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by 글린트

형! 민혁이 형! 어딨어? 자꾸 나만 술래 되잖아!

동네 놀이터에서 내가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야야, 민준이 또 걸렸다.

예스! 그러게 이민준, 형님들 노는데 왜 자꾸 끼워 달라냐?

형의 친구들이 나를 둘러쌌다.

이씨, 그럼 나 혼자 놀라고? 엄마랑 이모들이 다 같이 사이좋게 놀라고 했잖아!

지금 사이좋게 놀고 있잖아. 떼쓰는 건 너지. 민혁이 동생이라서 봐주고, 같이 놀아주고 있는 건데 말이야.

민혁이 형! 민혁이 형!

아무리 형을 불러도 형은 나오지 않았다. 다섯 살 터울의 민혁이 형은 나에게 거대한 산과 같았다. 형의 세상은 늘 더 멋져 보였고 형과 함께라면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형 나오면 다 혼내주라고 할 거야.

어쭈. 이게 오냐오냐 하니까 또 막 기어오르네?

민준아, 까불지 마라. 혼나긴 누가 혼나. 너야말로 이참에 형들한테 한 번 혼나볼래?

이놈! 떼찌!

한 명이 들고 있던 생수병으로 내 머리를 톡 때렸다.

와하하하

큭큭큭, 야 너무 웃겨.

내가 당황하자 생수병을 든 그 형이 두어 번 더 떼찌떼찌하면서 내 머리를 때렸다. 친구들이 숨넘어가게 웃고 있는 그때 형이 언제 왔는지 옆에 섰다.


어! 형! 민혁이 형!

내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형을 반겼다.

형, 저 형이 내 머리 때렸어.

내가 손가락으로 형의 친구를 가리켰다. 조금 전까지 깔깔거리던 친구는 금세 얼굴이 굳었다.

저 형이 생수병으로 내 머리 이렇게, 이렇게 때렸어.

나는 내 머리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저 형들은 나 보면서 막 웃었어.

나는 형에게 말하며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야, 정승훈.

형이 생수병을 들고 있던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응.

나 그 물 좀 주라.

아, 여기.

형은 친구가 주는 생수병을 받아서 천천히 뚜껑을 돌렸다. 뚜껑을 열고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형은 물을 마시면서 나를 내려봤다. 형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물을 다 마신 후에 형은 생수병을 발로 콱 찌그러뜨렸다.

잘 마셨어.

형은 친구에게 말하고 유유히 걸어갔다.

형! 저 형이 내 머리 때렸다고!

형은 내 머리를 때린 정승훈의 팔을 툭 건드리면서 웃었다. 친구들과 함께 걸어가며 웃는 형의 옆얼굴이 보였다.


아버지. 이대로 계실 거예요? 이제는 조치를 취하셔야죠.
......

안방에 부모님만 계신 줄 알았는데 형도 함께 있었다.

아니, 한두 번도 아니고요.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언제까지 끌려다니실 거예요?

민혁아, 우리도 생각해 보는 중이잖니. 흥분하지 말고...

어머니. 저 예전부터 참아온 거 아시죠? 그동안 저라고 불만이 없었겠어요? 솔직히 저 민준이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 때가 많았어요. 민준이 때문에 부모님 걱정하시는 것 볼 때도 너무 힘들었고요.


어쩌면 나는 오늘 같은 날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민혁아, 나나 네 엄마가 마음 쓰는 것은 부모로서 지극히 정상적인 거야. 민준이나 너나 무슨 일을 겪든지 간에 부모로서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닳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니.

그 말도 싫어요. 민준이나 너나라는... 그 말이요.

민혁아...

저는... 그러니까 저는...

형은 말하기 힘들어했다. 참아왔던 말이지만 고르고 골라서 말을 꺼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저는 진짜 아들이잖아요.

진짜 아들. 형이 말하는 진짜 아들이란 뜻을 모르지 않았다.


민준이는 아니고요.

가짜 아들인 내가 애써 부정해 왔을 뿐.

기어이 나온, 또 기어이 들은 형의 말은 귀를 찌릿하게 통과해 뇌를 때렸다.

그러니까... 저도 좀 생각해 주세요. 민준이도 모자라서 민준이 엄마한테도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데요? 어쩌다 우연히 맡게 된 거라면서요. 솔직히 맡아 기르는 게 이렇게 길어질 줄도 몰랐던 거잖아요. 민준이까지는... 그래요. 어쩔 수 없다고 쳐요. 근데 그 생모라는 사람한테 왜 계속 돈을 주시는 거예요? 저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요.

부모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앉으면서도 소리가 나지 않도록 숨을 죽였다. 내가 진짜 아들이 아니라는 말, 나의 생모가 돈을 요구한다는 말은 너무 이상한 말이었다. 너무 이상해서 받아들이기가 더욱 힘들어지는 그런 말이었다.


형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부모님께 억울함을 토로했다. 어렸을 때 내가 집에 오고 나서부터 엄마의 사랑을 나눠 가져야 했던 일, 형과 닮지 않은 나를 볼 때 주변 사람들이 알아챌까 봐 마음 졸여야 했던 일, 형이 나보다 다섯 살이 많다는 이유로 늘 더 혼났던 일, 착실했던 형과 달리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고 다녀 부모님을 고생시킨 일 등 형에게 나는 그저 도려내야 할 종기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민준이라는 그 이름도요... 저는 싫었다고요...


‘헉.’

내 마음 깊은 곳에 돌덩이가 내려 꽂혔다. 형의 이름이 민혁이고 내 이름이 민준이라 어머니가 줄여서 ‘혁이준이’라고 부르곤 하셨다.

혁이준이 밥 먹어.

혁이준이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동네의 다른 이모들도 우리 둘을 ‘혁이준이’로 불렀고 가끔씩이긴 했지만 엄마를 ‘민혁 엄마’ 대신 ‘혁이준이 엄마’라고 부르면 나는 기분이 좋아졌었다. 형과 내가 그 ‘혁이준이’라는 단어로 묶인 것이 자랑스러웠는데... 형은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형의 말을 가로막았다.

민혁아... 네가 그렇게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지내는지는 미처 몰랐구나. 네가 민준이를 잘 챙기기도 하고 또 민준이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까... 이해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지. 네가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구나. 미안하다.

아버지가 사과하고 어머니는 형을 토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형은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 제가 여태까지 한 번이라도 민준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 보신 적 있으세요? 그동안은 제가 참았으니까. 참아야 했으니까 가만히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안 되겠어요. 민준이나 민준이 생모도 문제지만요, 제가 보기엔 두 분도 문제예요. 왜 끊임없이 그 둘한테 끌려다니세요? 우리가 무슨 물주예요? 우리가 그 둘에게 무슨 빚이라도 졌어요?


‘우리’라는 말이 날아와 내 머리에 박혔다. ‘우리’에 나는 들어있지 않았다. 나는 ‘그 둘’에 들어있다. 몇 분 전까지 나도 ‘우리’인 줄 알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는 ‘그 둘’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생모가 누구인지도 몰랐으니 나는 혼자였다.

다른 친구들이 부모님께 지원받는 거 보면서도, 저는 제힘으로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도 나중에는 부모님이 생각해 주시겠지, 한 번만이라도 오롯이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해 주시겠지.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매번... 끊임없이... 저는 안중에도 없으시고...

민혁아. 그렇지 않아. 왜 너를 생각 안 하겠니?

아니요!

형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저를 생각하신다면 이럴 수는 없어요!

형은 흥분했다.

얘, 민준아. 잠깐만. 그게 아니...

어머니가 다독이려 했지만, 형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왜 내가 피해를 봐야 해요? 민준이 걔랑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왜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

형은 말을 하면서 점점 더 흥분했다.

자기 아들을 이렇게 취급할 수가 있어요? 아들 대신 주워온 자식을 더 아끼는 부모도 있어요? 그거 정의감이나 연민. 뭐 그런 거예요? 솔직히 너무 가식적이지 않아요?


이민혁!

큰 소리 한 번 내신 적 없는 아버지다. 아버지가 형의 이름을 세게 부르자 가장 놀란 건 나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딸꾹질을 했다.

딸국.

‘헉’

안방 문이 벌컥 열렸다. 밝은 안방의 빛과 함께 여섯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향했다. 너무 밝아진 시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민준아...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딸국.

바보 같은 딸꾹질 소리가 눈치도 없이 목구멍에서 나왔다.

너... 너 언제 왔어.

딸국.

망할 놈의 딸꾹질이 자꾸 나왔다. 어머니가 일어나서 나에게 오셨다. 내 손 위에 어머니가 손을 올렸다.

민준아...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 느껴졌다. 내가 속상해할 때면 늘 따뜻하게 토닥이던 어머니의 손. 나를 안아주고 감싸주던 어머니의 손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어머니의 손길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더는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가만히 잡아서 밀어냈다. 그러는 와중에도 딸꾹질이 나왔다. 어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비참해진 심정으로 나는 아버지와 형을 바라봤다.

제가... 엿들은 건 아니고요... 딸국. 너무 놀라서요.

아버지가

아니 어떻게 이렇게... 민준아, 네가 너무 놀랐겠구나. 언제 들어온 거야.

방금요. 저 씻을게요.


부모님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나보다 부모님이 더 놀라신 것 같아서 그것도 죄송스러웠다.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가려다 형을 돌아봤다. 형은 나를 보고 있었다. 혹시 형은 내가 집에 온 걸 알고 있었을까.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딸꾹질은 잦아들었다. 내 방에 안에 있을 때 가끔 들었던 이 낯선 느낌. 나 혼자만 이 집에서 낯선 이 같다는 자각이 지금 다시 한번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오늘에야 양지로 모습을 드러냈다. 맞다. 나는 이방인이었다. 나는 ‘우리’ 안에 들지 못하는 타인이었다.

형이 내 방으로 왔다.

잠깐 앉아 봐.

형은 책상 의자를 끼익 빼고 앉았다. 나는 형을 얼굴을 보지 못하고 침대로 가서 엉거주춤 앉았다. 형은 나를 보면서 할 말을 정리했다.

네가 다 알게 된 것 같아서 말이다.

형의 목소리가 전과는 미세하게 달라졌다. 형이 다정다감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표면적으로 형제였고 형은 형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행하는 사람이었다. 얄쌍하고 날렵한 구두를 사다 줄 만큼.

너에게 이걸 말해주지 않았던 건 너를 걱정해서였어. 부모님은 누구보다도 너를 아끼셨고 네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셨으니까. 내가 6살 때 네가 우리 집으로 처음 왔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님이 너를 생각하는 마음은 늘 한결같으셨어.


나는 담담하게 말하는 형이 놀라웠다. 나는 속이 울렁거리고 귀가 윙윙거려서 형의 말이 또렷이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너에게 입양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어. 우리 가족으로서 온전히 받아들이자고. 그래서 내 이름이 민혁이니까 민 자를 넣어 이름을 짓자고 했어. 우리는...

그만해.

나는 형의 입에서 나오는 그 ‘우리’라는 말을 듣기가 너무 힘들었다. 나도 한때는 ‘우리’였지 않았냐고, 어떻게 하루아침에 선을 그어 ‘우리’와 ‘그 둘’이라고 구분 지을 수가 있냐고 묻고 싶었다.

민준아, 우리는...

그만, 그만! 그만하라고 했잖아!

내가 소리 질렀다.

형은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알았어! 내가 입양된 것도 알겠고 형이 나 때문에 피해 본 것도 알겠어. 생모? 나는 본 적도 없지만 나를 낳아줬다는 그 생모도 따로 있다고? 그 여자가 돈 달라고 해? 미친 거 아냐? 아니, 도대체 어떤 인간이 자기가 낳은 애를 키우지도 않고 길러준 사람들한테 돈까지 달라고 해? 날 낳은 인간이 그런 인간이라는 거야?


나는 사실 화를 내면서도 헷갈렸다. 화를 낼 자격이 내게 있을까? 나를 거두어 주고 이십 년 넘게 보듬어준 사람들에게 감사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어떻게 화를 낼 수가 있을까. 내가 화내는 것은 지금의 부모님을 닮지 않고 날 낳아준 생모를 닮아서일까. 나는 입에서 독한 말이 나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날 참아내느라 형이 힘들었겠다. 동생도 아닌 내가 따라다니고 귀찮게 구는 거 받아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어쩐지 형이랑 난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어. 생김새부터 성격, 식성에다 아이큐까지 다르잖아. 비슷한 게 정말 하나도 없었어.

형은 ‘아이큐’라는 말에 움찔했다.

집에서 기르는 개도 한집 살면 주인이랑 닮는다던데 나는 개만도 못한가?

야, 이민준. 너 갑자기 왜 이래? 네가 충격받은 건 알겠지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개?

왜! 안되나? 지금 ‘형’ 코스프레라도 하는 거야?


나는 이제 형이 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의지하고 바라볼 만한 산이 아닌, 그저 나를 밀어내고 가로막는 벽처럼 느껴졌다.

각을 재듯 사는 형한테 맞춰보려고도 했었어. 나도 형처럼 좋은 회사 들어가고 월급 받는 삶을 살아보려고 했었다고! 근데 이제는 아냐. 맞춰지지 않는 그림을 아무것도 모른 채 나 혼자 맞추는 거 이제는 안 할 거야.

나는 어렸을 때부터 눌러왔던 감정이 한 번에 확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형과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끈이 왜 그리도 약하고 가늘었는지, 나를 바라보는 형의 눈빛에는 왜 경멸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는지 모르지 않았다.


입을 다물었다. 생각의 정리가 그 어느 때보다 빨리 되었다. 누군가가 사고 과정을 함축해서 눈앞에 보여주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의 뇌는 응당 해야 하는 사고 과정을 신속하게 처리했다. 내가 할 일이 명료해졌다.

이 집을 떠나야 한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곳을 지금 당장 떠나라고 마음이 소리치고 있었다. 진작 알았으면 더 빨리 떠났을 텐데. 많은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버린 것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잠시 망설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부모님은 나에게 모든 것을 해주셨다. 내가 이 집에 더 머무는 것은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고통이 될 뿐이었다. 폐가 되기 싫었다. 당연하게 누려왔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왔다.

형을 피해 화장실로 갔다. 마음을 추스르고 씻는 것처럼 보일 생각이었다.

이전 04화3.