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가지 않은 지 며칠이 지났다. 재우는 학교와 친구들에게 나의 일탈을 알리지 않았다. 내가 알리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고 재우도 그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재우의 비밀을 알아버린 내가 친구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았을 것이다. 학과 사무실로 나를 찾는 전화가 계속 오고 있다고 했다. 나와 친한 친구들의 전화번호로 부모님이 계속 전화하셨다. 나와 재우가 함께 있을 때도 재우에게 전화가 왔었던 것 같다. 재우는 모르는 번호라며 받지 않았었다. 끈질기게 계속 울리는 전화를 재우가 받았을 때, 나는 옆에 없었다.
어머니였다. 지치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재우 학생인가요?
재우는 어머니의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자신이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 대답하기도 전에 목이 메었다.
여보세요? 재우 학생?
네...
아, 맞지 재우? 나 민준이 엄마야.
네.
재우는 안녕하세요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안녕하실 수가 없어서였다.
저기... 우리 민준이한테 혹시 연락 온 거 있어?
아...뇨
아... 연락 온 게 없어? 그렇구나... 재우도 들었겠지만 민준이가... 집에서 나갔는데... 아직... 안 돌아왔거든...
울음을 참아가며 말하느라 어머니의 말이 자꾸 끊겼다.
아... 네...
그래... 음... 민준이랑 혹시나... 연락이 되면... 나한테 꼭 알려줘. 내 번호... 저장해 두고... 부탁해. 재우 학생
네
미안해. 꼭 좀 전화해 줘, 꼭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치고 재우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우 머리야...
머무는 공간도, 재우가 감추고 싶었던 비밀도 공유하는 나였다. 하지만 재우는 내가 왜 집을 나왔는지는 짐작조차 못 하고 있었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느껴본 적이 없는 재우는 더더욱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나를 어린애처럼 느낄 것이었다.
이 사람한테서는 사지 마. 내가 한 번 사봤는데 질이 너무 떨어지더라. 이거 말고 여기 봐봐. 이 사람 거는 다들 믿을 만하다고 하잖아. 실패 없이 사려면 대세에 따르는 게 낫지. 이 시장도 아마존이나 쿠팡이랑 똑같아. 후기 보고 괜찮으면 사는 거고 아니면 제껴.
재우는 다크넷 화면을 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나는 주로 LSD랑 엑스터시만 취급해. 더 센 것도 팔아봤는데 너무 폐인이 돼버리니까 돈은 돼도 못 팔겠더라고. 그런 건 나도 안 하고 싶고... LSD랑 엑스터시는 중독성이 별로 없거든. 그리고 나한테서 사는 애들은 주로 클럽에서 놀 때 하는 애들이라 이 두 가지만 팔아도 돼. 너도 해보면 알겠지만, 클럽 가서 이거 딱 하잖아? 완전 미치는 거야.
나는 애초에 마약을 파는 것만 생각했었다. 마약을 해보고 싶었다면 재우에게 달라고 하면 될 것이었다. 돈이 급했고 지금은 돈을 벌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민준이 너는 잘 모르니까 일단 나랑 같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어. 나 하는 대로만 따라 하면 돼.
어머니와 통화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재우는 나에게 약을 사고파는 일을 가르쳤다. 재우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민준아. 이게 위험한 일이라는 거는 너도 알 거고... 왜 하려는 건지 난 좀 이해가 안 돼. 내가 아는 이민준은...
이제 내 옷을 입으려고.
내 뭐?
재우에게 나도 마약을 팔겠다고 했을 때 재우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었다. 왜 말이 안 되냐고, 그러는 너는 왜 하냐고 했을 때 재우는 한숨을 내쉬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는... 하지 말라는 사람이 없었어.
재우는 스무 살 전까지 보육원에 있었다. 공부를 곧잘 하기는 했는데 수능 전날 심한 감기에 걸려 시험을 망치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했다. 일단 다른 대학에 다니며 반수를 해보라고 하는 선생님들과 달리, 같은 보육원 형 몇이 금전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했다. 우리도 공부 잘하는 놈 덕 좀 봐야겠다며 제대로 재수를 해서 좋은 대학도 가고 꼭 성공하라고, 돈이랑 은혜는 나중에 갚으라고 했다. 형들도 형편이 좋을 리 없었기에 재우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품고 다달이 보내주는 돈을 받았다.
재우는 노량진에서 가장 싼 한 달 35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살았다. 비좁고 지저분했지만 참을 만했다. 하루에 두 번 컵밥과 김밥으로 연명하듯 지내도 늘 빠듯한 날들이었다. 계좌엔 스무 살이 될 때 자립하라며 준 지원금이 들어있었다. 그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돈이었다. 그 돈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 재우를 받쳐주던 땅은 무너져 내리고 디뎠던 땅과 함께 재우는 무(無)가 되어버릴 것이었다.
6월이었나... 한 형의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형들이 지원해 주는 것 자체가 고맙고 미안해서 재우는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연락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7월에도, 8월에도 입금이 되지 않자 재우는 버틸 수가 없게 되었다. 이미 제일 저렴한 고시원에서 제일 저렴한 음식을 먹어가며 지내는 재우가 할 수 있는 일은 형에게 전화를 거는 것뿐이었다.
형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른 형들에게도 전화를 해봤다. 그 형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른 형들의 주위는 시끄러웠다. 통화하는 동안에도 커다란 기계음이 들렸고 중간중간 다른 사람들에게 네, 알겠습니다, 처리하겠습니다. 등의 말을 했다. 형은 안 되겠는지 결국 재우보고 직접 찾아가 보라며 홍대의 한 클럽 이름을 말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재우는 돈이 필요했다. 형이 깜박하고 보내지 않은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재우는 형이 일하는 클럽에 찾아갔다. 클럽의 사장은 형이 얼마 전부터 출근하지 않고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말로, 잘하더니 그런다고 했다. 재우는 말을 흘리는 사장에게 되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형은 클럽의 직원인 동시에 약도 팔았다고 했다. 사장은 클럽에서 약을 하지 못하게 했던 적도 있지만, 이제는 약 없이는 장사가 안된다면서 지금은 다 용인한다고 했다. 말이 약이지 사실 이건 약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그냥 술 같은 거라고도 했다. 대신 약쟁이가 되면 안 되겠지? 하며 재우를 봤다. 사장은 재우를 바라보며,
근데 또 용돈 벌이하기에 이거만 한 게 없기는 해. 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재우는 사장이 하는 제안을 그 자리에서 거절하고 자신의 고시원으로 돌아갔다. 형이 그런 약을 팔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자신에게 보낸 돈이 약을 팔아서 번 돈이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형에게 화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했다. 형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측은하고 안 됐고 그 형에게 미안했다. 무엇이 형으로 하여금 그런 일을 하게 했을까. 하지만 형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재우는 자기 몫의 현실에 곧바로 부딪혔다. 휴대전화 요금 안내 문자가 왔다. 알뜰폰이어서 7천 원이 채 되지 않는 금액이었지만 재우에게 그 돈은 하루 식비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돈이 없었다. 시간을 쪼개 공부해야 하는 재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돈이 덜 들어오고 나서부터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단 몇십만 원이라도 벌어야 했다.
재우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를 봤다.
누구한테도 한 적 없고 앞으로도 할 일이 없는 이야기야. 나는 이 일 길게 할 생각이 없어. 직장 잡으면 완전히 끝이야. 나한텐 없었던 일이 될 거야. 중독자가 되지도 않을 테고. 솔직히 언제든 끊을 자신 있거든.
재우는 나를 보며 턱을 살짝 들었다.
근데... 너는 하지 마라. 나 같은 상황도 아니잖냐. 너희 부모님 생각을 해야지.
나는 재우에게 내 상황을 말해도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입양됐다고? 그게 뭐 어때서? 너 그거 복이야. 알아? 재우의 입에서 나올 말이었다.
나도... 돈이 필요해.
돈이 필요하다는 내 말에 재우는 설득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막을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