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쿵 쿵 쿵
클럽에 들어온 지 30분이 되자, 귀가 먹먹했다. 형보다는 덜 하지만 나도 청각에 예민한 탓에 시끄러운 음악 소리는 고문에 가까웠다. 나는 고막을 찢을 기세로 울리는 소음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민준아 이리로 와.
내 어깨를 톡 치며 재우가 귓속말을 했다. 재우는 클럽의 화장실 바로 앞 구석진 곳에 서 있는 두 남자에게 갔다. 맥주 상자들과 일회용 용기 박스가 위태롭게 서 있는 곳에서 남자들은 실실 웃고 있었다. 재우는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비닐봉지를 꺼내 건넸고 두 남자 중 한 명은 돈을 줬다. 돈을 슬쩍 세어보고 재우는 남자들에게 고갯짓을 하고 민준에게로 돌아왔다.
이게 다야?
내가 물었다.
별거 없지?
너무 쉽게 끝나는 마약 거래 현장이었다. 싱거웠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마치 담배 한 갑 사듯이 아무렇지 않게 마약을 사고파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 후로도 재우는 쉴 새 없이 약을 건네고 돈을 받았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약을 사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질수록 테이블에서, 지나가는 재우를 불러 세워서 아무렇게나 돈을 주고 약을 받았다. 내가 보기에 이 클럽에서 약을 하지 않은 사람은 재우와 나 둘 뿐인 것처럼 보였다.
민준아 이제 네가 해봐.
재우는 비닐봉지들을 나에게 건네며 받아야 할 돈의 액수를 말해줬다. 봉투 안에는 작은 종이 조각이나 알약들이 들어있었다.
약이 든 봉투를 재우에게서 받아 든 그 순간, 시설에서 담장을 뛰어넘어 허겁지겁 자기 팔에 주사기를 꽂던 아저씨 생각이 났다. 대낮에 길거리에서 그런 짓을 한 것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그것보다는 인생을 참담하게 사는 자에 대한 경멸이 앞섰었다.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광경을 봤네, 왜 저러고 살까 하며 혀를 찼던 나였는데. 이제 나는 내 발로 그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민준아, 저기.
재우가 가리키는 곳을 봤다. 내 발은 생각보다 쉽게 떨어졌다. 바지 주머니에 봉투를 넣고 걸어갔다. 여자 세 명이 클럽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약을 찾았다. 그들은 LSD를 달라고 했다. 나는 액수를 알렸고 봉투를 건네준 다음 돈을 받아 돌아왔다.
이걸 축하한다고 해야 하나?
재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손에 쥐어진 돈을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돈은 돈일뿐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클럽 안의 공기가 바뀌어 갔다. 한창 거래할 때는 미처 몰랐었는데 이제 와 둘러보니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음악과 상관없는 움직임으로 팔을 휘저으며 웃는 여자, 서로의 얼굴을 부여잡고 깔깔거리며 숨이 넘어갈 듯 웃는 다른 무리, 의자에 올라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무리를 향해 팔을 내젓는 남자. 각자 자기만의 쾌락에 빠져 있었다. 어떤 남자는 양손으로 자기 머리를 때리다가 풀썩 주저앉더니 머리를 찧으며 바닥에 누워버렸다. 내가 그를 쳐다보자 재우가 말했다.
LSD나 엑스터시는 환각 증상이 생겨. 환각의 종류는 복불복인데 굿 트립(Good trip)도 있지만 배드 트립(Bad trip)도 있어. 나는 솔직히 할 때마다 재밌었는데 아닌 사람들도 있더라. 재우가 마약에 대해 생각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좀 놀랐다.
이제 다 팔고 요거 하나 남았네.
재우가 봉투 하나를 달랑거리며 보여줬다.
너도 할 거지?
재우가 주는 것을 손에 받았다. 사실 조금 꺼림칙했다. 망설이는 나를 보고 재우는
아직은 좀 그런가? 하며 작은 종잇조각 하나를 꺼내 혀에 붙였다. 단순한 재우의 동작이 마약을 하는 행위라는 것이 나는 실감 나지 않았다.
재우가 건넨 종잇조각을 봤다. 새끼손톱 반절만 한 크기였다. 이쯤은 크게 해를 끼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종잇조각을 들어 입 가까이 가져갔다. 재우가
굳이 하지 않아도... 하고 말할 때 나는 내 혀에 종이를 붙였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이제 나는 무슨 일이 생길지 궁금해졌다. 잠시 후 눈과 귀가 합쳐지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짙푸른 색 깃털이 너울거린다.
깃털은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긴다. 어디서부터 날아오는지 모를 푸르고 반짝이는 깃털들이 커다랗게 하나로 합쳐지고 있다.
쿵쿵쿵쿵
음악에 맞춰 거대한 깃털 덩어리가 팽창했다가 쪼그라든다.
쿵쿵쿵쿵
음악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음악과 푸른색 깃털이 하나로 섞인다. 그것은 이제 부드럽고 윤기 나는 유화 물감이 되어 내 가슴을 칠한다. 내 가슴에는 푸른색 점이 하나둘 쌓인다. 크고 작은 푸른 점이 가슴에, 어깨에 날아와 붙는다. 푸른 점은 점점 나를 점령한다. 깃털이, 푸른 점이 나를 채우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쿵쿵쿵쿵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음악이 울린다.
조금 더 강하게, 조금 더 빠르게.
쿵쿵쿵쿵
심장이 더 빠르게 뛴다.
쿵쿵쿵쿵
푸른 깃털이 된 '내'가 커지고 있다. 더 커지고 더 강해지고 있다. 더 커지고 강해진 '나'를 위에서 내려다본다. '나'의 발이 바닥에 닿아있지 않음을 본다. 심장은 더 빨리 뛰고 더 커진 음악 소리에 눈이 터질 것 같다. 점점 위로 올라온다. '나'는 위로 올라와 어느새 내 옆에 자리한다. '내'가 눈을 감고 팔을 벌려서 날려는 그때 푸른 깃털이 하나 가슴에서 떨어져 나온다. 하나가 떨어지고 곧 또 하나가 떨어진다. 푸른 깃털, 푸른 물감이 몸에서 똑똑 떨어진다. 바닥에 떨어진 그것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하나로 뭉쳐진다. '내' 몸에 있던 깃털들이 떨어지면서 잿빛으로 변했다. 둥그렇게 뭉친 잿빛 무더기. 그 한가운데에 새까만 어둠이 있다. 새까맣고 깊은 어둠 속에서 작은 소리가 들린다. 높게 웃는 소리, 무언가 깨지는 소리, 짐승의 으르렁 소리. 낯설고 소름 끼치는 소리에 '나'는 그만 몸서리를 친다. 깊은 어둠의 구멍이 조금씩 넓어진다. 구멍이 넓어지는 만큼 소리도 커진다. 위험해. 뒷걸음질 치고 싶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둠 속의 소리는 이제 말소리가 되었다. 점점 커지는 그 소리가 '나'에게 가짜라고 한다.
가짜, 가짜, 가짜.
잿빛 어둠이 '나'에게 가짜라 말한다. 소리를 멈추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 무섭고 피곤했다. '나'는 불행해졌다. 몸에 있던 모든 수분이 빠져나갔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환각의 끝에 다다랐다.
미안해. 내가 그동안 너무 경황이 없었어. 먼저 연락을 했어야 하는 건데 그렇게 못 했네...
오빤 내가 우스워?
아니... 우습다니...
2주 동안 잠수 타면서 나랑 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은 못 해봤어?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나는 서연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집에서 나오게 된 이유를 굳이 서연에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상황은 서연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서연이 재우와 다른 친구들에게 민준이 오빠 어디 있냐고 물어보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래도 나는 굳이 서연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서연이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서연이 오늘 재우의 집으로 찾아왔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재우의 뒤를 쫓은 것이었다.
서연은 재우 집의 벨을 누르고 말했다.
민준 오빠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나와 빨리.
안에 있던 나는 무척 당황했다. 서연을 이곳에서 이 시간에 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서연에게 할 말을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없는 척할까 했지만 그건 너무 비겁한 짓 같았다. 연락하지 않은 것보다 숨어서 없는 척하는 것이 더 나빠 보였다. 재우를 따라왔다는 것은 서연이 무언가를 눈치챘다는 말이고 이제 나는 싫어도 서연과 대화를 해야 했다.
재우에게는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밖에 있던 서연은 진짜 내가 나타나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밖에서 서연이 물었다.
학교에 왜 안 나와?
그냥. 일이 있었어.
무슨 일?
무슨 일인지 얘기하기가 좀 그래.
휴대전화는 왜 꺼놨는데?
고장 났어.
그럼 고쳐야지. 지금 장난해? 서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연의 하얀 얼굴은 더 하얘지고 얼굴과 목 군데군데 붉은 반점이 생겨났다. 서연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려고 하는 찰나, 옆집 문이 열리고 추리닝 차림의 한 남자가 복도로 나왔다. 남자가 좁은 복도를 지나갈 수 있도록 조금 비켜서는 서연에게 안으로 들어오겠느냐 물었다.
거기 재우 오빠 있잖아.
아, 그럼 나가자.
외투를 입고 나가려고 방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재우의 집 현관문에는 문을 고정하는 스토퍼가 없어서 닫히지 않게 서연이 문을 잡았다. 내가 외투를 찾는 동안 서연은 나와 재우, 그리고 방안을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봤다. 그 눈빛이 하도 진지해서 재우는 얼굴을 돌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웃긴 상황은 아니었지만, 재우의 얼굴을 보자 심각했던 내 마음이 어느 정도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옷을 입고 앞서 걸었다. 서연은 내 뒤를 말없이 따라왔다. 재우의 집에서 사는 2주 동안, 나는 택시 타고 클럽으로 가는 일 외에는 일체 혼자 외출한 적이 없었다. 주변에 아는 곳이라고는 편의점과 밥집 몇 군데가 다였다. 서툴게 두리번거리며 어디 카페라도 없나 찾아다녔다. 서연은 나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따라왔다. 서연이 계속 쳐다보고 있는 줄 알면서도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화가 난 사람이 나인지 서연인지 이제 헷갈릴 정도였다. 아마 나의 이런 모습은 서연에게 생소했을 것이다.
나는 늘 서연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고 맞춰줬었다. 온갖 일로 금세 기분이 나빠지는 서연이지만 정작 나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 적은 없었다. 편하게 아무 말이나 막 해도 다 받아주던 나였다. 서연의 기분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내 모습은 서연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서연도 내 태도가 바뀌었음을 알았다.
서연아.
갑자기 뒤를 돌아 서연을 불렀다.
어?
서연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어디 카페라도 들어갈까 했는데. 내가 이 동네를 잘 몰라서. 안 보이네, 카페가.
나는 입을 조금 늘여서 미소를 지었지만 오래가지 않고 금방 사라졌다. 가만히 선 채로 서연을 바라봤다. 화가 났던 서연은 도리어 내 표정을 살피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서연아. 미안하지만 그냥 여기서 얘기해야겠다. 괜찮지?
서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내가 말했다.
내가 너에게 연락하지 못했던 건 정말 미안해. 남자친구란 놈이 그러면 안 되잖아. 서연이 네가 걱정할 것 뻔히 알면서도 내 사정 때문에 알리지도 못하고... 네가 많이 당황했을 것 같아. 미안해,
서연은 따져 물을 것이 많았다. 같이 바다에 다녀온 이후로 연락이 뚝 끊긴 내게 화내고 항의하는 것이 응당 서연이 할 일이었다. 혹시 서연 말고 다른 사람이 생긴 건지, 몸 어디가 아팠던 건지,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지 내 설명이 꼭 필요했다. 그리고 그 설명은 명쾌한 것이어야 했다.
재우와는 같은 집에 머무는 주제에 여자친구인 서연에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애당초 들어갈 생각이 없었던 듯 건성으로 카페를 찾았다. 이 모든 행동은 서연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아마 잘못했다고 무릎 꿇고 싹싹 빌면 한 번만 봐주려고 했을 것이다. 서연을 우습게 여기지 못하도록 뜸을 잔뜩 들여 화를 풀려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릎을 꿇지도, 싹싹 빌지도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내 얼굴은 이제 할 말을 다 한 표정이었다. 나는 예의 바르게 서연의 대답을 기다렸다.
오빤 참 쉽다. 미안하다면 다야? 그리고 그 태도는 뭐야?
나는 서연의 입과 땅바닥을 번갈아서 보고만 있었다.
연락도 없이 그러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내가 여기까지 오는 게 쉬웠을 것 같아? 재우 오빠한테 안 들키려고 이리저리 숨어서 따라왔거든? 진짜 수만 가지 생각이 들더라.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고. 근데... 근데 오빠 뭐야? 멀쩡한 얼굴로 이렇게 대충 미안하다고 하면... 그러면 해결되는 거야?
나는 서연에게 정말 미안했다. 대충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나의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해서든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서연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 그것 하나뿐이었다. 왜 집에서 나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할 수가 없었다. 서연에게 알리고 나면 나는 더 비참해질 것 같았다.
왜 말이 없어? 누구 다른 여자라도 생겼어?
아니야, 서연아.
그럼 뭐야? 오빠 어디 아파?
아냐... 그런 거.
뭐냐고,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말 좀 해봐!
약.
뇌를 거치지 않은 글자 하나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서연의 얼굴을 살폈다.
뭐?
서연은 바르게 들은 것인지 되물었다.
약? 무슨 약?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을 설명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리라는 예감을 했다. 그 결과로 서연과는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할 거란 생각도. 그리고 그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덤덤한 얼굴로 서연을 보며 말했다.
마약 말이야.
나는 손과 팔에 난 상처를 보면서 말했다. 약에 취했을 때 어디 부딪히면서 생긴 상처 같은데 기억나지 않았다. 재우처럼 상처를 보며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서연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 단어가 나에게서 싸늘하게 뱉어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마약이라는 단어를 서연은 서서히 인지하기 시작했다.
마... 약?
자세히 말해주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어. 네가 알아서 좋을 것도 없고.
나는 이제 이 대화가 피곤하게 느껴졌다. 재우와 클럽으로 출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서연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의 시계를 봤다.
오토바이가 와앙 하고 골목 안으로 달려왔다.
여고생 둘이 나와 서연을 흘깃 보고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골목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