만 하고는 다시 창문 밖을 보더라.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영어를 더 몰랐잖아. 와츠 유어 네임, 나이스 투 미츄 말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어떻게든 캐시랑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말이 안 나왔지. 답답해하고 있었는데 캐시가 테이크 어 룩. 하는 거야. 하늘을 보면서. 나도 하늘을 봤어.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어. 그리고 그날 눈 예보가 있던 게 마침 기억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스노, 스노 했어. 그랬더니 캐시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리얼리? 하는 거야. 너무 기뻐하면서 뭐라 뭐라 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눈 때문에 좋아하는 거라는 건 확실했지. 그래서 너희 나라에는 눈이 안 오냐, 노 스노? 노? 하면서 물어봤어. 그랬더니 캐시가 뭐라 길게 말했는데 내가 못 알아들었어.
그때 캐시가 잇츠 써머 나우. 하는 거야. 지금 여름이라고? 나는 내가 잘못 들었거나 캐시가 나를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때까지 남반구 북반구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우리나라가 겨울인데 다른 나라는 여름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호주의 계절과 우리나라의 계절이 반대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나는 내 세계가 아주 조금은 확장되었음을 느꼈어.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지구에서 하나의 점조차도 아니었구나. 이렇게 넓은 지구에 살면서 나는 이 동네만 빙빙 돌고 있었구나 했어. 내가 알지 못하는 이 세상이 궁금해진 계기였지. 그래서 한 번쯤은 꼭 호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 캐시가 나에게 말했던 잇츠 써머 나우. 그걸 느껴보고 싶어서.
재우는 되도록 담담하게 말하려 노력했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뒤라는 것을 나도 알 수 있었다.
여행 경비는 벌어 놨잖아. 지금 방학이기도 하고. 어때? 같이 갈래?
재우가 나를 보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재우의 제안에 놀라기는 했지만 그렇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그리고, 민준아. 우리 이제 이 일 그만하자. 이대로 계속 가면 나 못 헤어 나올 것 같아. 잘못된 길인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 뭔가 계기가 필요해.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면서 가졌던 마음... 나도 남들처럼 제대로 한번 살아봐야겠다는 결심. 그걸 다시 기억해 냈어.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되는 거겠지?
재우는 진지했다. 내가 확답을 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재우는 대답을 듣고 싶어 했다.
당연하지.
나는 재우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했다.
멋쩍어하며 재우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그리고 민준아, 나중에 취업하면 호주를 언제 갈 수 있겠냐. 지금 가야지. 넌 나 때문에 이 길로 들어섰잖아. 내가 책임진다. 같이 그만두자.
재우는 그동안 느껴왔던 죄책감에서 벗어나서 새로 시작하고 싶어 했다. 내가 재우처럼 변해가는 것을 막고 싶었던 것이다. 벗어날 무언가가 절실했다.
그래, 가자.
나는 재우를 보며 웃었다.
가자. 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